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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빛과 어둠 Ⅰ, 아폴론의 세계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큰 기쁨
2017년 04월 06일 (목) 13:27:23 김문갑 meastree@naver.com
   
▲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 〈아폴론과 다프네〉.

1. 순수, 그 이루어 질 수 없는 첫사랑

흔히 잘 생긴 남자를 그리스 조각같다고 한다. 뚜렷한 이목구비, 8등신의 몸에 알맞게 발달된 근육…. 하지만 그리스 조각이라고 하여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그리스 조각 중에서도 최고의 미남이라면 역시 아폴론이다. 태양의 신으로, 음악과 시, 의술과 예언, 궁술까지 관장하는 신이다. 제우스의 아들이며, 올림포스 12주신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 신은 언제나 가장 아름답고 젊은 신으로 묘사된다. 곱슬머리에 월계관을 쓰고 손에는 리라를 든 모습이 얼마나 빛났으면 그의 별명이 ‘환히 빛나는 자’, 포이보스일까. 가히 모든 여성들의 흠모와 연정의 대상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완벽한 신이 사랑에서만큼은 영 아니올시다이다.

그대는 모르고 있소. 성급한 소녀여, 그대는 모르고 있소.
그대는 누구에게서 달아나는지. 내가 누군지 몰라 달아나는 것이오.
델피 땅과 클라로스와 테네도스와, 파타라 궁전이
나를 섬긴다오. 유피테르(제우스)께서 나의 아버지라오.
미래사와 과거사와 현재사가 나를 통하여 드러나고 있소.
나는 또 노래와 현(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해준다오.
내 화살은 어김없이 목표를 맞히지만, 내 것보다 더 확실히 목표를
맞히는 화살 하나가 근심걱정 없던 내 가슴에 상처를 입혔소.
의술은 내 발명물이고, 나는 온 세상에서 구원자라고
불리며, 약초들의 효력은 내 손아귀에서 나온다오.
하지만 아아, 사랑을 치료해줄 약초는 어디에도 없고, 만인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도 그 주인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구려!1)

이렇게 자신을 밝히며 쫓아가는데도 소녀는 무작정 도망가기만 한다. 그 어느 누가 아폴론의 구애를 거부할까만, 여기 다프네는 필사적으로 도망간다.

이 일이 있기 얼마 전, 아폴론은 에로스가 활을 구부려 팽팽한 시위를 메는 모습을 보았다. 어린 꼬마가 활을 갖고 다니는 게 귀여웠던지, 궁술의 신 아폴론이 툭 한 마디 던졌다. “개구쟁이 꼬마야, 전사들에게나 쓰는 무기가 네게 왜 필요하냐?” 그러면서 은근히 자기 자랑도 하고…. 살짝 기분을 잡친 에로스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금화살을 아폴론에게, 납화살을 다프네에게 쏘았다. 금화살은 미치도록 사랑하게 하는 화살이고, 납화살은 죽도록 싫어지는 화살이다. 그래서 소녀는 죽어라 도망가고, 멋쟁이 젊은 신 또한 기를 쓰고 뒤를 쫓는 장면이 연출되었던 것이다.

다프네가 아무리 필사적으로 도망간들 아폴론의 손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의 손에 잡히기 직전 그녀는 외쳤다.

아버지, 저를 도와주세요! 만약 저 강물 속에 어떤 신성이
있다면 너무나도 호감을 샀던 이 모습을 바꾸어 주세요!2)

소녀의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소녀의 두 팔은 가지로 자라고 발은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부드러운 가슴은 나무껍질로 덮이고 찰랑이던 머리카락은 나뭇잎으로 변했다. 이렇게 변한 월계수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아폴론은 말했다.

그대는 내 아내가 될 수 없으니, 반드시 내 나무가 되리라.
월계수여, 내 머리털과 내 키타라(리라)와
내 화살통에는 언제나 네가 감겨 있으리라.3)

잘생기고 능력 있고 젊은 신의 첫사랑은 이렇게 끝났다. 이루어지는 사랑은 첫사랑이 아니다. 첫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는 그 순수함 때문이다. 누구든 첫사랑의 추억은 순수하게 간직되는 법이다. 아폴론도 예외는 아니다. 아폴론이 월계수 잎에 순수한 첫사랑의 기억을 심듯, 사람들마다 어딘가에 자신의 순수했던 추억을 담는다. 누구는 아카시아 꽃향기에, 누구는 강둑 풀밭에서 한없이 달려들던 모기떼에게 맑기만 했던 기억을 심는다.

