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웅의 탄생, 영웅의 업적

동서고금에 영웅호걸들이 많았다. 그들은 타고난 힘과 지혜로 고난을 극복하고 위대한 업적을 쌓았다. 그들의 초인적인 용기와 불굴의 의지는 전설이 되고 신화로 남았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어 역사를 비추고 예술로 승화되었다. 인류에게 영웅은 커다란 선물이었다. 그리고 축복…… 축복이라……

영웅 중의 영웅이라면 단연 헤라클레스일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영웅 행로를 잠시 따라가 보자.

헤라클레스의 어머니 알크메네는 대단한 미모와 지성을 갖춘 여인이었다. 이런 매력적인 여인을 바람둥이 제우스가 그냥 놔둘 리 없다. 알크메네는 이미 암피트리온과 정혼한 사이였으나 그런 걸 따질 제우스가 아니다. 암피트리온이 알크메네 오빠들의 복수를 위한 전쟁에 나간 틈을 타서 제우스는 암피트리온으로 변장하고 알크메네와 동침한다. 그는 밤의 길이를 세 배로 늘이며 알크메네와 운우의 정을 즐기고, 헤라클레스를 만들었다. 헤라클레스는 신 중의 신을 아버지로, 여인 중의 여인을 어머니로 태어났다.

한편 남편인 제우스가 바람을 피워 낳은 헤라클레스를 헤라는 용납할 수 없었다. 이 여신 중의 여신은 8개월 된 헤라클레스를 죽이려고 요람에 독사를 보냈다. 하지만 갓난아이 헤라클레스는 독사를 가볍게 잡고 질식사시킨다.

어려서부터 남달랐던 헤라클레스는 의붓아버지 암피트리온을 비롯하여 많은 현자들로부터 무술, 검술, 궁술, 승마, 전차 모는 법 등을 전수받았다. 여기에 친아버지 제우스의 음덕까지 더해지며 마침내 천하무적 최고의 영웅으로 성장한다.

17살, 헌헌장부가 된 헤라클레스는 맨손으로 사자를 때려잡는다. 그리고 테베를 위기에서 구하고 그 공으로 테베의 공주 메가라와 결혼하여 세 아들을 얻는다. 하지만 곧 광기에 사로잡혀 부인 메가라와 세 아들을 모두 죽이고 만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헤라클레스는 정화(淨化)의 길을 떠나 델포이 신전에서 신탁을 받는다. 신탁은 티륀스의 영주 에우리스테오스의 노예가 되어 그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것과, 모든 과업을 완수하면 불멸의 생명을 얻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신탁대로 에우리스테오스의 노예가 된 헤라클레스는 모두 열두 가지의 과제를 해낸다.

헤라클레스는 먼저 네메아 계곡의 사자를 퇴치하고 그 가죽으로 망토를 삼았다. 이 사자는 여신 세레네의 젖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어떤 무기로도 그 가죽을 뚫을 수가 없어서, 헤라클레스는 사자의 이빨로 가죽을 벗겼다. 사자 가죽은 헤라클레스의 상징이 된다.

▲ 귀스타브 모로, 〈헤라클레스와 레르네의 히드라〉
그 다음엔 레르네 늪의 히드라를 죽이는 일이었다. 히드라는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 뱀인데, 이 중 중앙의 머리는 죽지 않는 것이고, 나머지는 베어질 때마다 곧 두 개씩 새로 났다. 헤라클레스는 머리를 자르자마자 곧 불로 지져 머리가 새로 자라나지 못하게 하고, 불사의 머리는 땅에 묻은 뒤에 커다란 바위로 뭉개버렸다. 이 때 얻은 히드라의 피 — 이 피는 치명적인 독을 갖고 있다 — 는 헤라클레스의 화살촉에 묻혀져 가공할 무기가 된다.

그리고 케리네이아의 암사슴, 에리만토스의 멧돼지를 포획한다. 이들은 애써 지은 농작물을 망쳐 농부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것들이다. 그리고 3,000마리의 소를 키우며 30년간 한 번도 청소를 하지 않은 아우게이아스의 마구간을 깨끗이 청소한다.

