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성 이론은 그리스 이오니아학파의 자연철학에서 시작되었다. 탈레스에 의할 때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아낙시메네스에 의할 때 만물의 근원은 공기이다. 현대의 양자물리학에서 추구하는 최종이론(final theory)의 출발점이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전일성(oneness) 이론이다. 혹은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등 유일신교들이다. 마르셀로 글레이서는 전일성 이론을 ‘이오니아학파의 망상’이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가 그 일부인 자연을 하나로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은 화폭 속의 인물이 화폭의 전체 구도에 관해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화폭의 의미는 화폭 안의 관점이 아닌, 화폭 바깥의 관점에 달려 있다. 세계의 의미는 세계 안이 아닌, 세계 밖에 있다. 혹은, 세계를 하나로 설명하기 전에 인류는 강제로 퇴장당하는 것이 운명인지 모른다. “모두들 어디 있는 거야?Where is everybody?”(페르미); 외계지능이 있다고 해도 그들이 안 오는 것은 그들 역시 멸종 수순을 밟았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종도 고정된 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다.’

우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 일부인 우주를 우리가 설명할 수 없다. 인식 주체가 우주 속에 있는 한 우주는 온전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눈(眼)은 빼고 시야에 들어오는 것만 설명하는 것과 같다. 우주의 전모(?)를 밝히는 것은 우주 밖에 있을 때에 가능하다. 우주의 의미는 우주 바깥에 있다. 우리가 가상세계에 살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가상세계의 일부인 관계로 우리는 가상세계에 관해 말할 수 없다. 가상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가상세계 바깥쪽에 있어야 한다. 가상세계에 있으면서 가상세계 바깥쪽을 이해하기가 곤란하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인간은 누구이고,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 인간은 별에서 왔으며, 인간은 수소, 탄소, 질소, 산소, 인, 황, 철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인간은 별로 돌아간다; 우주이념과 인간이념의 관계는 상위체계와 하위체계의 관계이다. 우주는 우주 안에 있는 생명체들보다 먼저 존재했다. [우주는 138억 년 전에 만들어졌고 지구는 46억 년 전에 만들어졌다] 인간은 우주의 소산이다. 하위체계가 상위체계에 올라탈 수 없다. 화투가 화투놀이에 관해서 말할 수 없다. 인간에 의한 최종이론, 혹은 ‘모든 것의 이론’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세계의 의미를 묻기 전에 이미 세계에 던져진, 즉 강제적으로 세계에 편입된 세계-내-존재이다. 인간은 세계의 의미를 숙고한 후 세계의 문을 노크하고 세계에 입장한 존재가 아니다. 입장권 없이 들어온 현존재이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물론 물을 수는 있다. 이 세계는 왜 존재하는가? 이 세계는 왜 이런 형태로 존재하는가?

세계의 운명을 얘기할 수 없다, 세계를 확고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소멸 빼고는'이다. 소멸은 확고한 운명이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상대적인 모든 것은 움직이고, 움직이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사라지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상대성원리(아인슈타인)의 차분한 전언이다. ‘확실한 소멸과 불확실한 소멸시간의 모순’을 말할 때 이것은 무엇보다 인간(혹은 인류)의 운명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소멸로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더라도, 소멸시간을 확실하게 얘기할 수 없다. 인간에 의한 최종이론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한계성(인류에 의한 상위체계의 설명 불가능성 및 인류의 조기 퇴장 가능성)이 최종이론을 말할 수 없게 한다. 물리학 법칙들이 ‘한계적 인간’에 의한 그림이라고 할 때 그 그림은 ‘철회’가 운명인지 모른다. 공간의 법칙-시간의 법칙-인과율의 법칙이 철회가 운명이었다. 기계론적 물리학으로 표상되는 뉴턴 역학은 제한적으로 운용될 뿐이다. 뉴턴 역학에서 시공간의 법칙과 인과율의 법칙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시간과 공간은 '원인이 먼저이고 결과가 나중이다'를 확고하게 증명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양자역학에 의해서 인과율의 법칙은 폐기되었다.
최종이론이 있더라도 최종이론에 앞서서 인류가 퇴장당해야 한다면 인류의 몰락이 최종이론일지 모른다. 인류의 몰락이 최종이론의 형식이라고 할 때 이것은 최종이론의 내용이 몰락인 것을 포함한다. ‘인류라는 종이 영원한 것도 아니다.’

우주가 관찰자를 정당화시키는 것을 말하기보다 관찰자가 우주를 정당화시키는 것을 말하는 편이 낫다. 우주는 오로지 인류에 의해서만 정당화된다. 인류원리이다. 인류중심주의anthropocentrism이다. 물론 제한된 인류중심주의이다; 세상은 늘 알쏭달쏭하다. 최종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인 · 추계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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