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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국가권력과 출가 승단의 관계 - 정교분리의 전개 ①
개인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좇는 행위 비판
2017년 01월 06일 (금) 09:10:14 조준호 yathabhuta@hanmail.net

1. 부처님과 왕권

초기경전은 일찍이 왕권과 관련한 부처님의 생애를 전한다. 부처님은 태생적으로 32대인상(大人相)을 구족(具足)했다. 세속에 있으면 왕 중의 왕인 전륜성왕이, 출세하면 진리의 왕인 부처님이 될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부처님은 “전륜성왕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했다. 이것은 이후 당시 최대 왕국인 마가다국 빔비사라왕(Bimbisāra : 頻毘娑羅)이 정치권력과 관련된 세속적인 제의를 한 것은 물론 악마 파순이 부처님에게 행한 여러 유혹과 방해 가운데 수행을 그만두고 세상에 돌아가면 반드시 사해를 통치하는 전륜성왕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섬김을 받을 것이라고 유혹하는 장면 등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이유가 된다. 이처럼 부처님은 이미 출생하면서부터 세간의 최고 상징인 전륜성왕과 출세간의 최고 상징인 부처님과의 경계에 있음을 과시한다. 여기서 전륜성왕은 정치권력의 최고 상징이고, 부처님은 진리의 세계에 있어 최고 상징이다. 결국 전륜성왕인가, 부처님인가라는 접점에서 석가모니는 출세간의 최고 상징을 선택했으며, 도리어 수많은 세간의 왕들을 선도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불전(佛傳)의 이야기는 후에 더욱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부처님과 당시 왕과의 관계에 있어 빔비사라왕은 부처님보다 5년 연상이었다. 그는 왕사성(王舍城)으로 탁발을 간 부처님을 보고 친히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의 태생을 알게 되었고 환속하면 자신의 왕국의 반을 넘기겠다고 제의했지만 부처님은 거절했다고 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성도 후 부처님은 왕 가운데 처음으로 빔비사라왕에게 가르침을 설했다 한다. 이후 마가다의 왕은 갖은 방법으로 부처님과 교단에 보시하고 지원하는데, 특히 왕의 궁중정원인 죽림을 불교교단에 보시하여 최초의 수행처가 건립된 것은 유명하다.

이후 왕은 재가자 신분으로 불교교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사찰을 건립할 때 적절한 위치 선정은 그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교단의 중요 행사인 포살(布薩: Uposatha) 또한 그의 건의에 의해 제정됐다. 포살일에 계본(Pātimokkha)을 낭송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나아가 우기(雨期) 3개월 동안의 안거(安居) 첫 개시일을 정한 것도 왕의 제언이라고 한다. 이후 그는 아들에게 폐위되기까지 37년 동안 불교교단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스스로는 물론 자식과 왕비들, 그리고 신하들에게도 부처님을 받들도록 권유하고, 교단의 복지를 위해 열렬한 관심을 보인다. 예를 들면, 그의 왕국에서는 누구라도 부처님의 제자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포고하였으며, 더 나아가 당대의 유명한 왕궁 의사인 지바카(Jivaka)에게 부처님은 물론 제자들까지 치료하도록 배려했다. 이처럼 승단의 율(律)은 부처님에 의해 제정되기도 했지만, 또한 왕의 건의에 의해서 제정되기도 하였다. 이로보아 부처님은 당시 최대 강국 왕의 제안과 건의를 배척하지 않고 잘 수용하여 교단의 발전을 꾀했던 것이다.

