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총무원장 선출하는 방식을 두고 현행 간선제를 그만두고 직선제 쪽으로 가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제도의 문제는 각 종단의 종헌과 종법에 따라, 또 정당한 법 절차를 따라 시행하면 될 것이다. 또 이 땅에서 지내온 불교의 역사가 길기 때문에 그 전통을 잘 살려서 지금에 알맞게 대중의 공의를 모아 계승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총무원장 선거철을 맞이하여 최근의 기자회견 내용을 보면서, 선불교를 연구하는 필자로서는 마음이 편안하지만은 않다. 소위 현대사 속에서 불교계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새삼 말할 필요는 없다. 그간의 약 70년을 돌아보면, 내가 보기에 불교계는 꾸준하게 발전해왔다.

우선 출가자는 독신이어야 한다는 정신을 회복했다. 현실 속에서 얼마나 순도 높게 계를 지키는가가 문제이지, 그 정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없다. 승려를 배출하는 교육제도의 정비 또한 예전에 볼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가람의 보수와 복원도 역시 그렇다. 학승들의 노력으로 《한글대장경》이 완간되었고, 많은 불교서적들이 세상에 나왔다. 그런가하면 염불승들은 어떠한가? 의례집을 정비하고, 더 나아가 한글화에 공을 들여 점점 정착되어가고 있다. 교화승들의 역할도 눈부시다. 사판에 종사하는 승려들 또한 불법수호를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불교재산관리법’을 ‘전통사찰보존법’으로 바꾸어 불교문화재의 보존을 위한 국가의 의무를 법제화 했다. 또 부처님오신날 연등제를 국가무형문화재로 만들었다.

2.
그런데 선승들을 무엇을 했는가? 간화선이 최고라는 선언만 했지, 그 수행법이 왜 최고인지, 또 그런 수행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제대로 설명이나 했는가? 내가 알기로는 조선시대 내로라하는 선승들치고 《선문염송》과 《경덕전등록》의 내용을 쥐고 흔들지 못한 이가 없었다. 이런 전통은 일제강점기도 만찬가지였다. 성철 선사나 구산 선사 당시까지만 해도 이런 전통은 이어졌다. 현재의 송담 선사도 그렇다.

게다가 간화선을 제창한 중국 송나라의 대혜종고 선사는 당대의 사대부들과 인문학적 담론을 했다. 수행이 뭐고, 인생이 뭐고, 문학이 뭐고, 백성의 관리된 자의 윤리가 뭐고 말이다. 시대의 사조와 문물과 철학을 담론하던 소위 지성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뭔가? 선방에 젊은 선객들 앉혀놓고 상당법어나 입실(入室) 등 각종 수행 지도를 제대로 하는가? 그 역할이 사판인지 이판인지도 모를 ‘선원장’이라는 묘한 직책을 만들어, 총무원장 선거철만 되면 들썩인다.

책 쓰고, 염불하고, 행정하고, 포교하고, 가람수호하다 보면, 부득불 옷에 때가 묻을 수도 있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때 묻은 옷’을 걸치고 세상을 들어갈 수도 있다. 빳빳하게 풀 먹인 옷 입을 틈이 없다. 내가 걱정스러워 하는 것은 철마다 방부 드리는 대부분의 일반 선승이 아니라, 선원의 권력자들이다. 선방에 고정으로 걸망이라도 걸어둘 수 있고, 다구(茶具)라도 챙겨 둘 수 있는 그런 선승들 말이다. 책 좀 읽고 세상의 지성들과 교류하여 이 땅의 이 시대에 부응하는 활구선(活句禪)을 할 수는 없을까? 세상에, 하루에 8시간 내지는 10시간씩 참선하는 법이 어느 세월에 있었던가!

3.
불법은 모두 남쪽에 있다고, 당시의 설봉교단을 비판하는 조주 선사의 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월왕의 보호를 받는 그곳이야 밥도 많고 죽도 많겠지. 승려 복지를 이야기 하고, 범계승들을 견책하고, 부정부패를 비판하여 바로잡겠다는 데 누가 반대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것을 문제 삼자는 것이 아니다. 선(禪)이 사라진다는 것이 문제이다. 가야산의 성철 선사는 《본지풍광》이라는 상당법어집을 내놓고 ‘그래도 밥값은 한 듯하다’고 했다. 벌써 입적하신지도 20여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 법어만은 지금도 메아리친다. 인천 용화사의 송담 선사의 법어는 불교방송 라디오를 통해 새벽마다 들려온다. 밥값을 내든 법어를 한 자리 하던 한 가지는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지 않으려거든 ‘사판’ 운운하면서 비난이나 하지 말든지.

-연세대 철학과 교수 ·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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