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본 내용입니다. 생물학자 최재천 씨가 8마리의 닥스훈트를 키우면서 관찰한 내용이 실린 기사였습니다. 어미와 새끼 7마리로 이뤄진 가족을 키웠다고 합니다. 이 가족 중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는 누나 개였다고, 큰 누나에 해당하는 암컷은 어미개가 없을 때는 적극적으로 동생들을 돌본다고 했습니다. 마치 어미 개가 새끼들을 돌보듯이 따뜻하게 동생들을 챙겼다고 했습니다. 동생 가운데는 디스크로 걷지 못하는 개가 있었는데 누나 개는 어느 날 동생을 위해서 조약돌을 물어다 주었다고 합니다. 밖으로 나가 놀지 못하는 동생을 딱하게 여겨 집안에서 갖고 놀게끔 물어다 준 것이지요. 그러니까 누나 개에게는 다른 개의 마음에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위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보면 동물에게도 공감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감능력은 굉장히 고차원적인 마음입니다. 자신에게 집중돼 있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아야 가능한 것으로, 인간의 고유한 특성으로 이해했던 것인데, 최근 생물학계에서는 인간 이외 다른 생명체에게도 이 마음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개에게는 분명 이런 마음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사람보다도 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주인의 슬픔이나 두려움 등의 감정에 반응하는 개를 볼 때면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지금 소개할 <에이트 빌로우>는 동물의 이러한 공감능력을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에이트 빌로우(Eight Below)>(미국, 2006)는 일본 영화 <남극 이야기>를 원작으로 했는데, 1983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남극 이야기>의 리메이크작인 <에이트 빌로우>에는 실화가 주는 진정성이 있습니다.

<에이트 빌로우>는 두 개의 중심 이야기로 구성됩니다. 하나는 인간의 의무감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동물에 대해 가져야 할 인간의 책임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는, 남극에 남겨진 8마리의 개가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살아남는 이야기를 통해 동물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물 중심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동물이 결코 인간보다 뒤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보다 약한 동료를 돌볼 줄 알고, 지혜를 내서 사냥할 수 있으며, 또한 뛰어난 지도자를 뽑아 난관을 극복할 줄 알았습니다. 개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는 영화였습니다.

사실 영화의 도입부는 조금 지겨웠습니다. 도입부는 인간 중심의 얘기로 인간의 개에 대한 의리나 책임감을 다뤘는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설정이기에 그다지 흥미롭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주인이 떠나고, 남극에 남겨진 8 마리의 개에게로 포커스를 맞추자 영화는 활기를 띄기 시작했습니다. 개라는 종이 갖는 특성과 그리고 개들 개개의 개성이 드러나는 연출은 무척 흥미롭고 신선했습니다.

