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보살은 대비심1)으로 베풀기를 염하니, 비록 재물이 없어도 사람들이 비는 것을 보면 없다고 차마 말하지 못하고 슬픔의 눈물을 흘리나니, 이처럼 괴로워하는 이를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아니한다면 어찌 자비 수행자라 이름 하겠는가.
대비심이 가득한 이는 다른 사람의 고뇌를 듣고 가만히 있지 못하니, 다른 이의 괴로움을 보고서도 구제하지 않는 것2)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대비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난에 고통 받는 중생을 보고 나누어 줄 재물이 없으면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탄식할 것이며, 중생이 고통 받고 있음을 보면 슬피 울며 눈물을 흘리니 그 눈물을 흘리는 까닭에 그 마음의 부드러움3)을 알 수 있느니라.
보살의 대비심은 눈 더미와도 같으니, 눈 더미가 햇빛을 만나면 녹듯이, 보살의 자비로운 마음은4) 고통 받는 중생들을 보면 눈물을 흘리는 것이니라5). 보살의 눈물에는 세 시기(三時)가 있으니 첫째는 공덕을 닦는 이를 볼 때 아끼고 존경하는 까닭에 눈물을 흘리고, 둘째는 고통 받는 중생의 공덕이 없는 것을 볼 때 애처롭게 여겨 눈물을 흘리며, 셋째는 큰 보시공덕을 닦을 때 자비로 크게 기뻐하며6) 더욱 눈물 흘린다.
보살의 흘린 눈물을 헤아려본다면 큰 바닷물 보다 많을 것이다. 세간(世間)의 중생이 친척을 버리고 슬퍼 눈물 흘린다하더라도, 보살이 가난에 고통 받는 중생을 보고도 재물이 없어 보시할 수 없을 때,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만 못할 것이다. -대장부론(大丈夫論)

보살의 자비

217.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청정한 인자함[慈]이 있으니 무엇을 열이라 할 것인가. 평등한 마음의 청정한 인자함은 중생을 널리 포섭하여 가림 없는 까닭이다. 이익케 하는 청정한 인자함은 하는 일 모두 기쁘게 하는 까닭이다. 중생을 거두어 나와 같이 하는 청정한 인자함은 결국 중생을 생사에서 벗어나게 하는 까닭이다. 세간을 벗어나지 않는 청정한 인자함은 항상 착한 인연을 모으는 까닭이다. 해탈에 이르는 청정한 인자함은 두루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번뇌를 제거하고 멸하게 하는 까닭이다.7)
깨달음을 일으키는 청정한 인자함은 널리 중생들로 하여금 온갖 지혜를 구하는 마음을 내게 하는 까닭이다. 세간에 걸림 없는 청정한 인자함은 큰 광명을 놓아 평등히 널리 비추는 까닭이다. 허공에 가득한 청정한 인자함은 중생을 구제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안 가는 데가 없다. 법연(法緣)의 청정한 인자함은 여여한 진실법을 증득하는 까닭이다. 연(緣)이 없는 청정한 인자함은 보살의 생사를 여읜 성품에 들어가는 까닭이다.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넓고 크고 청정한 인자함을 얻는 것이니라. -화엄경(華嚴經)8)

[각주]
1)원문은 ‘비심(悲心)’이며 여기서는 ‘대비심’으로 번역한다. ‘비심’은 모든 중생을 가엽게 여겨 괴로움을 없애려는 마음이다. 곧 불・보살의 마음이다. ‘자비(慈悲)’를 구분하면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 괴로움을 없애 주는 것을 ‘비(悲)’라 하는데. 괴로움을 없애 주는 것을 ‘자’, 즐거움을 주는 것을 ‘비’라 칭하기도 한다.
2)원문은 ‘是處’이며 여기서는 ‘구제하지 않는 것’이라 문장에서 풀어 번역하였다.
3)마음의 부드러움은 제법의 실상을 알고 어기지 않는 자비심의 부드러움이다. 중생을 가엽게 여긴다면, 선을 닦고 악을 그치는 ‘수선지악’과 지관(止觀)의 경계를 여실히 알게 된다.지(止)와 관(觀)이 균등하게 일어나 서로 돕고 행함을 얻는다. 이를 원문에서는 ‘마음의 부드러움’이라 줄여 말하였다. 4)원문은 ‘菩薩의 悲心雪聚’이며 여기서는 중생을 가엽게 여긴다는 의미를 담아 ‘보살의 자비로운 마음’이라 번역한다.
5)자비의 성격을 헤아리는 가지 수는 많다. 대표적으로 ‘삼자(三慈, 3종자비 혹은 3연자비)’가 있다. 중생연자비는 시방(十方) 5도(道)의 중생을 친한 이와 똑같이 보아 괴로움을 없애고 즐거움을 주고자 베푸는 자비이다. 법연자비는 만유의 온갖 법이 5온의 화합[假和合]임을 알아 일으키는 자비이다. 무연자비는 불심(佛心)으로 일체 법이 실성이 없고, 다 허망한 줄로 관하고는, 마음을 이끌어 일으킬 것이 아무 것도 없거든 이 무연(無緣)의 불심으로 미망(迷妄)한 세계에 왕래하는 중생을 불쌍히 여겨 진지(眞智)를 얻게 하려는 자비이다.
6)원문은 ‘비희용약(悲喜踊躍)’이며 ‘자비로 크게 기뻐하다’로 번역한다.
7)청정한 인자함과 짝하여 가엽게 여김의 열 가지는 다음과 같다. ❶ 짝할 이 없이 청정한 가엽이 여김은 혼자 그 마음을 내는 까닭이다. ❷ 고달픈 줄 모르는 청정한 가엽이 여김은 일체 중생을 대신하여 괴로움을 받아도 피로하지 않는 까닭이다. ❸ 어려운 곳에 태어나는 청정한 가엽이 여김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까닭이다. ❹ 좋은 곳에 태어나는 청정한 가엽이 여김은 덧없음을 보이는 까닭이다. ❺ 잘못 결정된 중생을 위하는 청정한 가엽이 여김은 오랜 겁을 지나도 큰 서원을 버리지 않는 까닭이다. ❻ 자기의 낙(樂)에 집착하지 않는 청정한 가엽이 여김은 중생에게 쾌락을 두루 주는 까닭이다. ❼ 은혜 갚음을 구하지 않는 청정한 가엽이 여김은 마음을 깨끗하게 닦는 까닭이다. ❽ 이른바 뒤바뀜 즉, 전도(顚倒)를 능히 제하는 청정한 가엽이 여김은 실다운 법을 말하는 까닭이다. ❾ 모든 법이 본 성품이 청정하여 물들지도 않고 시끄러움도 없지만, 객진번뇌(客塵煩惱)로 말미암아 여러 괴로움을 받는 줄을 알고는 여러 중생을 크게 가엽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니, 이름이 본 성품이 청정함[本性淸淨]인데, 때 없이 청정하고 광명한 법을 말하는 까닭이다. ❿ 모든 법이 공중에 새의 발자국 같건만 중생들이 어리석어 밝게 비치어 관찰하지 못함을 알고, 그들에게 크게 가엽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니, 이름이 진실한 지혜[眞實智]로 그들을 위하여 열반의 법을 열어 보이는 까닭이다.
8)《화엄경》(실차난타역) 제58권 <이세간품>의 내용이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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