이어 스팀팔스 호수의 괴조(怪鳥)를 히드라의 독이 묻어 있는 화살로 쏘아 떨어뜨리고, 크레타 섬의 흉포한 황소를 포획한다. 또 트라키아에 가서 인육을 먹는 디오메네스 왕의 말을 포획하고,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스에게서 허리띠를 빼앗아 온 다음, 머리가 셋 달린 괴물 게리온을 쓰러뜨린다. 이러기까지 헤라클레스는 동서남북 먼 미지의 땅까지 가서 임무를 완수한다. 그리고 추가로 주어진 두 가지는 인간의 몸으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과업, 즉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와 저승을 지키는 문지기 개 케르베로스를 포획하는 것이었다. 이 일이 미션 임파서블이었던 것은 이들이 각각 천상과 지하세계, 즉 산 인간은 갈 수 없는, 죽어야만 갈 수 있는 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불가능한 임무를 헤라클레스는 살아서 완수한다.

헤라클레스의 과업 완수는 문명화의 알레고리이며 상징(象徵)이다. 그의 영웅적 행위는 원시적 야만상태로부터 문명세계로의 진입을 은유한다. 사자, 뱀, 멧돼지, 새 등이 모두 무시무시한 괴물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자연에 대해 가졌던 원시적인 공포의 형상화이다. 이런 괴물의 퇴치는 곧 인류가 자연의 공포로부터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헤라클레스는 인류를 문명으로 이끈 선구자인 것이다.

둘째는 죽음의 극복이다. 천상의 황금사과와 지하의 케르베로스를 살아 있는 인간이 획득하는 과정은 곧 죽음의 문제가 삶 속으로 융화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문명은 종교와 함께 열리는 것이다.

이 연장선에서 유한한 존재 인간에게 무한한 신의 속성이 주어진다. 헤라클레스는 헤라 여신의 미움을 극복하고 여신의 영광을 영원히 갖게 된다. 헤라클레스의 본래 이름은 알케이데스인데, 여신의 모든 시험을 통과하고 마침내 얻은 이 이름은 ‘헤라의 영광’이란 뜻이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헤라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본래 고대의 영웅들이 신의 아들이나, 혹은 하늘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는 것은 그들의 능력에 영원성을 부여한 것인데, 헤라클레스는 살아서의 업적으로 또 하나의 영원한 명성을 더한 것이다.

2. 영웅의 고통, 영웅의 죽음

▲ 귀도 레니, 〈켄타우로스 족의 네소스에게 납치되는 데이아네이라〉
헤라클레스의 인생을 따라가 보면 거의 대부분의 삶이 고통으로 점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가졌던 최고의 행복이라면 아마도 성인이 되어 첫 아내 메가라와 결혼하고 세 아들을 가졌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이 순간에 헤라 여신의 저주로 광기에 사로잡혀 아내와 세 아이를 무참히 죽인다. 그리고 이후의 삶은 그 죄를 씻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12가지 과업을 완수하였다고 해서 헤라클레스에게 행복이 찾아올까? 어쩌면 평생을 두고 결코 잊힐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여신 헤라가 내린 저주였는지도 모른다. 오직 죽음으로써만 벗어날 수 있는 저주 말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는 헤라클레스의 위대한 업적보다는 그가 겪는 고통을 처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헤라클레스는 그의 아내 데이아네이라를 유괴하려던 반인반마의 켄타우로스족 네소스를 히드라의 독이 묻혀 있는 화살로 쏘아 죽인다. 네소스는 죽으며 히드라의 독과 자신의 피가 배인 옷을 데이아네이라에게 사랑의 미약이라고 준다. 몇 년이 지나 헤라클레스는 전리품으로 에우리토스의 딸 이올레를 얻고, 사랑을 빼앗길 것을 염려한 데이아네이라는 네소스의 피가 묻은 옷을 헤라클레스에게 보낸다.

(참고로 다음의 운문에 나오는 인명과 지명은 로마식으로 표기되어 있다. 로마인인 오비디우스와 번역자의 변역을 존중하여 그대로 인용한다.)

독의 힘이 데워지기 시작하더니, 화염에 의해
자유로워져 헤르쿨레스의 온 전신에 몰래 퍼졌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몸에 밴 용기로 신음소리를 참았다.
하나 참을성이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자 그는 제단을 엎으며
숲이 우거진 오이테를 고통의 절규로 가득 채웠다.
그는 죽음을 가져다주는 옷을 지체 없이 당장 뜯어내려 했다.
하나 뜯긴 옷을 따라 살갗까지 뜯겼다. 말하기도 끔찍한 일이지만,
뜯어내려는 시도도 소용없이 옷은 그의 사지에 달라붙어 있거나,
아니면 살이 뜯긴 근육들과 굵은 뼈들을 드러냈다.
그의 피는, 마치 발갛게 단 무쇠를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담갔을 때처럼, 쉿쉿 소리를 내며 불타는 독에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거기에는 절제란 없었다. 탐욕스런 화염이 내장을 삼키고,
전신에는 시커먼 땀이 흘러내렸으며, 그의 힘줄들은
탁탁 튀는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독이 퍼져 골수마저
녹아내리자……1)

