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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보수의 민낯과 성조기
2017년 03월 22일 (수) 08:26:37 박병기 buddhismjournal@daum.net
같은 사안을 놓고도 전혀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사실 관계에서 잘못이 발견되면 ‘틀린’ 의견이라고 배척하면 되지만, 많은 경우는 사실 관계 확인이 어렵거나 동일한 사실 또는 사건을 전제로 하고 있다. 특히 그 일에 나도 당사자로 포함되어 있을 때는 자신의 의견을 확정해야 한다는 부담을 추가로 안게 된다.

   
지난 주말 일이 있어 광화문에 나가는 길에 마주한 ‘태극기’와 ‘성조기’의 행렬은 내게 그런 인식의 고통과 함께 감정적인 흔들림을 안겨주었다. 전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했고 헌법재판관 전원 일치 판정으로 탄핵이 결정된 전 대통령을 공주 또는 마마로 칭하면서, 이정미 전 재판관을 서슴없이 마녀라며 처형해야 한다고 외치는 일그러진 얼굴은 참으로 마주하기 힘든 우리 사회 ‘수구보수’의 민낯이었다.

훈련기간까지 합하면 만 40개월을 복무한 예비역 장교인 나는 얼룩무늬 군복들 또한 불편했다. 자신들만이 애국전사이고, 촛불집회에 참여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매국노라는 칭호를 망설이지 않고 붙이는 저들은 불행히도 우리들의 아버지고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들 중에는 일당을 받고 동원된 사람이 꽤 포함되어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경제력이나 학력에서 남에게 뒤처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탄핵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발언으로 비웃음을 산 사람 중 몇몇은, 이른바 명문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잘 나가는 변호사들이지 않은가?

20세기 역사를 살아내면서 우리는 일제 강점기와 광복, 전쟁, 급속한 근대화, 군부독재와 민주화 등 일련의 숨 가쁜 사건들을 겪으면서 비교적 성공적인 결과물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한 해인 1961년 태어난 나는 광주민주화 운동과 이를 피로 짓밟은 전두환을 한발 물러서게 한 1987년 6월 항쟁 등의 과정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청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부모세대의 헌신과 각자의 노력이 더해지면 누구나 일정한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대를 건너왔음을, 회한의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어떤 세대든 자신의 세대를 낀 세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라는 우리만큼 극명하게 낀 세대는 많지 않다. 그래서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펄럭이는, 정말 불편한 모습을 보면서도 어느 정도는 왜 저러실까 헤아려보고자 하는 마음을 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

광복 이후 미국은 북한의 소련과 함께 점령군으로 다가왔지만, 전쟁 때 미군은 피를 나눈 동맹군이 되었고 그 후 군대와 종교, 학문 등의 영역에서 우리의 표준이자 보편 자체였다. 아메리칸 드림은 어떻게 해서든 자식이라도 미국시민권자가 되게 하거나, 영어라도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지닌 얼굴들을 양산해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열망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층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 일그러진 초상의 상징이 태극기와 함께 펄럭이는 성조기다. 미국은 여전히 우리의 우방이지만,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강대국 중 하나일 뿐이기도 하다는 상식이 이제는 꼭 자리 잡아야 한다.

대통령 파면으로 마무리된 이번 촛불집회는 ‘박정희’로 상징되는 근대화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과 다름을 틀림으로 착각하지 않는 성숙한 시민사회 정립이라는 과제를 남기며 ‘시민혁명’으로 마무리되었다. 대통령을 왕으로 착각해서 어떻게 백성이 감히 그 또는 그녀를 끌어내릴 수 있냐고 울부짖는, 시대착오적인 신민(臣民)의 시대는 이제 온전히 떨쳐버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성취한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치를 통합적으로 평가하면서 꼭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고자하는, 진정한 보수의 따뜻한 얼굴과 마주하고 싶은 봄이 시나브로 깊어가고 있다.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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