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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그노시스, 그 억압 속으로
기독교 교리의 역사는 논쟁과 배격의 역사
2017년 03월 02일 (목) 09:37:06 김문갑 meastree@naver.com

1. 금문(今文)과 고문(古文)

1971년 12월,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의 마왕퇴(馬王堆)라 불리는 무덤가에서 한 무리의 병사들이 땅을 파고 있었다. 열심히 삽질을 하던 순간 갑자기 푸른 연기가 솟아올랐다. 이렇게 해서 발견된 마왕퇴 한묘(漢墓). 이 무덤은 진작부터 5대10국(五代十國) 시기 초(楚)나라 왕 마은(馬殷, 852〜930)과 그의 아들 마희범(馬希范)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조사 결과 BC 186년에 죽은 한 귀부인의 무덤으로 밝혀졌다. 전한(前漢) 장사국의 승상 이창(李蒼)과 그의 부인, 그리고 아들 일가의 무덤이었던 것이다.

마왕퇴 한묘에선 엄청난 부장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눈길이 가는 것은 비단에 쓴 책, 이른바 백서(帛書)이다. 특히 이 백서 《노자(老子)》는 기존의 죽간본(竹簡本) 《노자》와 여러모로 비교가 되었는데, 내용상 기존의 학설과 큰 차이는 별로 없었다.

진시황제(秦始皇帝)가 천하를 통일하고 강력한 중앙집권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그에 대한 반발 또한 거세졌다. 지식인과 유생들의 비판 성명이 줄을 잇자, 진시황은 승상 이사(李斯)의 건의에 따라 아예 지식의 근거를 제거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즉 농업이나 의학, 점서와 같은 실용서를 제외한 모든 책을 모아 불사르고, 이후로 책을 끼고 다니는 자는 처형한다는 협서율(挾書律)을 반포한 것이다. 기원전 213년의 일이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여전히 비판을 일삼는 지식인 학자들 460여 명을 구덩이에 산 채로 묻어 버렸다. 역사는 이를 분서갱유(焚書坑儒)라고 부른다.

협서율이 실제로는 엄하게 실행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상당부분 매우 강력하게 실행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진나라가 얼마못가 망하고 이어 등장한 한나라가 국가 우선사업으로 시행한 것이 사라진 경전의 복원사업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협서율이 엄하게 시행되지 않았다면 많은 책들이 남아 있었을 것이고 굳이 국가 차원에서 경전 복원사업을 대대적으로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경전 복원사업은 긁어모은 단편들을 다시 편집하고, 부족한 부분은 학자들의 기억에 의존하여 그들의 구술을 받아 적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당시의 책은 대나무 조각에 글을 쓰고, 이 단편들을 끈으로 엮어 둘둘 말아 보관하는 두루마리 형태의 죽간(竹簡)이었다. 따라서 끈이 끊어져 단편들이 흩어지면 이를 다시 연결하는 과정에 순서가 뒤바뀌는 일이 흔히 일어났다. 이를 착간(錯簡)이라고 하는데, 대나무 단편들이 잘못 섞였다는 뜻이다. 따라서 착간이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제대로 잘 복원되고 있는지를 검증해야 하였고, 이런 과정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던 학자들이 흔히 오경박사(五經博士)라고 하는 박사들이다.

이렇게 복원사업을 진행하던 중, 경제(景帝, 재위 BC 157〜 BC 141) 때 그의 아들 노공왕(魯恭王)이 궁실을 확장하기 위해 공자의 옛 집을 허물었는데, 이때 벽 속에 숨겨두었던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논어》, 《상서》, 《예기》, 《춘추》, 《효경》 등 수십 편의 경전이 분서의 화를 피하고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책들은 옛 글자인 과두문자(蝌蚪文字)로 기록되어 있었다. 과두문자는 흔히 올챙이 글자라고 하는 것으로 한나라 이전에 사용되던 고문자였다. 반면 한창 진행 중이던 경전복원은 한나라 당시에 사용하던 글자인 예서(隸書)를 사용했다. 그래서 과두문자로 써진 경전은 고문(古文), 예서체로 써진 경전은 금문(今文)이란 말을 덧붙여 구별하였다. 예컨대 《상서》의 경우 《고문상서》, 혹은 《금문상서》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어찌되었든 고문경전이나 금문경전이나 내용상 큰 차이는 없다.

