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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초기경전의 탄핵정국 이야기
초기불교, 왕권 성립 ‘사회계약설’ 견지
2017년 03월 02일 (목) 10:57:40 조준호 yathabhuta@hanmail.net

최근 일련의 국내 정세를 지켜보면서 정치·경제 문제와 관련해 우리를 몇 가지 인간형으로 나누어 본다. 첫째는 체제 굴종형이요, 둘째는 체제 순응형이요, 셋째는 체제 비판형이요, 넷째는 체제 저항형이다. 이 가운데 나는 어느 형에 속하는가? 그리고 남한 사람들은 대체로 어느 형에 속하는가? 또 북한 사람들은 대체로 어느 형에 속하는가? 마찬가지로 불교는 어느 인간형을 설하는가? 나아가 한국불교의 경향성은 대체로 어디에 속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 동포가 북한체제에 저항하여 통일을 앞당겼으면 하고 바란다. 그런데 그들의 저항의식은 우리의 기대와 다르다고 한다.

일요일 법회를 마치고 귀가하는데 거리에서 연세 드신 분들이 모여 마이크를 잡고 탄핵 반대 집회를 열고 있었다. 동어반복으로 “어떻게 감히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느냐?”와 우리의 배고픈 시절을 상기시키면서 “이재용을 석방하라”를 힘주어 외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외치는 구호를 써서 포스터도 붙여놓았다. 이들 중에는 승복 입은 스님도 두 분이나 있었다. 승복 위에 천을 두르고 바쁘게 일반인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귀가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추운 날 두 편으로 나뉘어 목소리를 높이느라 모두 고생이 많다. 나를 대신해 정치를 잘해 달라고 꼬박 꼬박 세금을 내는 등 의무를 다한 국민들이 직접 들고 일어선 모습이 안쓰럽다. 멀리서 다시 “어떻게 감히 대통령을…….” 소리가 들려올 때 갑자기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던 “짐은 곧 국가”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역사적 맥락에서 “한국은 민주국가이지만 아직도 조선왕조의 신민의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어느 학자의 말이 잇따라 떠올랐다. 이어서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아베 총독이 떠나면서 남겼다는 말이 꼬리를 물었다. “일본은 패배했다. 하지만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기 때문에, ……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서로 이간질하고 분열하며 노예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신민교육! 과연 조선의 봉건신민의식과 일제의 황국신민의식이 우리의 뇌에 주입되어 지금도 대물림되고 있는지를 따져 본다.

초기불교에서 ‘부림’을 의미하는 ‘Anusaya’라는 말이 있다. 아주 중요한 불교전문용어이다. 한역으로 ‘수면(隨眠)’이나 ‘사(使)’로 옮겨졌다. 영역으로는 ‘latent deposition’, ‘dorment deposition’, ‘tendency’, ‘predeposition’ 등으로 옮긴다. 현재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잠재의식의 힘’이나 ‘심층의 경향성’을 말한다. ‘anusaya’는 과거의 집적(集積)으로서 개개인의 의식과 행위를 제약하며 한정하는 잠재의식이다. 개개인의 심층에 잠재한 욕망의 수준과 내용에 따라 저절로 그렇게 보이고 생각되고 드러나는 세계상(世界像)을 말한다. 이러한 점에서 한역은 ‘부릴 사(使)’자로 옮겼는데 참으로 절묘한 역어라 생각한다. 후대 대승의 유식불교에서는 이와 관련해 정치한 심리학적 설명을 전개한다. 그 가운데 ‘인연변(因緣變)’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에 훈습된 원인과 조건에 의해 저절로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여간 깨어있지 않는 한 우리의 인식과 삶은 주입된 과거에 쉽게 규정되고 부려지기 쉽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한 ‘왕은 곧 국가’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절대왕조 시대처럼 국왕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하며 신성불가침을 주장할 수도 없다. 초기불교에서는 왕권신수설을 부정하고 왕은 사람들 간의 필요에 의해 조건적으로 있게 된 계약관계로 본다. 사회계약설은 왕을 사람들이 선출하였고 마찬가지로 사람들에 의해 왕권을 잃을 수도 있다고 본다. 과거 인류사회에서 대단히 파격적인 발상이다. 그러한 혁명적인 이야기기를 담고 있는, 초기경전인 《아함경》의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왕에게는 8만 4,000명의 궁녀와 시녀가 있었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자식이 없었다. 대과왕은 여러 나무신·산신·해·달·별 등에 빠짐없이 기도하며 자식을 얻고자 하였다. 그러자 왕의 첫째 부인이 곧 아이를 배었고, 8·9개월이 지나 아들을 낳았는데 세상에 드물 만큼 얼굴이 단정하였다. 그 때 그 왕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몇 년을 자식도 없이 지내던 내가 이제야 비로소 아들을 얻었다. 이제 이름을 짓고 다섯 가지 욕망〔五欲〕을 마음껏 누리게 하리라.’
......
태자가 나이 여덟 살이 되던 때였다. 그는 신하들을 거느리고 부왕에게 나아가 아침 문안을 드렸다. 왕은 ‘태자가 참으로 기특하구나’ 생각하고는 곧 태자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제 너를 결혼시키고 싶은데 어떠냐?”