2. 영원한 청춘,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나는 끝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어요.
만약 내 처녀성이 포이부스(포이보스)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면 말예요.
그분은 그것을 바라며 선물로 미리 나를 매수하고 싶어 말했어요.
“쿠마이의 소녀여, 그대가 원하는 것을 고르도록 하라!
그러면 그대가 원하는 것을 갖게 되리라.” 나는 한줌의
먼지무더기를 가리키며 어리석게도 그 먼지 알갱이 수만큼
많은 생일을 갖고 싶다고 했어요. 하나 그 세월이 줄곧
청춘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깜빡했어요. 하지만 그분은
그 세월뿐만 아니라 영원한 청춘도 주시려고 했어요, 내가 그분의
사랑을 감수하기만 한다면 말예요. 하나 나는 포이부스의 선물을
무시하고 여태 미혼으로 남아 있어요.4)

포이부스, 이 빛나는 아폴론의 사랑과 영원한 청춘을 거부한 여인은 무녀(巫女) 시빌레(Sibyl)이다. 아이네이아스가 패망한 트로이를 떠나 이탈리아로 향할 때 무사히 저승을 다녀오도록 도와준 여인이다. 위의 말은 아이네이아스가 시빌레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신전을 짓고 분향하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자신이 신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분향의 명예를 받을 수 없다며 한 말이다. 영원한 청춘을 거부한 그녀의 말이 쉽게 이해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전혀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어느새 행복한 시절은
내게 등을 돌리고 병약한 노령이 떨리는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그것을 나는 오랫동안 참고 견뎌야 해요. 나는 벌써 일곱 세기를
보냈지만, 내 나이가 먼지 알갱이 수와 같아지려면 아직도
삼백 번의 수확기와, 삼백 번의 포도 수확을 더 보아야 해요.
긴긴 세월이 내 이 몸을 왜소하게 만들고 노령에 시든
내 사지가 최소의 무게로 오그라들 때가 오겠지요.
그러면 나는 사랑 받았던 여자로 보이지 않을 것이고,
신의 마음에 들었던 여자로도 보이지 않겠지요. 포이부스 자신도
아마 나를 몰라보거나 나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하시겠지요.
나는 그만큼 변해 눈에 보이지도 않게 되겠지만, 운명이 내게 목소리를
남겨 놓아 그 목소리로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게 될 거예요.5)

늙음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싫은 것이다. 나쁜 마녀가 으레 노파로 그려지듯, 늙은 여인은 추악함의 상징이다. 청춘은 아름답지만 짧다. 반면에 늙음은 추하고도 길다. 행복한 청춘은 금방 지나가고 고통스런 늙음이 한없이 이어진다. 그리하여 죽음을 갈망할 때쯤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인생은 그런 거라고….

하지만 영원한 젊음의 표상인 아폴론이 이런 인생을 알 리 없다. 늙어가며 깊어가는 사랑. 너무 이상적인가. 영원한 청춘은 어쩌면 너무도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인지도 모른다. 아폴론의 사랑이 그런 것 아니었을까. 시빌레는 대단히 사려 깊은 여인이었다.

3. 운명을 아는 자의 슬픔

아폴론이여, 아폴론이여.
길의 신이여, 나의 파괴자여,
그대는 나를 두 번이나 완전히 파괴하시는군요.6)

그리스어로 ‘파괴자’는 아폴론(Apollon) 신의 이름과 똑같은 apollon이라고 한다. 그런데 단순히 글자만 같을까? 정말로 아폴론이 카산드라의 몸과 영혼을 파괴한 것은 아닐까?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의 딸이다.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의 동생이며, 예언자 헬레노스와 쌍둥이 남매이다.

그녀는 대단한 미인이었다. “프리아모스 딸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카산드라”. “황금빛 아프로디테와도 같은” 미모는 곧 아폴론의 눈에 띄고, 이 예언의 신은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으로 그녀의 사랑을 사고자 한다. 하지만 예언력 덕분에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게 된 카산드라는 아폴론의 사랑을 거절한다. 배신당한 아폴론은 그녀의 예언에서 신뢰를 앗아간다. 어느 누구도 카산드라의 예언을 믿지 않는다.

이것은 죽음보다도 더 가혹한 복수였다. 카산드라는 닥쳐올 불행과 비극을 홀로 고통스럽게 지켜보아야만 했다. 마음을 나누거나, 위안을 주는 사람도 없이, 그녀는 절대의 고독 속에서 고통스런 여생을 보내다가 죽임을 당한다. 패전국의 공주, 전리품, 포로, 정부(情婦), 이런 단어들이 덧붙여지며 육신의 주인 아가멤논과 함께 살해된다. 그녀의 몸도 마음도 파괴된다.