그런데 개들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뛰어났습니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살려는 의지가 있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면서 그래서 살생을 하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정말 썰매 개들은 대단한 생명의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주인인 제리가 자신들을 묶어두고 간지 며칠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자 개들은 심각한 허기를 느꼈고, 그래서 사슬을 풀었습니다. 며칠간 굶었기에 살이 조금 빠진 것인지 목줄이 쉽게 빠진 개도 있고, 먼저 목줄을 뺀 개가 옆의 개를 풀어주기도 하고 그래서 다들 목줄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특이한 개가 있었습니다. 절대로 목줄을 풀려고 않는 개가 있었습니다. 옆의 개가 풀어주려고 해도 거부했습니다. 배고픔이나 생존본능 보다 주인과의 약속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인지 끝내 목줄을 하고 있다가 죽었습니다. 개에 따라 개성이 다름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7마리의 개는 열심히 먹을 걸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갈매기를 발견했습니다. 처음 갈매기를 발견한 개가 ‘멍멍’ 짖자 갈매기들이 다 날아가는 것을 보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 쪽에서 살금살금 다가가 몰아가면 반대편에 있던 개들이 재빨리 뛰어올라 낚아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마리씩 갈매기를 잡아서는 그걸 바로 그 자리에서 먹지 않고 대장인 마야에게 가져와 바쳤습니다. 마야가 그 중 한 마리를 먹으면 나머지 개들도 자신의 것을 차지했는데 아무 것도 차지하지 못한 개도 있었습니다. 이 개가 다른 개들의 먹을 것을 넘보면서 좀 얻어먹으려고 하면 으르렁거리면서 절대 주지 않는 개도 있고, 나눠주는 개도 있었습니다. 사람도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는 것처럼 개도 착한 개도 있고, 욕심 많은 개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고래를 먹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썰매 개 무리의 막내이면서도 용맹과 지략이 뛰어나 마야 다음 리더가 되는 맥스가 먼저 고래를 발견했습니다. 이미 죽은 지 한참 되는 고래 고기를 먹기 위해 다가갔는데 고래 뱃속에서 갑자기 바다표범이 튀어나와 맥스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맥스가 고래 고기 한 조각을 입에 물고 바다표범을 유인하면서 달리고 있는 동안 다른 썰매 개들은 마음 놓고 고래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맥스를 쫓던 표범이 갑자기 방향을 돌려 고래 쪽으로 다가 왔고 열심히 고래 고기를 먹던 개들은 그걸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운이 나쁘게도 대장인 마야가 바다표범에게 물렸습니다. 한쪽 다리를 물린 마야를 살리기 위해 다른 개들이 모두 바다표범에게 달려들었고 개에게 물린 표범은 도망갔습니다. 그렇지만 한쪽 다리가 물린 마야는 한쪽 다리를 땅에 딛지 못하고 쩔뚝거리면서 걸어야 했습니다. 이제 사냥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마야는 스스로 리더로서 자격을 상실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다른 썰매 개들이 갈매기를 잡아와 자신의 앞에 가져다 놓았을 때 마야는 그 중 한 마리를 먼저 맥스에게 가져갔습니다. 그러자 다른 개들도 갈매기를 모두 맥스 앞으로 가져갔습니다. 이제 맥스가 대장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자신이 자격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즉 자신의 무리를 더 잘 이끌 수 있는 맥스에게 순순히 대장 자리를 물러주는 마야는 무척 지혜로운 개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동물계의 법칙인 것 같은데 그들은 생존의 지혜를 갖고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비극과 기쁨이 교차하는 장면입니다. 보름달이 뜬 밤이었습니다. 오로라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하얀 설경과 둥근 보름달, 그리고 초록빛 오로라의 현란한 풍경은 영화에서 무척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개들도 그 광경에 감동했는지 짖기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개들 중 한 마리가 뛰어다니다가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너무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지 개는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나머지 개들은 그날 밤 죽은 개 옆에서 함께 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한 마리씩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그 개를 떠났습니다. 죽은 개에 대한 예의와 아쉬움을 표현하는 개들을 보면서 무척 공감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렇게 썰매 개들은 리더의 지휘를 따르고 또 상대방의 아픔에 공감하고, 때로는 지혜로써 위기를 극복하면서 남극의 혹독한 환경을 이겨나갔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주인이 없는 시간 175일을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인 제리와 다시 만나면서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습니다.

개에 관한 영화들은 꽤 많습니다. <하치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한없이 기다렸던 개에 관한 이야기로, 인간을 향한 개의 충성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개와 관련한 얘기는 대체로 <하치 이야기> 식의 얘기가 많았습니다. 몇 년 전 개봉해서 많은 사람의 눈물을 쏙 빼게 만들었던 우리나라 영화 <마음이>도 이 범주에 속하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말리와 나>라는 영화는 반대의 경우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ADHD,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에 해당하는 개를 키우는 주인의 책임감과 애정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한 영화인데, 최근의 영화 경향은 반려견을 가족으로 인정하고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주인에 관한 얘기를 다루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에이트 빌로우>도 초반부는, 썰매 개를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인 제리와 관련한 얘기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주인공의 노력을 통해 애견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에이트 빌로우>는 인간과 개의 관계가 이야기의 핵심은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는 자연 다큐를 보는 것처럼 개들의 생태계를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개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도는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개들은 인간에게 감동을 줄만한 좋은 점을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순수함이었습니다. 이성에 길들여진 인간이 잠시 잊고 있었던 순수함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를 보고나면 힐링 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란 영화나 부탄 영화가 문명에 덜 길들여진 사람들의 순수함을 통해 청량감을 주는 것과 같은 효과였습니다. 애견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영화를 보고나면 한 뼘쯤은 맑아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김은주 | 자유기고가, cshchn2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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