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동여지도>의 사찰 지명 연구’ 세미나 모습.

고산자 김정호(1804~1866) 선생이 철종 12년(1861)에 완성한 <대동여지도>에는 모두 242개 사찰이 기록돼 있다. 사찰 지명 수는 행정·군사 지명 다음으로 많다. 유교를 지배이념으로 세워진 조선에서 지도에 서원이 사라진 것과 비교된다. 왜일까?

불교사회연구소(소장 법응)는 2월 6일 오후 2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대동여지도와 사찰지명’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류명환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과 김기혁 부산대 교수가 함께 발표한 ‘<대동여지도>의 사찰 지명 연구’는 이런 의문을 풀어준다.

류 전임연구원과 김 교수는 “<대동여지도>에는 335개 군현 가운데 115개 군현에 사찰 242곳이 기록돼 있다”며, “자연 지명과 행정·군사 지명을 제외하면 사찰 지명이 가장 많다”고 밝혔다. <대동여지도>에 가장 많은 사찰이 기록된 지역은 함경도다. 사찰 57곳이 기록됐다. 경상도 35곳, 전라도 32곳, 강원도 31곳이 뒤를 이었다.

류 전임연구원과 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김정호는 자신이 제작한 <청구도>에 잘못 기록한 사찰 지명을 수정해 <대동여지도>에 반영했다. <대동여지도>에 기록된 사찰은 242곳이지만 출처가 불분명한 곤양 고점사와 장흥 선암사, 중복 기록된 북청 백암사와 사천 배왕사를 제외하면 수록 사찰 수는 모두 238곳이다.

류 전임연구원과 김 교수는 <대동여지도>에 함경도와 강원도지역 사찰이 많이 수록된 이유로 외세 침략이 진행되던 당시 호국불교의 전통을 간직한 사찰이 승군의 본거지였기 때문으로 보았다. 특히 함경도에는 각 군현마다 승군이 배치되면서 가장 많은 57개 사찰이 기록됐다는 것이다. 반면에 “세금과 군역을 회피하던 서원은 지도에서 모두 삭제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함경도와 강원도 지역에 사찰이 많이 기록된 것은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발이 덜 진행된 것도 한 원인”으라고 분석했다. “지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상대적으로 많은 사찰 지명을 수록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앞서 불교사회연구소장 법응 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대동여지도>는 세계가 인정하는 우수한 옛 지도”라며, “불교계가 활용할 바가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격동의 19세기에 고산자 김정호 선생은 모든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며 “그 융섭적이고 실천적인 성격은 불교의 대승사상과도 맥이 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동여지도>는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만든 지도로, 한반도를 남북 120리, 동서 80리 간격으로 나눠 모두 22개 첩에 담았다. 각 첩의 지도를 이어붙이면 세로 7m, 가로 4m의 대형 전도가 된다. 각 첩은 병풍처럼 접고 펼 수 있게 해서 휴대와 열람이 편리하도록 제작됐다. 이는 책으로 제본된 이전 시기 지도와는 다른 형태로 첩을 펼쳐서 상하로 연결시켜 볼 수 있도록 고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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