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정상좌(定上座 臨濟宗)

 '설암흠' 세 선사와 문답서
 흠산을 '오줌싸개'로 취급

정상좌는 임제의현선사로부터 법을 이었다. 임제선사의 기봉을 잘 받아 지녀 임제의 재래(再來)라고까지 불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대사명람(大寺名覽)에 나간 일이 없고 그 한평생을 오로지 운수생활하는 것으로 수행했다. 어느 날 행각하는 중에 임제선사를 찾아 나선 암두 · 설봉 · 흠산의 세 스님과 마주쳤다.(암두와 설봉은 훗날 덕산의 법을 이었고 흠산은 동산양개의 법을 이었다) 이 세 스님이야말로 당시 ‘설암흠(雪巖欽)의 삼행(三行)’이라 불린 뛰어난 수행자였다.
먼저 암두선사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정상좌가 말했다. “임제스님 계시는데서 왔다.” 암두가 또 묻기를 “화상스님께서는 만복있으신가(안녕하신가)?” 정상좌는 “이미 순세(順世 스님의 죽음)하셨다.”하니 이 말을 들은 암두는 정상좌를 보고 “우리 세 사람은 임제스님을 뵙고 가르침을 구하려 일부러 나섰던 것이다. 복록천박하여 천화하셨다니 매우 유감이다.”라고 말하곤 “모처럼 이곳까지 왔으니 상좌에게 물어보는데 임제스님께서는 평소 어떠한 수시(垂示)를 하셨는가? 바라건대 한두 칙만이라도 들려 달라”고 청했다. 이 자리에서 정상좌는 임제의 ‘붉은 살 이야기’(임제의 항 참조)를 들려주었다. 암두는 크게 감동하고 놀랐다. 그러나 나이 어린 흠산은 “왜 비무위진인(非無位眞人)이라 말하지 않았는가.”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무의식중에 던졌다. 정상좌는 느닷없이 흠산의 멱살을 잡고 “무위의 진인과 비무위의 진인이 얼마나 서로 다른지 말하라. 자, 말해 보아라.”하고 윽박질렀다. 그러나 흠산은 아무런 대답도 못한 채 눈만 휘둥글게 뜨고 있을 뿐이었다. 이에 암두가 나서서 흠산의 무례를 사과했다. 정상좌는 두 사람을 보고 흠산의 잘못을 용서했다. 그리고 말했다. “이 두 사람의 늙은이가 없었다면 이 오줌싸개를 꺾어 뭉개 버렸을 텐데.”하였다.

정상좌저립(定上座佇立) [임제불법대의 臨濟佛法大意]
정상좌가 임제선사에게 불법의 궁극적인 의미란 어떤 것인가 물었다. 임제화상은 선상에서 내려와서 그를 움켜잡고는 뺨을 한 대 철썩 때린 뒤 확 떼밀어 버렸다. 정상좌가 얼이 빠져 멍하니 서있었는데 옆에 있던 스님이 “정상좌, 어째 절을 하지 않나?”하고 말했다. 정상좌는 절을 하면서 홀연히 깨달았다. 《벽암록》 제32

50. 동봉암주(桐峰庵主 臨濟宗)

동봉암주는 임제의현선사로부터 법을 이었다.

동봉암주작호성(桐峰庵主作虎聲) [동봉암주대충 桐峰庵主大蟲]
한 스님이 동봉암주를 찾아와 대뜸 “지금 여기서 큰 호랑이를 만났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하고 물었다. 동방암주는 곧 ‘어흥’하고 호랑이 소리를 흉내 냈다. 스님은 이를 보고 벌벌 떠는 시늉을 했다. 동봉암주는 껄껄 크게 한바탕 웃었다. 이에 스님이 “이 늙은 도적놈아.”하고 욕을 하니까 동봉암주는 “너 따위가 어찌 나와 겨룰 수 있겠는가.”하고 받았다. 스님은 그만 기가 죽어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설두화상이 ‘둘 다 제법이긴 하지만 모두 날강도일세. 두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치는 격이니.’하고 평했다.) 《벽암록》 제85

51. 금화구지(金華俱胝 ?∼? 南嶽下)

무주 금화산의 구지화상(俱胝和尙)은 속성(俗姓)이 분명치 않다. 처음 작은 암자에 살고 있을 때 실제(實際)라는 여승이 찾아와 삿갓을 쓴 채로 석장(錫杖)을 쿵쿵거리며 구지스님의 좌선하는 주위를 세 번 빙빙 돌았다. 그리곤 말을 건넸다. “한 마디 할 수 있다면 갓을 벗겠소.” 세 번이나 여승의 물음이 있었으나 구지스님은 끝내 한마디의 대꾸도 하지 못했다. 여승이 낙담하여 돌아가려고 하자 그 때서야 구지스님은 “해도 저물어가니 잠시 쉴 겸 하룻밤 머물다 가시라.”고 말했다. 이에 여승이 말하길 “한마디 한다면 머물겠소.”했다. 구지스님은 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여승은 지체 없이 떠나갔다.

▲ 삽화=강병호 화백

이 여승의 행동은 구지스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 장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장부의 기백은 없다. 암자를 버리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수행하리라.”하곤 분연히 뜻을 세웠다. 대용맹심으로 기세를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자 그날 밤 꿈에 산신이 나타나 “이 암자를 떠나면 안 된다. 몇 일내에 살아있는 보살이 와서 화상을 위해 설법하리라.”고 일러주었다. 여기서 구지스님은 수행길에 오르는 것을 늦추어 보기로 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열흘이 채 안되었을 때였다. 대매법상(大梅法常)선사의 법사(法嗣)인 천용화상(天龍和尙)이 암자에 들렀다. 구지스님은 이야말로 꿈에서 말한 보살이리라 생각하고 천용화상을 친절하게 맞아들였다. 구지스님은 극진히 예배한 후 일의 자초지종을 상세하게 말씀드리고 가르침을 청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천용화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한 손가락을 우뚝 세워 보였다. 구지스님은 그 자리에서 크게 깨달았다.
이로부터 구지스님은 누가 무슨 물음을 해도 오로지 한 손가락을 우뚝 세워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세수(世壽)와 입멸년도 등에 대해 밝혀진 바 없다.

구지수지(俱胝竪指) [구지지수일지 俱胝只竪一指] [구지지두선 俱胝指頭禪] [구지일지 俱胝一指]
구지화상은 누가 물으면 다만 한 손가락을 세워 보일 뿐이었다. 화상을 시봉하던 한 동자에게 어느 때 한 외인이 물었다. “화상께서는 어떤 법요를 설하시던가?” 이에 동자도 역시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이 일을 전해 들은 화상은 칼로 동자의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동자는 아프다고 통곡하며 달아났다. 구지화상이 이런 동자를 불렀다. 동자가 화상의 부름에 머리를 돌렸다. 화상은 동자에게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순간 동자는 홀연히 깨달았다. 구지화상이 세상을 하직하려 할 즈음 대중에게 이르기를 “천용일지두(天龍一指頭)의 선을 배워 한 평생 쓰고도 없어지지 않은 채 남았도다.”는 말을 마치고 입적하였다. 《무문관》 제3 《종용록》 제84

구지수지(俱胝竪指)
구지화상은 누가 무슨 질문을 하건 간에 그저 한 손가락만 세워 보였다. 《벽암록》 제19

-선학원 총무이사 · 아산 보문사 주지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