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논설위원인 박찬일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최근 시집 《아버지 형이상학》을 출간했다.


《아버지 형이상학》에는 총 65편의 시와 박순영 연세대 명예교수가 ‘시에서 철학적 사유로-시인 박찬일의 시적 형이상학 이해하기’를 주제로 한 해설이 담겨 있다.

박순영 명예교수가 ‘인간이해’라는 부제로 소개한 시를 들여다보면 이렇다.

우리 아버지도 그러셨다. 50년 동안/연탄배달하다 돌아가셨다./리어카를 뒤에서 밀던 나는 막걸리를 마신다/일요일에 교회에서 기도하셨다. 일요일에/육림극장에서 가족이 스파르타쿠스를 본 적이 있다./아버지가 아버지를 아셨을까? 나는 아버지를 모른다./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데.//돌아가신 아버지가 오셔서 리어카를 밀라 하신다./50년 동안 리어카를 끄셨으니까 갈 데가 없으셨다/리어카가 인생의 전부였던 인생./막걸리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고 있지만,/막걸리를 50년쯤 마시면 내가 아버지같이 된다?/막걸리가 인생의 전부였던 인생,/인생의 전부가 있었던 인생이 갈 곳이 없다?/막걸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아버지는 많은 걸 알고 계신다./연탄배달부인생이 막걸리인생에게 말하신다./막걸리를 50년 동안 마시면 아버지와 같게 된다.//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서 막걸리를 마시는 게 아니다./아버지가 계속 말하신다. 리어카인생 50년/아버지를 알고 계신 아버지가/막걸리가 인생의 전부인 인생에게
-‘리어카인생 50년이면’ 전문

이 시를 통해서 시인은 시지포스의 신화를 암시한다고 했다. 리어카 밀기와 연탄배달은 시지포스가 산꼭대기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아버지처럼 그 아들도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 여기에 삶의 부조리와 무의미에 대한 해석이 담겨있다고 해설자는 말한다. 반복되는 삶속에서 시지포스나 아버지와 아들은 고역과 노역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와 목적을 알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아버지, 즉 인간 일반은 50년, 아니 수십년 동안 무거운 바위와 같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연탄을 나르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에 고분고분하게 복종하지 않는다. 신에게 도발하고, 죽음과 대결하고, 필연에 도전하고, 무에 저항하는 시인은 니체와 같은 시인 철학자라는 것이다. ‘막걸리 50년’은 이의 상징이다. 아폴론적인 이성과 질서에 대항했던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이다. 막걸리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면서도 막걸리가 인생의 전부인 막걸리인생이 되고 결국 아들도 아버지가 된다.

박순영 명예교수는 이런 식으로 박찬일 시인의 시들을 △난해성 또는 비이해성 △부정성 △시선 △메멘토 모리 △나의 아버지는 나로 구분해 설명해주고 있다.

아버지는 모르셨을 리 없다/몰락해 주리라, 자발적 몰락 의지가 유일한 수순인 것/동일한 것이 영원히 반복되어도 봄 여름 가을 겨울/똑같은 순서로 영원히 반복되어도/영원히 반복해서 살아주리라 영원히 반복해서 기꺼이 몰락해 주리라/-‘아버지 형이상학’ 중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전해질 존재의 비밀, 즉 절대적인 메시지다. 그 메시지는 아버지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이며, 자신에게 더 가까워진 죽음은 자발적 몰락의지에서만 순환된다는 사실이다. 해설자는 시인의 시를 통해 이러한 메시지를 뽑아내 독자들에게 필독을 권장하고 있다.

특히 해설자는 “박찬일 시인은 시적 형이상학이란 이름으로 모든 존재의 본질이 비존재에 근거해 있다는 것을 해석하면서, 존재의 비밀을 열어주는 메신저다”고 소개한다.

박찬일 시집/예술가/값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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