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투는 두 마리 개 왕비 등 인척 상징
동로수는 지증왕, 똥은 왕비자리 의미
 

남들은 살아남기도 힘든 63세까지 장수한 지증왕이 즉위했다. 어쩌면 63세가 아니었으면 즉위 못할 사람이었는데 그때까지 살아남을 줄 아무도 몰랐다. 정말 오래 살아도 너무 오래 살아서 사돈에 팔촌에 겹사돈을 맺어 왕위 계승 1순위가 된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젊은 후보들을 물리치고 왕이 된 것이다. 그렇게 왕위에 오른 지증왕이 내건 것은 ‘건강’이다. 그것도 다른 것보다 왕성한 정력과 그것을 상징하는 ‘음경의 크기’를 자랑했다. 그리고 그 작전은 거의 성공한 듯하다.

사신이 신라 수도에 있었던 6부 가운데 하나인 점량부(漸梁部)라고도 하는 모량부(牟梁部)에 이르렀다. 세 가지 갈래로 나누어 전국을 돌아야 할 사신 가운데 한 명이 참으로 운이 좋았나 보다. 멀리 가지 않고 바로 왕경을 벗어나자마자 신라 6부 가운데 하나인 모량부에서 ‘왕비’ 후보를 찾은 것이다. 물론 내용은 동로수(冬老樹) 아래에서 개 두 마리가 크기가 북만 한 커다란 똥 한 덩어리를 양쪽에서 물고 다투는 것을 본 것이다. 내용이 무척 상징적이어서 이걸 보고 알아챈 사신이 매우 스마트하고 똑똑한 것을 알 수 있다.

아니면 그렇게 각본을 쓰고 대본에 맞춰서 일부러 똑똑한 척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스토리 구성이 좀 느슨한 걸 보면 후자가 맞을 듯하다. 여하튼 빨리 찾아서 돌아갔으니 여비도 아꼈을 것이고 현상금도 두둑이 받았을 것 같다. 지금과 같은 근무지 외 공무출장이었다면 일비나 식비, 그리고 출장비 등을 다 토해냈을 테니, 국민이 낸 세금을 아낀 점에서는 매우 훌륭하다. 그러나 정작 멀리 갈 길을 못 갔으니, 엄처시(嚴妻侍)하였다면 모처럼의 자유를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집에 돌아가기가 좀 서운했을 수도 있다.

동로수라고 하면 겨울에 나이든 노령의 나무로 요즘 시쳇말로 말하면 ‘보호수’라고 할 수 있다. ‘신목(神木)’이라고 할 수도 있는 나무는 물론 지증왕을 뜻한다. 그 앞에 개 두 마리가 다투고 싸우는 것은 아무래도 왕비를 상징하는 인척세력 같다. 새롭게 왕비를 찾는 걸 보면, 정식 부인들은 아니고 아무래도 후처들이라고 할 수 있는 여자들인 듯하다. 개로 표현할 정도로 무척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세력이 물고 다투는 것은 커다란 똥 한 덩어리다. 권력이나 돈도 알고 보면 다 똥이라는 뜻인지, 꿈에서 똥을 보면 돈을 번다고 한 것 때문인지 여하튼 왕비 자리를 똥으로 상징했다. 이렇게 풍자하고 왕을 둘러싼 여성들과 그 친척들의 다툼을 조롱하면서 당시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물론 큰 똥이고 그런 큰 똥을 눌 수 있는 여자를 구한다는 스토리 전개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이 대변을 크게 볼 수도 있으므로 굳이 커다란 음경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성으로 상징하는 것은 많이 오버한 것 같다. 대변은 남자도 가능한 것인지 굳이 여성의 것으로 한정 짓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개들이 남성을 상징하고 똥은 여성을 상징한다는 당시의 풍속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해가 어렵지 않고 《삼국유사》의 찬자 역시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고 지나간 걸 보면 고려 후기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였을 수도 있다.

평범한 사신이라면 그냥 지나치고 말 일을 관심을 가지고 봤다. 아니 그렇게 보도록 각본을 짰다. 그리고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묻지 않아도 알면서 모량부 사람들에게 물었다. 준비했다는 듯이 어떤 소녀가 와서 개인정보법도 무시하고 줄줄이 다 외워서 이야기했다. 박 씨 이찬 등흔(登欣) 즉 상공(相公)의 딸이 이곳에서 빨래를 하다가 은밀히 숲속에 눈 것이라고. 은밀히 숲속에 눈 것인데 어찌 그 숲속을 사신이 지났을까?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정말 ‘눈 가리고 아웅’이다. 모르고도 속는데 그냥 알고도 속는 셈치고 넘어가려고 해도 좀 그렇다.

여하튼 지방 수령도 아니고 중앙정부 재상가의 딸을 찍었다. 이때부터 왕비족이 출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사신이 그 집을 찾아가 보니 여자 역시 신장이 7척 5촌이나 되었다고 한다. 성골이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것이었는지 역시 그 남자에 그 여자라는 말을 하고 싶었나 보다. 이 정도 키가 커야 다른 두 후비들의 기를 누를 수 있었을까?

사신은 바로 이 사실을 왕께 보고했고 기다렸다는 듯이 수레를 보내 그 여자를 궁중으로 맞아 들여 황후로 삼았다고 한다. 속전속결이다. 요즘처럼 잘 나가는 클럽에서 만나 원 나잇 스탠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모든 게 시나리오대로 굴러갔다. 너무나 의아하고 경악스러울 지경이지만 지증왕의 권한이 셌든가, 아니면 인척 세력들이 밉상이었는지 군신들은 모두 경하하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 이 글은 일연 스님이 그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는 필자의 견해에 따라 원문을 재해석하고 현대적 관점을 부여했다. 《삼국유사》자체가 일연 스님의 제자들을 포함한 후대인들에 의해서 재편되었을 것으로 보이므로 원문(밑줄) 내용 일부를 조목 안에서 순서 등을 재배치하는 등 바꾸었음을 알린다.

하도겸 | 칼럼니스트 dogyeom.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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