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촌은 아달라왕계 박씨 잔존세력 피난처
돼지 두 마리의 싸움은 불륜과 사통 뜻해


왕이 기사에게 명하여 까마귀를 따르게 하여 지금(고려 후기나 조선 초기)의 양피사촌(壤避寺村)으로, 남산(南山)의 동쪽 산록에 있는 남쪽의 피촌(避村)에 이르렀다.

남산은 경상북도 경주시 남쪽에 위치한 산으로 북쪽의 금오봉(金鰲峰)과 남쪽의 고위봉(高位峰)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60여 개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오산(金鰲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정상의 높이는 466m이고, 남북의 길이는 약 8㎞, 동서의 너비는 약 4㎞이다. 수많은 불교 유적은 물론이고, 나정(蘿井), 남산신성(南山新城), 그리고 포석정(鮑石亭)과 같은 유적들이 있다. 남산을 포함한 경주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여하튼 신궁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천정정에서 사람 말을 하는 쥐의 말대로 말 탄 병사가 까마귀를 쫓아간 것이다. 쫓아간 것인지 쫓아낸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까마귀는 남산 동쪽의 피촌까지 갔다. 피촌의 ‘피’가 ‘피한다’는 뜻의 한자이니, 까마귀가 피해서 온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까마귀는 동물이 아니라 ‘연오랑 세오녀’ 조에 나오는 아달라왕계의 ‘박 씨’ 잔존세력은 아닐까? 굳이 박 씨로 국한할 것을 아니지만, 금시조(까마귀)를 숭배하는 연오랑과 무관하지 않은 듯한 세력들을 소지왕이 소탕하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은 어떨까? 그래서 이들이 피하고 피하다 남산 피촌에 이른 것은 아닐까? 결국 피촌은 까마귀를 숭배하는 세력들의 피난촌으로 보면 좋을 듯하다.

양피사는 서출지 부근에 있던 절로, 《삼국유사》 권5 <피은> ‘염불사’ 조에 나오는 남산 동쪽 기슭 피리촌 촌내 피리사 혹은 염불사 옆에 있던 절이다. 피촌은 피리촌이고 거기에 피리사(염불사)와 양피사가 있었나 보다. 그런데 그건 구전이고 피난촌의 피촌이나 피리촌에 있는 피리사(避里寺)나 양피사(讓避寺) 같은 절의 다른 이름일 듯하다. 꼭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

돼지 두 마리가 싸우고 있어 이를 한참 살피다가 홀연히 까마귀가 간 곳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길 주변을 배회하는데 이때 한 늙은이가 연못 가운데서 나와 글을 바쳤다. 겉봉의 제목에 이르기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기사가 돌아와 이것을 바치니, 왕이 말하기를 “두 사람이 죽느니 오히려 열어보지 않고 한 사람만 죽는 것이 낫다.” 하였다.

돼지는 멧돼지과에 속하는 잡식성 포유동물이며, 가축의 하나로 기후, 풍토에 대한 적응력이 강하여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특히 번식력이 뛰어나서 수퇘지는 발정이 약 3주 간격으로 반복되며 발정 지속 기간은 2, 3일 정도이다. 교배 적기는 발정이 시작되고 24시간 정도 지난 뒤이다. 또한, 어미 돼지도 새끼 돼지의 젖을 뗀 뒤 7∼10일이 지나면 다시 발정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불륜을 저지른 사람을 발정난 개를 말하지만 당시에는 돼지가 그런 의미로 쓰였나 보다.

사료를 보면, 1282년(충렬왕 8)에는 개성의 진고개에서 개가 사고무친의 눈먼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밥을 얻어 먹이고 물을 먹여 키웠으므로 이에 관청에서 개에게 벼슬을 내리고 그 충직함을 기렸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에게 가까운 반려자로서 ‘개’는 대접을 받아도 그 발정 때문에 욕을 듣지는 않았나보다.
여하튼 현실에서도 보이는 모든 것은 다 의미가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거기에 있는 이유가 있듯이, 까마귀가 인도해서 보여준 돼지 두 마리의 싸움도 그런 의미가 있다. 드라마틱하게 연출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돼지 두 마리의 싸움은 ‘불륜’이나 ‘사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될 듯하다. 굳이 뒤를 보지 않아도 천정정에서부터 양피촌까지 까마귀의 기행은 소지왕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다.

언제부터 시작된 말인지 모르겠지만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여기서 새는 까마귀고 쥐는 그냥 농촌사회의 영원한 적으로 곡식을 훔쳐가는 쥐를 말할 따름이다. ‘쥐새끼’가 의미하듯 쥐는 스파이를 은유하는 표현으로 사용될 수 있다. 미국의 CIA 등도 스파이, 간세(姦細), 세작(細作), 간첩으로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소지왕이 나오는 이 ‘사금갑’ 조 사료에 나오는 ‘쥐’는 정보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쥐 즉, 지금으로 치면 안기부나 보안사 정보원이 기껏 가져온 정보를 접한 소지왕은 ‘둘이 아닌 하나만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스꽝스러운 휴머니즘을 발휘하는 해프닝을 만든다. 왕이 제 정신인지 모르겠다고 하면 너무 심한가?

* 이 글은 일연 스님이 그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는 필자의 견해에 따라 원문을 재해석하고 현대적 관점을 부여했다. 《삼국유사》자체가 일연 스님의 제자들을 포함한 후대인들에 의해서 재편되었을 것으로 보이므로 원문(밑줄) 내용 일부를 조목 안에서 순서 등을 재배치하는 등 바꾸었음을 알린다.

하도겸 | 칼럼니스트 dogyeom.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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