2. 나그함마디(Nag Hammadi) 문서

   
▲ 나그함마디 파피루스 문서
1945년 12월, 이집트 중부의 작은 마을 나그함마디에서 한 농부가 거름을 얻기 위해 땅을 파다가 2m정도 되는 항아리를 발견한다. 밀봉된 항아리에는 13권의 파피루스 코덱스1)가  들어있었다. 이를 나그함마디 문서라고 하는데, 이 문서에는 복음서 등 초기 기독교 문서 52편과 플라톤의 《국가》 콥트어 번역본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코덱스들은 마을 근처에 있었던 파코미우스 수도원(Pachomian monastery)에 보관되었던 것들로, 367년 당시 대주교 아타나시우스가 이른바 27권의 정경(正經) 목록을 발표하며 외경(外經)을 금하자 처벌을 피해 땅에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문서의 발견은 2,000년의 세계사를 다시 보게 하는 대사건으로 여겨진다. 그중 오늘날 가장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도마복음서》를 잠시 들여다본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것을 알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부족하다면 아무 것도 모르는 자이니라.” 2)

읽는 순간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경구, “너 자신을 알라!”가 떠오른다. 무지의 자각. 소크라테스는 많은 현자들을 찾아다녔으나 그들은 모두 자신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자신에 대해 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네 눈앞의 것을 알라. 그리하면 너로부터 감추어져 있는 것이 네게 드러나리라.”3)

예수의 말은 저 먼 하늘나라 이 우주 밖을 보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을 알라는 말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M. 하이데거가 그토록 강조했던 현존재(現存在, Dasein), 즉 자기 자신을 알라는 말이다. 이때의 ‘앎’은 나무와 돌을 구별할 줄 아는 분별지(分別知)가 아니다. 나무며 돌이며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세계가 지금-여기 바로 나로부터 드러나는 체험이며 깨달음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존재 위에 비치는 빛이니라. 나는 전부이니,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오고 모든 것이 나에게로 돌아온다. 나무토막을 쪼개 보아라. 내가 그곳에 있을 것이다. 돌을 들어보아라. 너희는 그곳에서 나를 발견하리라.” 4)

따라서 여기에서 말하는 ‘나’는 특정인 예수가 아니다. 나무토막에서, 돌덩이에서 발견하는 예수는 ‘나 자신’이며, 곧 신이다. 나 자신을 깨닫는 순간은 곧 신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그토록 멀고 어려운 길을 걸어 도달한 곳에서 찾게 된 것. “완전히 내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그렇듯 예수와 완전히 닮아 구별하기 힘든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3. 그노시스

나그함마디 문서는 그노시스파(Gnosticism), 즉 기독교 영지주의의 보고이다. 그노시스(Gnosis)는 ‘앎’, ‘인식’이란 뜻의 그리스어이다. 다만 그 앎의 내용이 단순한 지식이 아닌 영혼의 깨달음, 혹은 종교적 각성이란 의미를 담고 있어서 영지(靈知)라고 번역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auton)”, 즉 “너 자신을 알라”고 하였을 때, ‘그노티’가 바로 그노시스와 같은 어원이다.

