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의 근현대 역사 변동의 방향은 서유럽의 근현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서유럽 지역에 실재하는 근현대’라기 보다는 ‘우리들의 머릿속에 있는 서유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필자가 사용하는 ‘서유럽’의 외연에는 미국을 포함하여 ‘탈아시아론’을 주장하는 일본도 들어있다. 저쪽의 저들이 수 백
년에 걸쳐서 이루어왔던 사회변동 내지는 발전을, 이쪽의 우리들은 짧은 근 백년 사이에 이루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이 그렇고, 한국이 그렇고, 월남이 그렇고, 싱가폴, 태국 등이 그렇다.

서쪽 유럽이 이룩한 ‘그것들’은 이제 전 세계의 기준이 되었고 방향타가 되어 있다. 그 내용을 좀 더 들어다보면,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 그 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더 밑바닥에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과학적 합리주의가 깔려있다. 그것이 외형적으로는 자본주의로 드러나든 아니면 사회주의로 드러나든, 이제 와서는 거의 차별이 없어져 가고 있다. 자본주의 속으로 사회주의 요소를 수용하여 보완하고, 사회주의 속으로 자본주의 요소를 수용하여 수정해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서유럽의 ‘그것들’은 소위 ‘보편’이 되었다. 미래의 세상도 이런 연장선에 예측 가능할 것이다. 물론 위에서 말한 상위개념 아래 소소한 하위개념들을 쪼개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들로 왈가왈부는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2.
위에서 말한 사회 변동의 흐름 속에서 ‘종교공동체’ 속의 수행자들도 변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가 변하고 성당이 변하고 사원이 변했다. 루터와 칼뱅과 주빙글리 등에 의해 발화된 ‘종교개혁’은 서유럽의 기독교를 변화시켰다. 그런데 옛중국의 불교와 그 쪽의 영향을 많이 받던 옛한국의 불교는 위에서 말하는 세계사적 변화를 자발적으로 일으키지는 못했다. 특히 조선의 경우는 일제의 식민정책이 계기가 되어 ‘근대화에로’의 발동이 걸렸다. 근대화라는 선진화의 ‘블랙홀’ 속으로 친일인지 항일인지도 구별도 못하고 불나방처럼 허둥대던 세월도 겪어야 했다. 현대에 들어와, 일제 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비구-대처의 분규가 있었지만, 결국은 사원의 소유권 쟁탈로 번졌고, 그 과정 속에서 독신 승려들을 급하게 양성했고 결국 ‘급조승’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자본의주와 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 요소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그것이 발생했던 서유럽에서는 그 부정적 요소 보완에 심혈을 기울이는데도, 우리는 그저 그것만이 살길인줄로 생각하고 지내왔다. 자본과 자유의 ‘빛’과 ‘그림자’ 중에서, ‘그림자’ 쪽을 언급하고,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흐려왔다. 이미 근천스럽고 야박해졌다. ‘승려공동체’도 예외는 아니다.

3.
‘출가사문’이라는 용어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문’이라는 말은 세속의 공동체를 떠나 독신으로 수행공동체에 살아가는 집단을 말한다. 인도 땅에서 옛중국으로 들어온 외래어인데, ‘사문’은 소리로 번역한 것이고 ‘출가’는 뜻으로 번역한 것이다. 불교의 용어에는 종종 이렇게 소리 번역과 뜻 번역을 아울러 적는 경우가 있다. 특히 중국에 없는 개념이나 용어의 경우가 그렇다. ‘출가사문’들은 생산에 종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세속 사람들의 경제에 의존한다. 그러면서도 높은 정신세계를 추구한다. 이러한 그들의 삶을 단적으로 드러낸 용어가 ‘걸사(乞士)’이다. 한자로 그렇게 적기도 한다. 남에게 빌어서 먹고 살면서도 선비처럼 고도의 도덕성을 가지고 산다는 뜻이다.

‘출가사문’은 청빈해야 한다. 청렴하고 물자를 아껴 써야 한다. 그러면서 도를 추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보통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길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들은 삼보의 하나로 귀의의 대상이다. 그분들의 삶과 언행을 보면 마을 사람들은 반성을 하게 된다. 좋은 일을 하면서도 반성하고 나쁜 일을 하면서도 반성한다.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약자 편을 들어주고,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절제를 하게 한다. 합리성을 추구하면서도 때로는 ‘강짜부리기’를 용납한다. 왜? 저들은 도를 추구하며 사람이기 때문에. 응당, 타인의 공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응공(應供)이기 때문에.

-연세대 철학과 교수 ・한국선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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