부왕을 폐위시키고 마가다의 왕권을 찬탈한 아자따삿뚜(Ajātasattu : 阿闍世)는 데와닷따(Devadatta : 提婆達多)와 결탁했다. 이들의 결탁은 서로간의 권력욕에 따른 것으로 초기불교 범위에서 최초의 종교와 정치의 잘못된 결합 사례로 들 수 있다. 때문에 비구들은 마가다에서 걸식할 수 없는 상황은 “아사세왕(阿闍世王)이 그 나라를 다스리는데, 그는 주로 비법(非法)을 사용하고, 부왕을 죽였으며, 제바달두(提婆達兜)와 친구가 되었다”라는 문구로 표현된다. 이는 초기불교 전통이 남아있는 미얀마의 출가 스님들이 ‘복발(覆鉢 : patta-nikkujjana)’한 모습을 담은 사진을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 뉴스로 접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복발은 비도덕적인 재가자에 대한 출가자의 경책이다. 재가자의 공양을 거부하는 것으로 작복(作福)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꼬살라(Kosalā)의 왕인 빠세나디(Pasenadi : 波斯匿)는 부처님과 같은 연배다. 그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크게 감화 받고 귀의하였다. 그는 자주 부처님의 가르침을 청하여 듣고 스스로 독실한 불교신도임을 선언하기도 한다. 당시 마가다와 함께 최고 큰 나라의 왕인 빠세나디는 부처님에 대한 신심이 대단하였다고 한다. 그 또안 빔비사라왕과 마찬가지로 나라 안에서 불교의 출가사문을 경멸하면 무겁게 죄를 다스린다는 포고로 불교승가를 보호했다. 이로 보아 국가적 차원에서 불교교단이 외호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위두다바(Vidudabha : 毘流離王)는 빠세나디왕의 뒤를 이은 왕이지만 불행하게도 석가족을 멸망시킨다. 이 때 부처님은 정벌을 제지하려 하였지만 끝내는 그만두었고 이후 석가족은 멸망하였다고 한다. 이는 다음에 설명할, 마가다가 밧지국(Vajji: 拔祇)을 병합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을 막고자 하는 부처님의 취지와 비슷하다. 당시 최고의 종교지도자로서 친족의 멸망을 눈앞에 두고 취한 부처님의 입장은 의미심장하다.

2. 세간과 출세간의 정교분리

여기까지 석가모니 부처님과 왕권의 내연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는 부처님이 상가 구성원과 왕권 또는 국가를 어떠한 관계로 설정하고 이끌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국가와 왕권 그리고 승가의 기능과 역할은 세간과 출세간이라는 정교분리 입장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불교승가 스스로 국가와 왕권에 대해 정교분리적인 입장을 강조적으로 표방했다. 그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부처님은 교단의 구성원인 출가자에게 왕과 대신, 바라문과 거사의 심부름을 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사문 바라문은 남의 신시를 먹으면서 다시 방편을 써서 스스로 심부름꾼이 되기를 구한다. 혹은 왕이나 왕의 대신 바라문, 거사를 위해 심부름꾼이 되어 여기서 저기로 가고 저기서 여기로 오며 이 소식 가져다 이에게 주되 혹은 스스로 하고 혹은 남을 위해 한다.

