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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국가와 왕의 기원
가장 오래된 사회계약설 불교가 제시
2016년 12월 01일 (목) 10:36:21 조준호 yathabhuta@hanmail.net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일련의 사태 진행을 보면서 새삼 국가와 국민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광화문 시위에서 대통령을 규탄하는 성남시장의 연설이 유명한데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대통령은 이 나라의 지배자가 아니라 국민을 대표한 대리인이자 머슴입니다. …… 우리는 나라의 주인이고 박근혜에게 월급을 주고 있습니다. …… 박근혜는 우리가 고용한 머슴이어서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는 노동자가 아니라 대리인이므로 해고해도 됩니다.”

이와 같은 연설 내용은 곧바로 초기불교경전에 설명된 왕과 국가의 기원을 떠올리게 한다.

흔히 인류 역사에 있어 제정일치(祭政一致) 또는 신정일치(神政一致)의 고대사회는 이후 사제권과 왕권이 분화되어 결국 왕권이 우위를 점하여 사제권을 왕권에 종속시키는 경향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도는 예외적인 상황이 전개되었다. 바라문이라는 사제권이 계급적으로 왕권보다 우위를 주장하여 왔다. 이는 사성계급에서 바라문, 끄샤뜨리야, 바이샤 그리고 수드라의 순서에서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문 종교와 불교는 왕권과 국가의 기원을 보는데 있어서도 관점을 달리한다.

일반적으로 바라문교가 왕권과 국가의 기원을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로 설명한다면, 초기불교경전은 국왕계약설(國王契約說) 또는 사회계약설(社會契約說)로 설명한다. 이는 조물주를 정점으로 하는 위계적 세계관이나 사회관을 가진 창조신 관념의 신본주의를 부정하는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의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초기불교문헌에서 세계와 인간의 기원과 전개를 설명하는 경전으로는 《Dīgha Nikāya》 제 26경 <Cakkavatti-sīhadāna Suttanta>와 제 27경 <Aggañña Suttanta>가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상응하는 한역 《장아함》은 <소연경(小緣經)>과 <세기경(世起經)>이다.

고대 사회를 반영하듯 모두 세계와 인류의 전개 과정을 신화적인 형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모두 근본적으로 바라문계의 왕권신수설을 부정하는 맥락이다. 때문에 <Aggañña Suttanta>의 경우 바라문 출신을 상대로 설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왕과 국가 기원에 대한 설명은 사람들 간에 서로 다투고 훔치고 부정(不淨)하는 것 등 온갖 종류의 사회문제로부터 출발한다. 땅을 갈라놓고 표지를 세우는 것과 같은 배타적인 소유 관념에 따른 대립과 충돌이 급기야는 왕을 세우고 국가를 있게 했다는 것이다. 왕은 이러한 문제를 조정하고 감독하도록 선출한 사람이다.

여기서 <세기경(世起經)>과 <Aggañña Suttanta>에 나타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A] 사람들은 먹을 것을 축적하기 시작했고 땅을 분할하여 자기 것으로 하였다.
[B] 어떤 사람은 자기 쌀을 비축하고 다른 사람의 땅에서 쌀을 훔쳐 먹었다.
[C] 계속되는 도둑질에 때리고 싸우고 거짓말을 하고 상대를 응징하는 일이 생겼다.
[D] 이러한 지경에 이른 것을 보고 사람들은 고민하면서 슬피 울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세상이 점점 악해져 이런 일들이 생긴다. 걱정과 원한과 번민의 고통스런 결과가 있다. 이것은 곧 생·노·병·사의 근본으로서 나쁜 세계에 떨어지는 원인이 된다.”
[E] 밭과 집의 경계를 갈랐기 때문에 다툼이 생겼지만 이를 판결할 사람이 없다.
[F] 우리들은 이제 곧 공정한 한 사람을 내세워 인민을 보호하면서 착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하도록 하자.
[G] 우리들은 이에 대한 대가로 각각 자기의 소유에서 얼마씩 내어 그 사람에게 주자.
[H] 그 때 형질(形質)이 장대하고 용모가 단정하며 위엄과 덕망이 높은 한 사람이 있었다.
[I] 많은 사람이 선출했기에 그를 ‘많은 사람들에 의해 선출된 위대한 자(mahājanasammata)’라고 불렀다.
[J] 우리는 이제 그대를 세워 주인으로 삼고자 하니, 백성들을 잘 보호하면서 착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시오.
[K] 우리는 마땅히 우리 소유에서 얼마씩 내어 그대에게 공급할 것입니다.
[L] 그 사람은 이 말을 듣자 곧 승낙하고 주인〔왕〕이 되어 상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상을 주고 벌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벌을 주었다.
[M] 여기서 비로소 ‘백성의 주인〔民主〕’ 또는 ‘토지의 주인〔khettā pati〕’이라는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1)

