밀사백과 동산 법거량
 흰 토끼새끼가 달려가자
 "잠시 권세 잃은 것 같군"

동산은 제1좌 조산(曹山)에게 친절한 전법을 끝내고 더욱 대중에 대해서도 자상한 지도를 하였다. 동산의 이러한 큰 가르침과 인격은 산 밖에까지 두루 미쳤다. 그 유명한 《보경삼매》는 조산에 대한 부법(付法)의 책이다.
당 대종황제 함통 10년 3월 스님은 임종에 가까워진 것을 알고 시자에게 일러 머리를 깎고 몸을 씻게 했다. 그리곤 옷을 단정히 입고 종을 쳐 대중과의 고별을 알린 뒤 엄숙히 단좌한 채 입적했다. 그때 대중들이 스님과의 작별을 아쉬워하여 통곡했다. 그런 즉 스님은 눈을 떠 대중에게 말했다.
“출가한 자의 마음은 사물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삶을 근심하고 죽음을 아쉬워하며 슬퍼하는 것은 아무런 보탬도 안 되는 일이다.”
스님이 원적하니 세수 63세 법랍 42세였다. 칙령으로 오본대사(悟本大師)의 시호가 내려졌다. 스님의 법사인 조산본적은 출람의 재주가 있어 문풍을 크게 떨치니 조동의 일가를 이루게 되었다. 어록이 한 권 전해진다.

동산무한서(洞山無寒暑) [동산한서회피 洞山寒暑廻避]

한 스님이 동산화상에게 물었다. “추위와 더위가 닥칠 때는 어떻게 피합니까?” 동산화상은 “어째서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곳으로 가지 않는가?”하였다. 스님은 다시 “어디가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곳입니까?”하고 물었다. 동산화상은 “그야 추울 때는 너를 얼려 죽이고 더울 때는 너를 쪄 죽이지.”하였다. 《벽암록》 제43

동산공진(洞山供眞)

동산화상이 스승 운암스님의 진상(眞像)에 공양할 때 앞에 있는 진상을 업신여기는 말을 하였다. 한 스님이 물었다. “운암선사는 오직 이것이라 말하는 뜻은 어떤 것입니까?” 동산화상은 “내 그때는 거의 잘 못 알고 선사의 뜻을 해독했다.” 스님이 다시 말했다. “미심쩍은 것이 운암선사에게 있는지 없는지요?” 동산화상이 답했다. “만약 있는 것을 모른다면 어찌 그렇게 말하는 것을 해독 못할까. 만약 있는 것을 안다면 어찌 그렇게 말할까.” 《종용록》 제49

▲ 삽화=강병호 화백

밀사백토(密師白兎)

밀사백(密師伯-神山僧密의 존칭)이 동산스님과 함께 가다 흰 토끼새끼가 앞을 달려가는 것을 보고 말했다. “잘 생겼구나.” 동산스님이 말하기를 “어째서요?” 밀사백이 “서민이 재상을 뵙게 된 것과 같다.”고 말했다. 동산스님이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하였다. 그러자 밀사백이 다시 말하길 “그대는 또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산이 말하기를 “누대에 걸쳐 벼슬을 하다가 잠시 권세를 잃은 것 같습니다.”하였다. 《종용록》 제56

동산무초(洞山無草)

동산스님이 대중에게 말했다. “늦여름 초가을에 걸쳐 혹은 동으로 혹은 서로 가라. 모름지기 만리무촌초(萬里無寸草 망념없는 곳)로 가라.”
누가 이를 석상스님에게 말씀드리니 “문을 나서면 곧 풀이다. 왜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하였다. 대양(大陽)스님이 말했다. “지금 문을 나서지 않아도 풀이 가득하리라.” 《종용록》 제89

《보경삼매(寶鏡三昧)》

조동종(曹洞宗)의 요점을 4언 94구 376자로 드러낸 짧은 글이다. 본체와 현상의 조화와 융합을 밝힌 것으로 《인천안목(人天眼目)》 3권에 수록되어 있다.

如是之法 佛祖密付
汝今得之 宜善保護
불조께서 가만히 부촉하신 법을
그대 지금 얻었으니 잘 보호할지어다.

銀椀盛雪 明月藏鷺
類之弗齋 混則知處
은그릇에 눈을 가득 담고 밝은 달은 백로를 숨겼는데
종류는 같질 않으나 뒤섞이면 제자리를 안다.

意不在言 來機亦赴
動成巢峨 差落顧佇
뜻은 말에 있지 않으나 찾아오는 기연에 간다
걸핏하면 소굴을 이루어 빗나가게 떨어져 잘못이네.

背觸俱非 如大火聚
但形文形 卽屬染汚
등지거나 맞닿음은 양쪽 다 잘못이니 큰 불덩이 같다
형색이 나타나기만 하면 바로 물듦에 속한다.

夜半正明 天曉不露
爲物作則 用拔諸苦
한밤중 그대로가 밝음이나 새벽이 드러나질 않는다
중생을 위해 법칙이 되고 이로써 모든 고통 뽑아주리.

雖非有爲 不是無語
如臨寶鏡 形影相觀
비록 함이 아니고 말이 없음도 아니다
보경에 임하듯 형체와 그림자가 서로를 마주본다.

-선학원 총무이사 · 아산 보문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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