고통에 대한 어떤 묘사가 이보다 더할까? 그리스 영웅들의 최후는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할 때가 있다. 테세우스는 절벽에 떨어져 죽고, 이아손은 광인이 되어 방황하다 쓸쓸히 죽는다. 그런 허무함과 비교해 본다면 헤라클레스가 최후를 맞으며 겪는 고통은 오히려 장엄하다.

그는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들고 소리쳤다.
“사투르누스의 따님이여, 내 파멸을 보고 즐기시오!
즐기시란 말이오. 잔인한 분이여, 그대는 높은 곳에서 이 재앙을
내려다보며 잔혹한 마음속으로 실컷 좋아하시오!
그리고 내가 내 적에게도, 그러니까 그대에게도 동정을
받아야 한다면, 이토록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고
고역을 위해서 태어난 내 이 가증스런 목숨을 거두어가시오.
죽음은 나에게는 선물이오. 의붓아버지가 주기에 알맞은 선물이오.
대체 이러자고 내가 이방인들의 피로 신전을 더럽히던 부시리스를
제압했던가요? 이러자고 내가 잔혹한 안타이우스에게서
어머니의 힘을 빼앗았던가요? 이러자고 내가 세 모습의
히베리아의 목자를 겁내지 않았으며, 케르베루스여,
머리가 셋 달린 그대를 겁내지 않았던가? 이러자고, 내 손들이여,
너희들은 힘센 황소의 뿔들을 눌렀던가? 이러자고 엘리스가,
스튐팔루스호의 물결이, 파르테니우스의 숲이
너희들의 노고를 알았던가? 이러자고 너희들의 용기에 힘입어
내가 테르모든의 황금으로 만든 허리띠를 가져왔으며,
이러자고 잠자지 않는 용이 지키던 사과를 빼내 왔던가?
이러자고 켄타우로스족이 내게 대항할 수 없었고, 이러자고
아르카디아를 쑥대밭으로 만들던 멧돼지가 내 앞에서 몸을
사렸던가요? 이러자고 잃음으로써 자라나고 힘이 두 배로 늘어나는
휘드라에게도 끄떡없었던가요? 인간의 피를 마시고 살찐
트라키아의 말들과, 시신들로 가득 찬 구유를 보고는 그것들을
보자마자 내가 그 주인과 말들을 메어쳐 죽인 것은 또 어떤가요?
네메아의 거대한 사자는 내 이 팔에 목이 졸려 누워 있었고.
이 목덜미로 나는 하늘을 떠메고 있었소.
윱피테르의 잔인한 아내는 고역을 부과하는 데 지쳐도,
나는 그것을 이행하는 데 지치지 않았소, 하나 지금 용기로도
대항할 수 없고 어떤 무기로도 대항할 수 없는 이상한 역병이
나를 엄습하고 있소.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불이 내 허파 속
깊숙한 곳을 돌아다니며 내 사지를 날름날름 먹어치우고 있소.”2)

고역을 부과하는 헤라 여신은 지쳐도 고역을 수행하는 자신은 지치지 않았다는 헤라클레스. 하지만 그 위대한 업적도 최후의 고통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그가 해낸 과업을 하나하나 반추하는 부분에서 인생의 허무함은 오히려 장엄하게 느껴진다. 불굴의 영웅도, 그 어떤 용기로도 대항하지 못하는 최후의 고통. 오직 죽음만이 그 처절한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축복이다. 이 순간은 필멸(必滅)의 몸, 인간의 육신이야말로 소중한 선물이다.

헤르쿨레스의 모습 가운데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니, 그의 어머니가 준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모습만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를 전능하신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사두마차에 태워 속이 빈
구름 사이로 채어가더니 반짝이는 별들 사이에 머물게 했다.3)


영웅 중의 영웅은 고역 속에 살다가 고통 속에 죽었다. 그의 육신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그의 영혼만이 영원히 남아 오늘도 밤하늘을 비춘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삶의 고통과 죽음의 해방을 되돌아보게 하면서……

주) -----
1) 오비디우스, 천병희 옮김,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2) 위의 책
3) 위의 책

김문갑 | 철학박사,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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