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 천태종의 창시자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은 일찍이 원효(元曉)를 숭모하고, 의상(義湘) 등을 공경하였다. 의천은 이들의 원융(圓融)을 받아들여서 화쟁사상(和諍思想)을 계승하고 중흥함으로써 교관병수(敎觀竝修)의 천태관을 확립하였다. 이 사상은 또한 고려의 보조 지눌과 태고 보우에게로 이어지며, 멀리는 조선의 청허 휴정에게로 이어져서 오늘날 한국불교의 특징으로 이야기되는 원융회통사상의 근저를 이룬다고 하겠다.

의천은 원효 이후 고려대에 이르기까지 난립한 종파(宗派)를 회통(會通)하고, 특히 교종과 선종의 극심한 반목을 융화 일치시키는 이념은 법화사상의 ‘회삼귀일(會三歸一)’이어야 한다고 인식했다. 다시 말해서 의천의 의도는 신라 후기 불교의 부정적인 찌꺼기를 청산하고 송학의 새로운 기풍을 받아들여 진정한 고려불교를 확립하려는 것이었다.

의천은 의상을 해동 화엄종의 시조로 보았으며, 원효에 대해서는 ‘옛날 천축의 마명(馬鳴)과 용수(龍樹)의 저술들과 대등할 만하다’고 저술을 극찬해 마지않았다. 이와 같은 신라불교 및 원효의 사상에 대한 칭찬과는 달리 균여(均如)의 화엄사상에 대해서는 매우 심하게 힐난하였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의천은 균여의 저술을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에 1권도 채록하지 않으면서 지적하기를, “균여의 글은 후세에까지 남길 만한 학적 가치가 작고, 문(文)이 불통해서 후학들이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수록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를 통해서 의천은 균여와 같은 화엄계통의 승려였지만, 균여계의 화엄을 심하게 배척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래 천태사상은 삼론종(三論宗)으로부터 발달해 온 것으로 화엄종에 비하면 한층 실천적이다. 천태종은 본래 관법(觀法)과 좌선(坐禪)을 중시함으로, 옛날부터 선가(禪家)에서는 천태종에 많은 관심을 갖고 대하면서, 천태종을 불교 중에서 제1종으로 여기고 선과 교의 교량적인 지위에 놓았다. 의천은 이러한 관계에 착안하여 일찍부터 천태 교리를 연구하고 화엄과 천태의 교판동이(敎判同異)와 비교연구에 진력한 뒤에는 송으로 건너가 자변 종간(慈辨 從諫, ?~1108) 등의 법사로부터 논증을 얻고 귀국하여 해동 천태종을 개창하였으며, 고려정신의 귀착점을 여기에서 찾고자 하였다.

의천은 불교사상의 통일 원리에 가장 이상적인 경전으로 《원각경(圓覺經)》과 규봉 종밀(圭峰 宗密, 780~841)의 소(疏)를 중요시 했다. 그는 《원각경》을 종밀의 소에 의지하여 강론하면서 논하기를, “이 소는 권교(權敎)를 꺾고 소승을 누르며, 돈교(頓敎)를 세우고 원교(圓敎)를 펼치기 위한 것”이라고 극찬하면서, 이어서 법상종(法相宗), 법성종(法性宗) 등의 모든 종파와 모든 경전의 이치가 망라되어 있다고 열거했다. 의천이 종밀의 사상을 좋아한 점은 그의 사상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원래 종밀은 선종 계통의 승려였으나 선을 버리고 화엄으로 개종해서 중국 제 5대 화엄종조로 추앙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화엄종으로 개종한 후에도 선에 관해서 계속 유의하던 중에 선종 승려들이 서로를 비난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제종의 선언(禪言)을 집록한 《선원제전집(禪源諸詮集)》을 만들어 화엄종의 입장에서 선종을 융합하려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의천이 주장하는 교관병수 사상의 실천수행인 삼관오교(三觀五敎)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의천이 화엄사상 가운데 가장 중요시한 내용이 법계연기(法界緣起)이고 이것을 연구하는 방법으로서 내세운 것이 바로 삼관오교이다. 그런데 이것은 화엄종, 그리고 천태종에서 실천수행의 덕목이면서 동시에 이론적인 교리조직까지도 포괄한다.

