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요(禪要)》에 ‘어떠한 것이 진실로 참구하고 진실로 깨달은 소식입니까?’ 하니, ‘남쪽 산에 구름이 일고 북쪽 산에 비가 온다.’ 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도리입니까?” “비유하면 자벌레가 한 자를 갈 때 한 번 구르는 것과 같다.”

“擧《禪要》云: ‘如何是實叅實悟之消息?’ 云: ‘南山起雲, 北山下雨’”, 問: “是甚麽道理?” 答: “譬如尺蠖蟲, 一尺之行一轉.”

“고인이 ‘어떻게 견성합니까?’ 하자 ‘허공이 말할 때를 기다려라.’ 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이치입니까?” “내가 귀 먹었을까 걱정하느냐? 도리어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다시 목소리를 낮추어라.” “모르겠습니다.”

이에 당부하기를, “이제부터는 날마다 사람이 없는 곳을 향하여 다시 소리를 높여서 한 번 묻고 소리를 낮추어 한 번 물은 다음 가만히 서서 들어보면 절로 한 곳에서 말해주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 “古云: ‘如何得見性去?’ ‘待虛空能言時’, 此理如何?” 答: “患我重聽麽? 還會麽?” 曰: “不會.” 答: “更低聲着.” 又道: “不會.” 囑云: “自今以後, 日日向無人處, 更高聲問一着, 低聲問一着, 佇立聽之, 自有一處說破者.”

“자기의 안신입명(安身立命)하는 곳과 불조(佛祖)의 안신입명하는 곳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세 번 말해보라.” 세 번 말하고 나자 “이미 답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이 질문을 하기 이전은 어떠했는가?” “모르겠습니다.” “세 번 말을 마친 뒤에 도리어 하나도 없고, 묻기 이전에 안신입명하는 곳을 갖추고 있다. 비록 이러하나 다시 30년 뒤를 기다려야 한다.”

問: “自己安身立命處, 佛祖安身立命處同異?” 答: “三說着.” 三說了, 答: “已答了, 也會麽?” 云: “不會.” 答: “未問此問1)已前是甚麽?” 又道: “不會.” 答: “三說着2)三說了後, 却無一件. 未問已前, 具有安身立命處. 雖然如是, 更待三十年後.”

“고인이 ‘어떤 것이 부처님의 경계인가?’ 하자, ‘허공이 잠을 깨어 유정(有情)·무정(無情)을 다 씹어 삼켜 더 이상 씹어 먹을 게 없어 배가 고파서 사방으로 달려간다.’ 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이치입니까?” “급히 항마진언을 외라.” 항마진언을 한 번 외니, “조금이라도 지체했으면 앙화(殃禍)가 생겼다.” 하고, 무어라 말하려 하자 등긁개로 때리며 이르기를 “무슨 소견을 일으키느냐.” 하였다.

擧“古: ‘如何是佛境界?’ 云: ‘虛空醒3)眠了, 喫呑了有情無情, 更無可喫物, 飢走四處.’ 此理如何?” 答: “急誦降魔眞言.” 一遍, 云: “若少有遲滯, 禍事出.” 擬議, 以養化柄4)打之云: “起着甚麽所見.”

해설

답화(答話)라는 제목을 보면 경허 스님이 쓴 글이 아니라 물음에 답한 법문을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선요(禪要)》의 한 대목을 들어서 한 첫째 법문은 이 연재 다섯 번째 글인 ‘해인사 설법’ 편에서 이미 해설하였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말이 허공이 말하는 소식을 반복하여 보여주고 있건만 묻는 사람이 그 뜻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경허 스님은 다시 ‘스스로 목소리를 높여서도 물어보고 목소리를 낮추어서도 물어보면 절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일러준 것이다. 참으로 고구정녕하게 법을 일러주었다 하겠다.