경전의 전반부에 의하면 원래 왕과 국가를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차츰 생존의 질이 나빠지면서 사람들이 왕을 요구한 것이기에 초기불교적 관점에서 “정부라는 제도는 인간 타락의 시대에 필요한 불행”이라는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하기도 한다.2) 경전에서 왕과 국가는 칼과 창과 같은 무력에 의한 집권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민의(民意)에 의해 선출된 것이다. 따라서 왕은 ‘선출된 위대한 사람(mahājanasammata)’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같이 왕과 국가는 사람들 간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충돌을 조정하는 역할로 출현하게 되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적어도 초기불교의 입장에서는 국왕을 신성하다거나 절대적인 존재로 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떠한 종류의 신민(臣民)의식도 보여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왕과 국가의 기원에 관한 <세기경(世起經)>과 <Aggañña Suttanta> 등의 설명은 왕과 국가의 기능과 역할 또는 책무가 무엇인지를 잘 시사하고 있다. 즉 백성들 간의 분쟁을 조정해주며 살인과 도둑질 등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어야하는 사회 안전에 있음을 말한다. 때문에 부처님은 왕보다는 백성의 입장에서 백성과 국가의 관계를 설하고 있다. 즉 왕은 민의에 따라 뽑힌 자이기에 백성들 사이에 비법(非法)이 행해지더라도 함부로 “내 백성이니 칠 수 있고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을 말라”라고 백성과 왕권간의 관계를 설정한다. 과거에 흔히 백성은 왕의 종속물로 간주하여 왕의 뜻에 따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였던 것에 반하는 말씀이다. 대신에 부처님은 왕의 의무로서 백성들이 안정적으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국고를 풀어 지원해야 하고 나아가 백성들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는 온갖 비법(非法)을 해결해 줄 수 있어야한다고 한다. 이같이 왕과 국가의 책무에 대해 백성이 지불해야하는 것으로 또한 납세가 있게 되었다 한다. 즉 선출한 왕에게 “[G] 우리들은 이에 대한 대가로 각각 자기의 소유에서 얼마씩 내어 그 사람에게 주자”라는 구절에 잘 나타나 있듯이 왕이 백성을 위해 하는 일에 대해 백성은 왕에게 수고비를 내는 것이 바로 세금이라는 세제(稅制) 사상이 나타나있다. 이는 요즘의 세제 개념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 같은 불교의 왕권과 국가의 기원에 관한 설명은 고대사회에 대단히 파격적인 민주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이나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다는 고루한 ‘왕권신수’의 관념이 아직도 잔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점에서 불교의 입장은 크게 대비된다. 때문에 Theodore de Bary는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국왕계약설은 불교가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3)

초기불교에서 왕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선출된 존재이고 사람들에게 봉사해주는 대가가 바로 세금이다. 초기불교 경전에 부처님과 제자들은 국왕을 신성하다거나 절대적인 존재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왕을 예경하지 않았고 도리어 왕이 부처님과 출가자에게 예경하였다. 어떠한 종류의 신민(臣民)의식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조선왕조와 일제강점기에 심어진 신민의식이 잔존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 불교계에서는 절에 전 대통령 내외를 모시는 법당도 있다. 우리는 민주시민이 아닌 전근대적인 신민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회로 우리 모두가 그동안 주입되어 온 신민의식으로부터 말끔히 깨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이상 신민의식에 우리 개개인의 삶이 그리고 역사와 사회가 왜곡되지 않는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주) -----
1) 여기서 한역 <세기경(世起經)>(《대정장》 1, p. 148c)은 ‘백성의 주인〔民主〕’으로, <Aggañña Suttanta>(D. Ⅲ, p. 93)는 ‘토지의 주인(khettā pati)’으로 차이가 있다. 빠알리의 경우, 왕과 같은 통치자 계급을 뜻하는 끄샤뜨리야(빠알리는 khattiya)가 어원적으로 땅을 의미하는 khetta와 같기 때문에 이 같은 말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2) 피야세나 딧사나야케 지음, 정승석 오림, 《불교의 정치철학 - 기원전의 민주주의》, 서울, 대원정사, 1987, p. 155.
3) Theodore de Bary, Sources of indian Tradition, p.26, Ven. Pategama Gnanarama, An Approach to Buddhist Social Philosophy, Singapore: TI-Sarana Buddhist Association, 1996, p. 50에서 재인용)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yathabhut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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