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강병호 화백

어느날 향엄지한선사가 마당을 청소하고 있는데 비로 쓸어버린 돌멩이가 앞뜰에 나 있는 대나무에 맞아 ‘딱’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지한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활연대오하는 순간이었다. 지한은 이 기쁨을 참을 수 없어 곧 목욕하고 향을 피워 멀리 위산화상있는 곳을 향해 절했다. “화상의 큰 자비는 부모보다 더 크옵니다. 그때 만약 나를 위해 설하셨다면 어찌 오늘 같은 일이 있겠습니까.”하고 한 게를 지었다.
한 번의 딱소리에 알려던 것 다 잊으니/ 수행의 힘 빌릴 일이 아니었도다
안색 움직여서도 고도를 선양하여/ 끝내 실의에는 떨어지지 않나니
가는 곳 어디에건 자취는 없어/ 성색의 그 밖에서 이뤄지는 행위로다
그러기에 온갖 곳 도인들 나타나서/ 모두 다 이르데나, 최상의 근기라고.

一擊忘所知 更不假修治 動容揚古路 不墮悄然機
處處無蹤迹 聲色外威儀 諸方達道者 咸言上上機

이것이 유명한 공안중의 하나인 ‘향엄격죽(香嚴擊竹)’이다. 이렇게 하여 지한선사는 마침내 위산영우선사의 법을 잇게 되었다. 후에 향엄산에 살면서 크게 위산의 종풍을 천양하고 천하의 수행자들을 교화했다. 그가 입멸하자 습등대사(襲燈大師)의 시호가 내려졌다. 그가 남긴 게송은 무려 200여 편에 달한다.

향엄상수(香嚴上樹)
향엄스님 말하기를 “가령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서 입에 나뭇가지를 물고는 손에 가지를 휘어잡지 않고 발은 나무를 디디지 않고 있는데, 나무 아래에 사람이 있어서 ‘서래의(西來意)’를 물을 때 대답치 않으면 묻는 사람에게 그릇될 것이고 만약 대답하면 떨어져 죽을 것인즉 이때 어떻게 대할 것인가?”하였다. 《무문관》 제5

54. 대수법진(大隋法眞 834∼919 潙仰宗)

 제방 두루 역참하며 수행
 노병 핑계로 세속사 거절

익주 대수의 법진선사는 재주(梓州) 왕(王)씨의 아들이었다. 어린 소년시절 남들과 달리 깨닫는 바가 빨랐고 뜻이 굳었다. 일찍이 천하에 스승을 구하여 먼저 혜의사에 출가, 수구(受具)한 후 남방으로 유학했다. 당시 기라성같은 약산(藥山) 도오(道吾) 운엄(雲嚴) 동산(洞山)선사 등을 두루 역참하면서 성실한 수행을 쌓아나갔다. 이후 위산선사의 곁에 가서 몇 해 동안 수행했다. 더욱이 법진의 수행은 목숨을 건 맹렬한 것으로 음식도 제대로 먹지 않고 따뜻하게 누워 자는 것을 마다했다. 위산선사는 그가 법기임을 알고 어느 날 “그대는 그동안 이 노승에게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고 말을 건넸다. 무엇인가 물어보라는 뜻이었다. 법진은 “무엇을 물어보면 되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위산선사는 “어떠한 것이 부처님인가를 말하지 않는가.”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법진은 위산선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으로 선사의 입을 틀어막았다. 위산선사는 이런 그를 찬탄하며 “그대, 핵심을 깨달았구나.”고 인가했다. 이로부터 법진의 이름은 천하를 떨치게 되었다.
그 뒤 촉에 돌아와 천팽(天彭)의 용회사(龍懷寺)에 있기를 3년, 항상 길가에서 오가는 나그네에게 차(茶)를 보시했다. 그러던 중 후산의 한 고원(古院)을 발견, 그곳으로 거처를 옮긴 후 호를 대수(大隋)라 했다. 고원이 자리한 산은 봉우리가 높고 빼어났으며 물 맑고 계곡이 깊어 절경을 자랑했다. 원의 마당엔 둘레가 마흔 자가 넘는 고목이 있었는데 남쪽으로 난 구멍이 하나 있었다. 그 구멍은 동굴과 같아 마치 응접실 같기도 했다. 자연의 암실로서 기가 막힌 토굴이었던 셈이다. 법진은 이 동굴을 목선암(木禪庵)이라 이름 짓고 10년을 살았다. 스님의 명성 또한 사방에 널리 알려져 가르침을 구하려는 자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다. 촉이 사람을 시켜 스님을 불러 내리려 했으나 노병을 핑계로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어느 날 법진스님은 상당해서 말했다.
“불성은 원래 청정하고 만덕을 구족한다. 오직 염정(染淨)의 두 연(緣)으로 구별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성현은 이것을 깨닫고 오로지 깨끗하게 씀으로써 무상대도를 성취한다. 범부는 이에 미망되어 오로지 나쁘게 씀으로써 윤회에 빠진다. 그 본체는 둘이 아니다. 따라서 반야(般若)에서는 이를 ‘무이무이푼(無二無二分)’ ‘무별무단고(無別無斷故)’라고 한다.”

대수수타거야(大隋隋他去也) [대수겁화 大隋劫火]
한 스님이 대수선사에게 물었다. “이 세계에 종말이 와서 겁화(劫火)가 일어나 삼천대천세계 모든 것이 파멸될 때 면목(面目)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파멸입니까, 아닙니까?” 대수선사는 “그야 물론 파멸되지.” “영원불멸이라고 믿고 있는 불성도 객관세계를 따라 함께 파멸되어 없어집니까?” 스님이 다시 묻자 대수스님은 “암, 세계와 함께 파멸되어 버리지.”하였다.
《벽암록》 제29 《종용록》 제30

55. 유철마(劉鐵磨 ?∼? 潙仰宗)

유철마의 전기(傳記)는 상세하지 않다. 유씨 집안의 딸로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출가해서 비구니가 되었는데 담주 위산 근처에 작은 암자를 짓고 살았다. 평소 위산영우 선사 곁에 가서 가르침을 받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의 선풍은 매우 예리했고 험준해 사람들은 유철마라 불렀다. 철마란 쇠로 된 절구란 뜻이다.

철마도위산(鐵磨到潙山) [철마노자우 鐵磨老牸牛] [유철마태산 劉鐵磨台山]
유철마가 위산선사를 찾아왔다. 위산선사가 말씀하시기를 “어이, 늙은 암소! 자네 잘 왔네.”하자 유철마 비구니는 “내일 오대산에서 대법회가 있다는데 화상께서도 가십니까?”하고 받았다. 그러자 위산선사는 네 활개를 펴고 벌렁 누워 버렸다. 유철마는 하는 수없이 곧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위산은 호남성, 오대산은 산서성에 있어 수천리 떨어져 있음) 《벽암록》 제24

-선학원 총무이사 · 아산 보문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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