“자기의 안신입명(安身立命)하는 곳과 불조(佛祖)의 안신입명하는 곳이 같습니까? 다릅니까?”라고 묻는 바로 그 자리가 안신입명하는 당처(當處)이다. 이 자리는 공(空)하여 묻기 이전이나 물은 뒤나 변함없이 여여(如如)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알아도 이미 그르친다. 자기 당처가 이미 목전에 분명하건만 다시 생각으로 더듬어 엉뚱한 곳을 잡는다면 이를 두고 고불과거구(古佛過去久), 즉 옛 부처가 지나간 지 오래라 한다. 생각으로 붙잡아 알았다 하면 이미 망상이 되고 그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30년 뒤를 기다려야 한다.”라 한 말은 ‘다시 30년을 참구하여야 한다〔更參三十年〕.”는 말이다. 30년은 중국 당송(唐宋) 때 선승(禪僧)이 수행해야 하는 대략의 세월로, 통상 이 정도의 세월을 공부해야 안목을 갖출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여기서는 다시 오랜 세월 참구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하였다.

“허공이 잠을 깨어 유정(有情)·무정(無情)을 다 씹어 삼켜 더 이상 씹어 먹을 게 없어 배가 고파서 사방으로 달려간다.”라 한 말은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境界)인가?”라는 물음에 답한 것이다. 경계란 국가나 토지의 경계선, 영역을 뜻하는 말이다. 즉 부처님의 경계를 물었기에 설정된 경계가 없고 우주 만물이 몽땅 하나의 공성(空性)일 뿐임을 표현한 것이다. 이 이치를 물은 사람은 하나의 공성을 망각하고 망상을 일으킨 것이다. 망상이 곧 마구니이다. 그래서 “급히 항마진언을 외라.”라 하자, 물은 사람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항마진언을 한 번 외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지체했으면 앙화가 생겼다.”라 한 것은 급히 항마진언을 외었기에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지체했으면 마구니에게 사로잡혔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물은 사람이 또 망상을 일으켜 무어라 말하려 하자 곁에 있던 등긁개를 잡고 때리면서 “무슨 소견을 일으키느냐.”라고 꾸짖은 것이다.

이 법문은 선학원본(禪學院本) 《경허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오자가 많다. 《호서화상법어》의 ‘虛空醒眠了’가 선학원본 《경허집》에 ‘虛空星眠了’로 되어 있다. 그래서 “저 허공의 별들이 다 잠자고”, “저 허공 속에 별들이 다 잠들고”와 같은 문맥에도 선리(禪理)에도 맞지 않은 생뚱맞은 번역이 나오게 된 것이다.

경허 스님의 시문을 수록한 책으로는 원래 《호서록(湖西錄)》이란 필사본이 있었지만 지금은 전하지 않아 그 전모를 알 수는 없고, 법어와 시문을 일부 수록한 《호서화상법어(湖西和尙法語)》라는 필사본이 남아 있다. 호서화상은 호서(湖西) 지방에서 온 경허 스님을 가리키는 호칭이다. 경허 스님이 영남에서 활동할 때 쓴 글들에서 ‘호서 승려[湖西歸]’로 자칭하였다. 따라서 이 두 필사본은 경허 스님이 영남에서 활동할 때 편집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호서화상법어》는 초암자(草庵子) 고경(古鏡 1882~1943) 스님이 임자년(1912)에 필사한 것이다. 고경 스님은 일제강점기에 해인사 주지로 있으면서 항일운동을 하다 투옥되어 고문을 받고 입적하였다. 임자년은 경허 스님이 입적한 해이다. 이 책 표지에 ‘수문기록(隨聞記錄)’라 써놓은 것을 보면 경허 스님이 해인사를 떠난 뒤에 경허 스님이 남긴 법문들을 고경 스님이 모아서 써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대개 한문 서적은 목판본(木板本)과 필사본보다 활자본에 오탈자(誤脫字)가 생길 확률이 높다. 행초서(行草書)로 쓰여진 원고를 탈초(脫草)하고 정서하여 활자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기기 쉬운 것이다. 활자본인 선학원본 《경허집》은 오탈이 많다.

 주) -----
1) 問 : 《호서화상법어(湖西和尙法語)》에는 이 글자가 없는데 없는 것이 문리에 맞다.
2) 三說着 : 《호서화상법어》에는 이 세 글자가 없다. 이 세 글자가 없는 것이 문리에 맞다.
3) 醒 : 선학원에서 간행한 《경허집》에는 이 글자가 ‘星’ 자로 되어 있고 《호서화상법어》에는 ‘醒’ 자로 되어 있는데, ‘醒’ 자가 문리에 맞기에 고쳤다.
4) 養和柄 : 등을 긁는 도구인 등긁개 자루이다. 등긁개를 양화자(癢和子)라 한다.

이상하 |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교수 ks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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