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서출지. <사진=경주시관광자원영상이미지>

궁주는 왕비보다 격이 낮은 ‘왕의 첩’
일관은 왕 시종하며 각종 점법한 이
 

일관(日官)이 나서서 말하기를 “두 사람은 서민이요, 한 사람은 왕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도 안 되는 말을 할 때 다행히 일관이 함께 있었다. 일관은 한국고대사회에서 왕을 측근에서 시종하며, 사주팔자 관상 등을 모두 보고, 오행의 원행 및 각종 점법을 했던 사람일 것이다. 천정정에서 ‘신탁’을 했을 때도 옆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신탁의 주체일 수도 있다. 일관은 과학기술이나 의학이 발전하지 않았던 당시에 국가의 정책 결정에 깊이 관여할 수밖에 없었으며 신라 하대까지 존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일을 하기에 ‘왕’이 잘못되어 죽기라도 하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보다 못해 나서서 한마디 한다.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는 말을 대충 엮어서 내두른다. ‘두 사람은 서민’이라는 해석은 굳이 이어 붙이면 틀리지는 않지만, 여기서 두 사람은 두 돼지를 말하므로 당연히 사통한 두 연인을 말한다. 소지왕과 관련된 사람 중에 사통한 사실을 보고해야 할 사람은 역시 왕의 부인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글을 받고 해석을 ‘부인’이 아닌 ‘서민’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신라는 근친혼이 존재하는 골품제사회다. 다른 나라에서 왕위 계승은 형제간의 전쟁일지 모르지만, 신라의 경우는 여왕의 존재와 사위의 왕위 계승을 고려해 보면, 완전한 치킨게임이다. 누가 왕이 될지 모르는 경쟁에서 친가만큼 외가가 중요하고 처가도 중요하다. 같은 형제라면 더 좋은 처가가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런 나라에서 왕의 ‘부인’은 곧 왕의 남매이며 전왕의 딸이거나 후왕(중요 왕위 계승 후보자)의 엄마일 수 있다. 아무리 일관이 높은 지위를 가지고 권력을 향유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왕의 부인을 함부로 모함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완곡하게, ‘당구로 말하자면 몇 번의 쿠션을 대서’ 해석한 것은 아닐까? 여하튼 이렇게 ‘쓰리쿠션’을 한 끝에 이야기는 대단원에 접어든다.

왕이 그러하다고 여겨 열어 보니 편지 가운데 “거문고 갑을 쏘라[射琴匣].”고 적혀 있었다. 왕이 궁에 들어가서 거문고 갑을 쏘았다. 그 곳에서는 내전에서 분향 수도하던 승려가 궁주(宮主)와 은밀하게 간통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형을 당했다.

왕이 지혜가 부족할지는 몰라도 그래도 용인술은 대단하다. 일관의 말을 놓치지 않고 서민 둘이 죽을지언정 자신이 죽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편지를 열어보고는 거문고 갑이 있는 곳을 찾았다. 내전에 거문고를 전시하기 위해서 걸어놓은 것이 있었나 보다. 그 방을 쳐다보고 가만히 보니 그 안에 뭔가 있는 듯하다. 아무리 변태적인 사랑을 한다고 해도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일이 벌어졌다. 분수승(焚修僧)이 궁주(왕의 부인)와 간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수승은 향을 피우면서 불교의식을 주관하는 승려라고 한다. 소지마립간 대에는 내전에 분수승을 두었다. 당시 궁에는 남자들이 별로 없고 내시들만 있었나 보다. 왕의 부인 가운데 왕비도 있었겠고 첩이라고 할 수 있는 빈들도 있었을 것이다. 막장드라마 같은 사극에서나 보이는 독수공방에 지친 첩들 눈에는 머리 깎은 승려들이 매우 귀엽게 보였나 보다. 어쩌면 너무 외로워서 말동무를 하다가 사건이 터졌나보다. 선물도 주고받고 점도 봐줬을 테고 그러다가 연분이 터지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왕실불교의 체면이 있지, 왕궁의 깊숙한 내전에까지 출입이 가능한 분수승이라면 지위도 높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분수승이 궁주와 사통을 했다. 그것도 몰라 어디 멀리 가서 야합을 한 것도 아니고, 왕궁 밖에 절로 데이트하러 간 것도 아니고, 내전 옆에서 사통을 한 것이다. 19금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연출되다가 들통이 났으니 살긴 다 글렀다.

궁주는 보통 왕비보다 격이 낮은 왕의 첩을 말한다고 한다. 신라의 후비제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으나, 《고려사》 권88 <후비전>의 내용을 참고해서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sy)의 《삼국유사》에 대한 주석들은 전한다. 하지만 이 궁주가 왕의 아버지의 부인일 수도 있고 왕의 비일 수도 있다. 어떤 해석도 가능하며 분명 용서받지 못할 정도로 가깝고도 높은 신분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아가 이들이, 일관 등이 피리촌이나 노인, 쥐, 까마귀를 다 동원해서라도 죽이고 싶은 존재였던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궁주 옆에 신라 왕실불교의 분수승이 연루되어 있다. 헌법 20조에 나온 것처럼 우리나라는 정교가 분리되어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은 청정 비구와 비구니의 종단이라는 생각이 왠지 모르겠지만 문득 스쳐간다. 누가 되었든 승려는 여자와 정치를 멀리해야 할 듯싶다.

* 이 글은 일연 스님이 그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는 필자의 견해에 따라 원문을 재해석하고 현대적 관점을 부여했다. 《삼국유사》자체가 일연 스님의 제자들을 포함한 후대인들에 의해서 재편되었을 것으로 보이므로 원문(밑줄) 내용 일부를 조목 안에서 순서 등을 재배치하는 등 바꾸었음을 알린다.

하도겸 | 칼럼니스트 dogyeom.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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