삼관(三觀)은 화엄의 입장에서 본다면 법계삼관(法界三觀)의 약어이다. 이는 화엄종에서 법계(法界)의 진리를 증득하기 위하여 닦는 삼중(三重)의 관계(觀界)를 말한다. 더 나아가 즉 모든 법은 실성(實性)이 없어 유(有)와 공(空)의 두 가지 집착을 떠난 진공(眞空)인 줄로 보는 진공관(眞空觀)과 차별 있는 사법(事法)과 평등한 이법(理法)은 분명하게 존재하면서도 서로 융합하는 것임을 보는 이사무애관(理事無碍觀)과 우주 간의 온갖 물건이 서로 일체를 함용하는 것으로 보는 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 등을 삼관(三觀)이라 한다.

삼관(三觀)은 천태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표현하면 일심삼관(一心三觀)사상을 말한다. 이는 천태의 진리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천태 법화사상을 체계 짓는 근저이다. 삼제원융(三諦圓融)이란 세 개의 진리를 공관(空觀)으로 자각하는 것이다. 세 개의 진리란 공(空)·가(假)·중(中)을 말한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공(空)이라고 관찰하는 것이 공제(空諦)이다. 가제(假諦)란 공제 때문에 부정되어 존재하는 것을 이제 다시 가(假)라고 하여 긍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단 부정되어 존재하던 것들을 한층 고차적(高次的)인 시각에서 긍정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 모두 공인지 모르지만 여하 간에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가제(假諦)에 우리가 지나치게 머무른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세상은 역시 공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가제와 공제는 상호 부정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중제(中諦)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면 공제 가운데 가제와 중제를 포함하고, 가제 가운데 공제와 중제를 포함하며, 중제 가운데 가제와 공제를 포함하고 있는, 세 가지 존재의 자각이 혼연하여 일체가 된 곳에 일심삼관(一心三觀)의 삼제원융(三諦圓融)의 경지가 전개되는 것이다. 이것은 천태에 의하면 깨달음의 궁극적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일경(一境)에 삼제(三諦)가 갖추어진 상태인 것이다. 이것을 즉공(卽空)·즉가(卽假)·즉중(卽中)의 삼제라고 한다. 이 삼제의 진리를 관(觀)하는 것이 삼관(三觀)이 되고, 원융삼제(圓融三諦)를 관(觀)하는 것을 삼제원융관(三諦圓融觀)이라고 한다. 인간의 한 마음이 그대로 원융삼제라고 보는 것이다. 천태에서, 모든 존재가 있는 그대로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진리라고 보는 근거는 여기에 있는 것이며, 이것은 천태사상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실천의 요체이다.

오교(五敎)란 화엄의 교판론인 소승교(小乘敎), 대승시교(大乘始敎), 대승종교(大乘終敎), 돈교(頓敎), 원교(圓敎)를 말하는 것으로서 결국 삼관오교는 학문과 실천, 즉 교관을 겸수하라는 화엄종의 실천이론이다.

의천은 이러한 화엄 및 천태종의 삼관오교와 교관병수사상에 천태종의 회삼귀일 사상을 더하여서 당시의 여러 종파를 융합하여 해동 천태종을 창시한다.

다시 말해서 의천의 천태사상은 법장의 화엄교학과 지의의 천태교관 위에 정립되었다. 그러나 화엄과는 달리 천태사상은 교학과 관법이 일치 융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천은 화엄보다 천태에 보다 더 기운다. 결국 의천이 표방하는 바의 천태사상은, 일경(一境) 중에 일체 지혜가 포함되어 있고, 일체 지혜 중에 일체 제법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일심삼관(一心三觀)의 실천덕목으로 관법(觀法)하면 미혹을 깨쳐서 고통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교(敎)와 관(觀)을 병수(竝修)하라는 의미에 다름이 아니다.

이덕진 | 창원문성대학교 교수, 010811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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