태자는 아뢰었다.

“제가 아직 나이도 어린데 구태여 결혼해 무엇하겠습니까?”

부왕은 우선 참고 결혼시키지 않았다. 그렇게 20년이 지나 왕은 다시 말하였다.

“내 너를 결혼시키고 싶구나.”

태자가 아뢰었다.

“결혼은 해서 무엇하겠습니까?”

그 때 부왕은 신하들과 백성에게 말하였다.

“내 자식도 없이 오랫동안 지내다가 겨우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결혼할 생각은 않고 티 없이 청정하게만 지내는구나.”

그래서 왕은 태자의 이름을 청정(淸淨)이라고 고쳤다.

청정 태자가 나이 서른이 되자 왕은 다시 신하들에게 분부하였다.

“나는 이제 이미 늙었고 다른 아들이 없다. 오직 청정 태자가 있을 뿐이니, 지금 왕위를 태자에게 주어야겠다. 그러나 태자가 다섯 가지 욕망을 좋아하지 않으니, 이 나라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겠는가?”

신하들은 아뢰었다.

“방편을 써서 다섯 가지 욕망을 즐기게 하소서.”

부왕은 곧 종을 치고 북을 울려 온 나라에 영을 내렸다.

“누구든 청정 태자로 하여금 다섯 가지 욕망을 좋아하게 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내 천금과 여러 가지 보물을 내리리라.”

그 때 예순네 가지 술수를 환히 아는 음종(淫種)이라는 음녀가 있었다. 그녀는 왕이 ‘누구든 청정 태자로 하여금 다섯 가지 욕망을 좋아하게 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천금과 여러 가지 보물을 내리리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곧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저에게 천금과 여러 가지 보물을 주신다면 태자로 하여금 다섯 가지 욕망을 즐기게 하겠습니다.”

부왕은 대답하였다.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더욱 중히 상을 내리고 약속을 어기지 않을 것이다.”

그 음녀는 아뢰었다.

“태자는 어느 곳에서 주무십니까?”

“저 동쪽 별당에 있다. 거기는 여자란 없고 오직 남자 한 사람이 시봉하고 있을 뿐이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내궁(內宮)에 영을 내려 마음대로 출입하되 막지 말게 하소서.”

그 음녀는 그 날 밤 두 시를 알리는 소리가 나자 태자가 거처하는 방 문밖에서 거짓으로 소리 내 울었다. 태자는 여자의 울음소리를 듣고 시자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이곳에서 우는가?”

시자가 아뢰었다.

“어떤 여자가 문밖에서 울고 있습니다.”

“너는 빨리 가서 우는 까닭을 물어 보라.”

그 시자가 가서 우는 까닭을 묻자 음녀가 대답하였다.

“남편에게 버림받아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

시자는 돌아와 태자에게 아뢰었다.

“그 여자는 남편에게 버림받았고 또 도둑이 두려워 운다고 합니다.”

“그 여자를 데려다 코끼리 우리에 두라.”

그러나 그곳에 가서도 또 울었다. 다시 마구간에 데려다 두었지만 거기서도 또 울었다. 태자는 다시 시자에게 말하였다.

“이리 데리고 오라.”

곧 데려다 방에 들여놓았지만 거기서도 또 울었다. 태자는 친히 그에게 물었다.

“왜 또 우는가?”

음녀가 대답하였다.

“태자시여, 외롭고 연약한 여자라 너무도 두렵습니다. 그래서 우는 것입니다.”

“이 평상 위에 올라오라. 무서움이 없어질 것이다.”

그때야 여자는 잠자코 말이 없었고, 또 울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곧 옷을 벗더니 태자에게 다가가 손을 끌어다 자기 가슴 위에 얹었다. 태자는 곧 깜짝 놀랐지만 차츰차츰 흥분하게 되었고, 욕정이 일어 곧 그녀를 취하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청정 태자는 부왕에게 갔다. 부왕은 태자의 얼굴빛이 보통 때와 다른 것을 멀리서 보고 말하였다.