영지주의는 주체적 깨달음을 통해 신, 혹은 신적 존재와의 합일을 추구한다. 이런 유형의 종교나 사상은 고대에는 대단히 넓은 지역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다. 중국의 도교나 심지어 유교, 그리고 인도의 불교, 특히 유가행파나 여래장 계통, 밀교, 힌두교 등등 대단히 광범위한 영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고대문명치고 영지주의를 표방하지 않는 종교나 사상이 없는 곳은 없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당연히 고대 문명의 시원(始原)인 수메르 문명의 발상지이며, 이후 메소포타미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유대 문명이 피어났던 중근동(中近東), 그리고 바로 옆의 이집트와 그리스 문명에서 영지주의적인 종교나 사상이 발달한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영지주의는 애초 고대 종교사상의 보편적인 한 형태였던 것이다. 다음은 《장자》 〈응제왕(應帝王)〉에 나오는 우화이다.

남해의 제왕 숙(儵)과 북해의 제왕 홀(忽)은 수시로 중앙의 제왕 혼돈(混沌)의 땅에서 만났다. 그때마다 이들은 혼돈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숙과 홀이 혼돈의 은혜에 보답코자 상의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들은 모두 일곱 구멍이 있어서 이를 통하여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쉰다. 그런데 혼돈은 홀로 이런 구멍이 없으니 구멍을 뚫어주자.”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하루에 구멍 하나씩 뚫어 주었는데 7일째에 혼돈은 그만 죽고 말았다.

일곱 개의 구멍은 눈, 코, 귀, 입 등의 감각기관을 가리킨다. 장자는 감각기관을 좇아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는 지식을 소지(小知), 즉 작은 지식이라 하였고, 물아일체(物我一體) 만물평등(萬物平等)을 깨닫는 것을 대지(大知), 큰 지혜라고 하였다. 따라서 혼돈이란 큰 지혜이며, 주체인 내가 우주만물과 하나가 되는 깨달음의 경지이다. 그런데 이런 경지는 인간이 본래 갖고 있던 것이다. 인간이 성장하면서 감각기관에 의존하게 되고 외부사물에 얽매이며 분별심이 작용하게 되면서 그 본래 상태를 잃어버린 것이다. 혼돈의 죽음은 이 원시적 생명력의 상실을 풍유한다. 도가의 수행이란 바로 원시적 생명력을 회복하려는 시도이며, 인도의 요가나 영지주의의 수행도 같은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어떤 눈으로도 보지 못했고 어떤 귀로도 듣지 못했고 어떤 손으로도 만지지 못했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결코 일어난 적이 없던 것을 주겠노라.”5)

예수께서 젖먹이 아이들 몇 명을 보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젖먹이 아이들이 왕국에 들어가는 자들과 같으니라.” 제자들이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린아이로 그 나라에 들어가겠나이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둘을 하나로 만들 때, 그리고 안을 바깥처럼, 바깥을 안처럼, 위를 아래처럼 만들 때,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만들어 남자는 남자가 아니고 여자는 여자가 아닌 것으로 만들 때……그러면 너희가 그 나라에 들어가리라.”
6)

감각기관에 의지하는 분별심(分別心)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세계. 그 세계는 오직 젖먹이 아이처럼 안과 밖을, 남자와 여자를 분별할 줄 몰라야 비로소 들어갈 수 있는 세계이다. 영화 《헤드윅》의 주인공처럼 남자이지만 남자가 아니고, 그렇다고 여자도 아닌 그런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는 세계이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영화 속 헤드윅은 매우 낯설고 이상한 사람이지만, 아주 먼 옛날에는 극동에서부터 서쪽 그리스 로마까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고,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이웃이었다.

4. 배척과 억압

기독교 교리의 역사는 곧 논쟁과 배격의 역사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의 교리는 간단없는 교리논쟁, 혹은 이단논쟁을 통하여 정립된 것이다. 어떤 쟁점이 부각되고, 논쟁이 격렬해질 때쯤 공의회(公議會)가 개최되면 그간의 논쟁에 결론이 내려진다. 그리고 공의회에서 승리한 쪽은 권력을 얻고, 패배한 쪽은 축출되었다.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에선 예수를 신의 피조물이라고 보았던 아리우스주의가 배척되었다.
431년의 에페소 공의회에선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구분한 네스토리우스주의가 배척되었다.
451년의 칼케돈 공의회에선 예수에게는 신성 밖에 없었다는 단성론이 배척되었다.
553년의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선 기존 공의회 결정들을 재확인하고 새로운 형태의 아리우스주의, 네스토리우스주의, 그리고 단성론을 단죄하였다.

