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송시대 선종사원의 생활철학과 각종 제도, 문화, 생활상, 가람 구조, 납자 교육 및 지도 시스템은 중생을 부처로 만들고 범부를 조사로 만드는 데〔成佛作祖〕 맞춰져 있다.”

중견 불교출판인인 윤창화 민족사 대표가 중국 당·송시대 선종을 조명한 책을 펴냈다. 윤 대표는 이 책에서 여러 청규와 선 문헌을 바탕으로 당·송시대 선종의 생활문화 전반을 깊이 있게 탐구했다.

윤 대표의 표현을 빌리면 “당·송시대 선종사원은 미혹한 중생을 부처로 만드는 작불학교(作佛學校)”였다. 선종사원은 사후 극락왕생이나 현세 이익을 기원하는 종교적, 기복적 장소가 아니라 선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완성시키는 전문 수행도량이었다는 것이다. 청규나 생활방식 같은 제도의 초점을 수행에 맞추고, 독자적인 납자 지도 시스템과 철학을 완성시켜간 것도 선종사원이 작불학교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윤 대표의 주장이다.

윤 대표에 따르면 역사상 첫 선종사원은 백장 회해(百丈 懷海, 720~814) 선사가 창건한 백장사이다. 백장사가 창건되기 이전에는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선종사원이 없었다고 한다. 선승들은 대부분 율종사원에서 당우 한 채를 빌려 더부살이하거나, 독살이하는 신세였다는 것이다.

백장 선사는 백장사를 창건하면서 선종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는 불전(佛殿)을 세우지 않고 법당(설법당)만 세운다는 것이고, 둘째는 총림의 식생활은 보청(普請, 노동)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주지(방장)는 불조로부터 혜명을 이은 법왕(法王)이므로 지혜가 없는 불상은 따로 모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은 것에 대해 윤 대표는 “당·송시대 선승들은 반야지혜가 투철한 이들이었다”며, “그들에게 ‘부처’는 목석이나 금은으로 조성한 불상이 아니라 반야지혜였고, 반야지혜가 작동하지 않는 부처는 나무토막이나 돌조각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당·송시대 선종사원의 납자 지도, 교육시스템 또한 철저히 부처와 조사를 길러내는 데 맞춰져 있었다. 법문(法門), 독참(獨參, 개별 지도), 청익(請益, 보충 교육), 좌선(坐禪)의 4가지이다. 선종사원에서 불전보다 법당(法堂, 설법당)과 방장(方丈), 승당(僧堂, 선당)이 중요시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법당은 법문을 듣는 곳이었고, 방장은 독참과 청익을, 그리고 승당은 좌선을 하는 곳이다.

윤 대표는 9년(2008년) 전 당·송시대 선종사원의 모습이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일본 교토의 묘신지(妙心寺), 겐닌지(建仁寺), 료안지(龍眼寺), 텐류지(天龍寺), 쇼코쿠지(相國寺), 도후쿠지(東福寺) 등 선종사원을 답사할 때 받은 충격을 화두 삼아 이 책을 썼다. 윤 대표는 “사원의 규모와 정갈함, 방장(方丈, 주지실) 당우와 선종 특유의 석정(石庭) 정원 등을 보며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며, “그 충격이 결정적으로 이 책을 쓰게 한 발분망식(發憤忘食, 화를 푸느라 밥 먹는 것을 잊음)의 계기였다”고 회고했다.

선종이 율종으로부터 독립해 독자적 체계를 이룩하고, 규모와 사상적인 면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를 우직하게 탐구한 윤 대표는 “부처가 될 수 있는 안목과 방법을 가르쳐 주는 ‘작불학교’였던 당·송시대 선종 사원을 거울삼아 우리 시대 불교의 모습을 비추어 보라”고 강조한다.

윤 대표는 “한국 선방에는 ‘황금시대’라 불리던 선승 때의 전통이 사라지고 없다. ‘선종을 표방하는 한국불교의 방법론은 잘못되었고 교육시스템은 망가졌다. 교육철학 또한 없다. 기라성 같은 선승을 배출해 내던 당·송시대 선종사원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사 | 2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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