이 같은 취지의 금지조항은 율장에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계속해서 부처님은 출가자가 국가 간 전쟁과 승리 그리고 패배를 예언하거나 관여하는 행위를 하거나 “이 나라는 마땅히 성하고 저 나라는 같지 못하다고 말하며, 혹은 저 나라가 마땅히 성하고 이 나라가 같지 못하다고 말하며, 길흉을 보아 그 성쇠를 말하는” 것과 같은 행위를 축생법(畜生法: tiracchāna-vijjā) 또는 서도법(庶道法)이라 규정하고 강력하게 금지하고 배격하였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수행하는 사람이 결코 행해서는 안 될 (짐승같이) 비천한 지식임을 의미한다. 출가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권력자나 권력 기관에 영합하는 것을 말이다. 즉 수행자가 이양(利養)을 위해 범속한 행태를 하는 것을 삿된 생계수단〔邪命 : micchājiva〕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는 불교가 기본적으로 국가 간 경계를 넘어 선 초국가적 성격에 있음을 의미한다. 일체 중생 구제를 목표로 삼는 불교는 부처님 당시에 많은 군소국가들 가운데 특정 국가에 얽매이지 않고 나라를 넘나들며 교화하였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초국가적 입장’은 현전승가(現前僧伽)에서 나아가 국경 개념을 넘은 사방승가(catuddisa-saṁgha : 四方僧伽) 공동체 개념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러한 초국가적인 태도는 다른 한편으로 출가승가가 출세간적인 입장에서 교권이 왕권에 예속될 수 있는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고자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때문에 출가비구에게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르고 옳고 그름의 시시비비를 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은 정교분리적인 차원에서 세간과 출세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불교는 정치권력과 교권이 일정한 거리를 두도록 하기 위해 출가비구의 승단이 왕에 관한 일을 논의하지 못하게 하였다. 예를 들면, 《잡아함》의 <논설경(論說經)> 등에 의하면 “한때 많은 비구들이 식당에 모여 왕에 관한 일이나 도적에 관한 일, 전쟁에 관한 일, 재물에 관한 일, 의복에 관한 일, 음식에 관한 일, 남녀에 관한 일, 세간의 언어에 관한 일, 사업에 관한 일, 모든 바다 속에 관한 일 등 이런 것들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를 안 부처님은 그러한 논의를 하지 말도록 한다. 이유는 그러한 논의는 출가수행자의 본분사인 “열반으로 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많은 비구들이 모여 당시 경합하고 있던 꼬살라의 빠세나디왕과 마가다의 빔비사라왕 중에 누가 더 세력이 강하고 누가 더 부유한지에 대한 논의도 못하도록 한다. 또 다른 때에는 당시 여러 왕들의 큰 세력과 큰 부(富)에 대해 논쟁하는 것도, 그리고 의복·장식·음식에 관한 이야기, 이웃나라·도적·싸움에 관한 이야기, 술·음행·다섯 가지 욕망에 관한 이야기, 노래·춤·놀이·풍류에 관한 이야기 등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 등도 그만두게 한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이야기는 열반을 향하는 출가사문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고 또 선한 법으로 나아가는 것도, 범행을 닦을 수도, 번뇌가 완전히 사라진 열반을 얻을 수도 없으며, 사문의 평등한 길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모두 세속 이야기로서 바른 길로 나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며, 이미 세속을 떠나 도를 닦고 있는 출가사문의 행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훈계하고 있다.

또 다른 경전인 《증일아함》 <선악품>에서도 걸식할 나라를 따지면서 각 나라의 왕에 대해 시시비비하는 비구들에게 부처님은 “너희들은 왕이 다스리는 그 나라를 칭찬하거나 비방하지 말고, 또 그 왕들의 우열을 논하지도 말라”고 하며, 이는 “나라 일을 비판하는 것으로는 번뇌가 완전히 사라진 열반 세계에 이를 수 없고, 또 사문의 바른 행법을 얻을 수도 없다. 만일 그런 비판을 하려 한다면 그것은 바른 업이 아니니라.”라고 충고했다.

심지어는 어떤 왕이 “비구니를 모함해 12년 동안 궁중에 가둬놓고 정을 통하고 있다”는 것을 비난하는 이야기에도 “나라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다만 정근하는 비구로서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을 알며, 용맹스런 마음을 가지고, 많이 들어 남을 위해 설법하며, 두려움이 없고, 계율을 완전히 갖추며, 삼매를 성취하고, 지혜를 성취하며, 해탈을 성취하고 해탈한 지혜를 성취하는 것과 같은 열 가지 일을 토론하는 데에 주력하라고 한다. 이것을 출가사문이 목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이라고 당부하고 있다. 그리고 계율에 있어서도 “만일 비구가 찰리(刹利)로서 머리에 물을 뿌리는 왕의 종족인 왕이 아직 잠자리에서 나오지 않았거나, 아직 보배(부인)를 간수하지 않았는데 왕궁에 들어가서 대궐의 문턱을 넘으면 바일제”라며 엄격하게 출가자들의 행을 단속하고 있다. 계속해서 출세간의 출가사문이 나라의 일을 가까이 하는 혐의를 받고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열 가지 잘못〔非法〕을 거론하기도 한다.

조준호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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