아아, 슬프도다.
어찌 이리 맹렬한 불길이 나를 엄습하는가!
아아, 아아,
뤼케이오스 아폴론이여, 아아, 가련한 내 운명이여!7)

카산드라는 자신의 최후를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아폴론을 배신하고, 아무도 믿지 않는 예언자가 되고, 나라는 화염에 휩싸이고, 포로가 되어 비참한 죽음을 맞는, 이 모든 인생 여정을 그녀는 한 눈에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카산드라가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들였다면, 이런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부질없는 질문이다. 그녀는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길을 꼿꼿이 걸어갈 뿐이었다. 피하지도 않고,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고…. 아폴론은 이런 그녀를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폴론은 복수를 하였다고 생각했겠지만, 카산드라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로 살았다. 슬픈 운명을 사랑했다.

4. 남김없이 드러나고 완벽하게 조화로운 세계

아폴론의 사랑은 첫사랑 다프네부터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리스에서 가장 잘 생겼고, 가장 잘난 이 훈남이 여자의 마음을 얻는 일만큼은 젬병이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애써 사랑의 결실을 맺어 놓고 제대로 지키지도 못한 일이다. 아폴론은 테살리아의 아름다운 공주 코로니스를 무척 사랑하였다. 그래서 코로니스와 함께 있지 못할 때는 흰 까마귀를 보내 그녀를 감시하였다. 코로니스는 인간인 이스키스 왕과 바람을 피웠다. 그녀는 아폴론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음에도 이스키스 왕과 결혼하였다. 흰 까마귀는 이런 사실을 아폴론에게 보고했고, 분노한 아폴론은 즉시 코로니스를 활로 쏘아 죽였다.

하지만 아폴론은 곧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애꿎은 흰 까마귀를 검은 까마귀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화장(火葬) 중인 코로니스의 몸에서 아기를 꺼내 자신의 의술을 익히게 하니, 그가 곧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이다.

여자들은 왜 그토록 멋진 아폴론의 사랑을 거절할까?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음악이면 음악, 예술이면 예술, 의술과 궁술, 미래를 볼 줄 아는 혜안까지, 완벽한 남자 태양의 신을.

그의 앞에만 서면 모든 것이 남김없이 드러난다. 태양이 내려쬐는 한낮처럼, 숨길 수 없다. 숨을 데가 없다. 더구나 미래를 보는 예지력까지 갖추었지 않은가. 모든 게 투명하게 드러나는 세계.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남김없이 펼쳐진다. 나무는 나무이고, 돌은 돌이다. 남자가 여자일 수 없고, 여자는 남자가 될 수 없다. 어둠에 덮여 나무뿌리와 뱀이 헷갈리고,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리송한 일은 아폴론의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모호함은 나쁜 것이다. 태양이 정해진 궤도를 정해진 시간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도는 것처럼, 아폴론의 세계에선 모두가 정해진 자신의 분수와 영역을 지킨다. 혼돈은 죄악이다. 도레미파솔라시도, 각각의 음은 정확히 자기의 소리를 내며 완벽한 오케스트라가 연주된다.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하나?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나도 모르게 이웃의 아내를 바라보고, 남편을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냥 문득 드라마의 주인공과 로맨스에 빠져보는 게 인생이다. 일상이 정해진 궤도라면 이탈은 휴식처이다.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세계는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즐거움이며 숨 쉴 수 있는 공간이다. 그 비밀스러움까지 다 까발려진다면 살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게 다 갖춰진 그리스 최고의 신 아폴론. 어쩌면 그래서 사랑받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랑은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게 더 큰 기쁨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주고 싶은데 상대는 너무도 완벽하여 내 사랑을 줄 데가 없다면,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한다. 완벽한 남자는 매력이 없다. 조금은 바보스럽고 가끔은 멍청해야 사랑스럽다. 어딘가 어리숙하고 모자라 보여야 채워주고 싶은 법이다.

하루 24시간이 온통 밝은 빛으로 채워진다면...... 살 수 없다. 어둠이 깔려야 휴식을 취하고,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다. 태양은 궤도를 이탈해서는 안 되지만, 인생마저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다.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비밀을 만들어 보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서로가 서로의 비밀을 무심히 몰라주는 어리석음이 더 깊은 사랑을 가꾼다.

주)-----
1)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원전으로 읽은 변신이야기》.
2. 위의 책.
3) 위의 책.
4) 위의 책.
5) 위의 책.
6) 아이스퀼로스, 천병희 옮김, 《아가멤논》
7. 위의 책.

김문갑 | 철학박사,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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