“너는 바라던 일이라도 이루었는가?”

태자가 대답했다.

“예, 대왕의 말씀대로 입니다.”

부왕은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하였다.

“소원이 무엇이냐. 내 뭐든지 들어주리라.”

“소원대로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중간에 후회하지 않으신다면 소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말대로 결코 중간에 후회하지 않으리라. 소원이 무엇이냐?”

“지금 대왕께서는 이 염부제를 다스리며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 염부제 안에 있는 모든 처녀들을 먼저 우리 집에 왔다가 그 뒤에 혼인하게 하소서.”

“네 말대로 하리라.”

왕은 곧 나라 안의 온 백성들에게 영을 내렸다.

“아직 시집가지 않은 처녀는 먼저 청정 태자에게 보냈다가 혼인시키도록 하라.’

그 때 그 성의 수만(須蠻)이라는 여자 차례가 되어 청정 태자에게 가게 되었다. 수만 장자의 딸은 벗은 몸에 맨발로 사람들 속을 다니면서도 부끄러움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저희끼리 말하였다.

“저 여인은 장자의 딸로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떻게 벗은 몸으로 사람들 속을 다니는가? 나귀와 무엇이 다른가?”

그녀는 사람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나귀가 아니다. 너희들이 바로 나귀다. 너희들은 여자가 여자를 보고 부끄러워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이 성 사람들은 모두 여자고, 오직 청정 태자만 남자다. 나도 청정 태자의 문 앞에 가면 옷을 입을 것이다.”

그 때 성 사람들은 저희끼리 말하였다.

“저 여자 말이 참으로 우리 마음에 든다. 우리는 정말로 여자요, 남자가 아니다. 오직 청정 태자만이 남자다. 우리도 오늘부터는 남자 노릇을 하자.”

그래서 그 성 백성들은 모두 전쟁 도구를 갖추고는 갑옷을 입고 몽둥이를 들고 부왕에게 가서 말하였다.

“두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들어 주소서.”

왕은 물었다.

“두 가지 소원이 무엇이냐?”

백성들은 왕에게 아뢰었다.

“만일 대왕께서 살고 싶으시면 저 청정 태자를 죽이십시오. 만일 태자를 살리고자 하신다면 지금 당장 대왕을 죽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법도를 능멸하는 저 청정 태자를 더 이상 받들어 섬길 수 없습니다.”

그 때 부왕은 곧 이런 게송을 말하였다.

집안을 위해선 한 사람을 잊고
마을을 위해선 한 집안을 잊고
나라를 위해선 한 마을을 잊고
내 몸을 위해선 세상을 잊는다.

부왕은 이 게송을 말한 뒤 백성들에게 말하였다.

“지금 곧 너희들 뜻대로 하라.”

그 때 사람들은 곧 청정 태자를 잡아와 두 손을 결박하고 성 밖으로 끌고 가서 저희끼리 말하였다.

“우리 다 함께 기왓장이나 돌로 때려죽이자. 어떻게 혼자 죽이겠는가?”

그 때 청정 태자는 죽음에 이르러 이렇게 말하고 맹세하였다.

“여러분, 나를 마음대로 죽이시오. 부왕께선 내 소원을 들어 주셨으니 나는 지금 죽더라도 감히 사양할 수가 없소. 제가 다음 세상에서는 이 원수를 꼭 갚게 하시고, 또 참사람 나한을 만나 빨리 해탈을 얻게 하소서.”

그 때 백성들은 태자를 잡아 죽이고 제각기 흩어졌느니라.”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 문제와 관련하여 왕권을 탄핵한 《아함경》 이야기는 여러 측면에서 재조명할 수 있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왕명에 따라 초야권을 태자에게 빼앗긴 백성들이 한 처녀의 방편에 의해 점차 깨달아 봉기하여 태자를 처형시키고서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때문에 경전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보았다. 이 이야기는 불교 본래적 입장에서 바람직한 왕권과 국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요즘 개념으로 보면 일종의 시민저항권이요, 불복종운동에 해당한다. 즉 체제 굴종형 또는 체제 순응형에서 체제 비판형 또는 체제 저항형으로 깨어나게 된 전개 과정을 보여준다. 같은 이야기가 대승경전에 해당하는 《잡보장경》이나 《인연승호경》 등에서도 나온다.

조준호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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