실로 기독교의 교리발달사는 배척과 축출, 억압과 통제가 되풀이 된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이 이단으로 배척한 아리우스, 네스토리우스, 단성론자들은 각각 별개의 교설이나 유파라기보다는 기독교 영지주의의 다른 버전으로 보인다. 변신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고개를 들면 다시 처단하고 축출하는 양태. 이런 배척과 억압은 중세 말 근대 초 십자군에 의해 자행된 남프랑스 카타리(Cathari)파에 대한 대량 학살과 이후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종교재판을 향해 치달려갔다.

나는 그들과 쉴 새 없이 싸우리라. 만일 전쟁의 불행이 이단들을 진실로 이끈다면, 우리는 그 어떤 전쟁이라도 불사해야 한다. 죄인들에게는 어떤 자비도 베풀어서는 안 된다. 내가 볼 때 카타리파는 사라센 인보다도 더 흉악한 자들이다. 모두 박살내야 한다.

어느 극우 파시스트의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 발언인가? 성스럽기 그지없는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의 발언이다. 카타리라는 말은 순수, 순결, 혹은 청정이란 뜻으로, 카타리파는 금욕적인 삶을 살며 영지주의 전통을 되살리고 있었다.

교황은 이들을 이단으로 단죄하고 척결할 것을 명하였다. 1209년 교황의 특명을 받은 십자군은 남프랑스의 베지에(Béziers)시를 공격하여 주민 거의 전부를 죽였다. 교황의 특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모두 다 죽여라. 신은 그의 백성을 알리라.”

십자군들은 계속해서 남프랑스의 주요 도시를 차례로 공격하며 주민들을 학살했다. 학살, 종교재판, 이단 심문, 화형 등의 낱말이 극성을 부렸다.

서구 기독교는 기독교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길 중에서 최악의 길로 나아갔다. 그들은 인간을 신의 은총에 매달리며 구원을 구걸해야만 하는 노예로 전락시켰다. 다음과 같이 물어본다. “구원은 당신 스스로의 힘으로 가능한가? 아니면 반드시 신의 은총을 받아야만 가능한가?” 기독교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며, 반드시 신의 은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불교에서 성불의 길은 온전히 ‘나’만이 걸어갈 수 있다. 유교에서 성인의 길 또한 오로지 ‘나’만이 가야하는 길이다. 부처가 다시 살아나도, 공자가 다시 태어나도 그 길은 오직 ‘나’의 길이다. 하지만 기독교에서 구원은 전적으로 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죄는 인간이 지어놓고 하느님에게 해결해 달라고 매달리는 형국이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신에게 의존하여야만 하는 교리. 이런 교리는 의도했던 아니던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에 의존하게 하는 매우 교묘한 장치였다.

무수히 많은 공의회, 그 후로 간단없이 지속되어온 종교재판과 이단 심문, 그리고 마녀사냥에 이르기까지, 극악무도한 모든 패악을 자행하며 이른바 정통 가톨릭이 만들고 지켜온 것은 이런 것이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이단, 혹은 이교라는 이름으로 죽이고, 순교라는 이름으로 죽게 하면서 그들이 세워 놓은 것은, 인간을 신의 노예, 교회의 종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살고자 한 사람들을 말이다.

주)-----
1) 13권의 파피루스 코덱스 : 코덱스13은 코덱스6에 들어 있던 것이므로 실제로는 12권의 코덱스라고 한다.
2) 도마복음서 67
3) 위의 책 5
4) 위의 책 77
5) 위의 책 17
6) 위의 책 22

김문갑 | 철학박사·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meas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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