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조계종 불학연구소가 전체 승려 대비 약 10%에 해당하는 조계종 승려 1,0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승려상의 현대적 이상형으로 36.1%가 자비의 정신을 사회에 구현하는 것을 꼽았고, 그 다음으로 27.3%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에 전념하는 것에 답했다고 한다. 또한 불교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물음에 60.4%가 참여불교운동이 효과적이라는 데에 동의를 나타냈다.

이는 오늘날 한국 스님 네들이 불교의 대사회 역할이 부족하다고 자평함과 동시에 사회현실에 보다 혁신적으로 일익을 담당해야함을 요구한 것이라 하겠다. 또한 불교의 철학화, 불교의 종교화보다는 불교의 사회화라 할 수 있는 활발한 움직임이 지금 불교에서 절실히 요청하고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라는 명제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깨달음이 독야청정(獨夜淸淨)이 아니라는 데에 그 무게가 있고 그 깊이가 있다. 불교는 자신과 모든 존재현상이 본래 둘이 아니고[自他不二] 모든 현상들이 반드시 상호연관 속에서 일어남[一切緣起]을 그 근본으로 하듯이 시간적·공간적으로 얽혀있는 나 이외의 이웃을 절대 배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아함》1권에서는 “만일 자신에게도 이익됨은 물론 다른 이와 많은 사람들도 이익케 하고 세간을 가엾이 여기며 인천(人天)을 위해 이치와 이익을 구하고 편안함과 쾌락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그 사람들 가운데 제일 위대하고 높고 우두머리이고 뛰어나고 존귀하고 미묘하다”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이 평등(平等) 자비(慈悲) 보은(報恩)을 수차례 강조하신 바가 있듯이, 자신은 물론 이웃을 위한 사회적 실천은 불교의 태생에서부터 한 축이다. 이러한 가르침들을 좇아 억압과 핍박 속에 아우성치는 약자들에게 행복을 열어주는 적극적인 역할 수행이 지금의 불교가 소극적인 포교와 은둔을 위주로 하는 종교라는 전통적 규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오늘의 한국을 다종교 다문화사회로 말하는 것은 이제 식상하다. 권력의 시퍼런 칼날이 휘둘리고 있을 때 대안 없는, 행동 없는 외침은 그저 공허할 뿐이다. 《대방광보협경(大方廣寶篋經)》중권에서 “일체가 안락해 고뇌가 없는 법을 불법(佛法)이라 한다”고 했듯이, 불교의 완성은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이 사회에서 같이 숨 쉬고 같은 해를 이고 있는 이웃들의 아픔을 적극적으로 달래는 데에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법진 스님/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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