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는 것은 ‘신라 흉조’ 의미
‘까마귀 찾아가라’는 말은 ‘신탁 받아 해결 모색’ 뜻해
 

우리나라는 금시조 신앙을 내포한 전불시대에도 불국토였다. 티베트의 뵌교는 오늘날 티베트 밀교의 한 종파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다. 꿈 수행(Dream yoga)로 유명한 텐진 완걀 린포체의 방한을 통해서 알려진 사실이라는 게 거꾸로 놀라울 따름이다. 전통적이며 대표적인 티베트불교 종파에는 겔룩, 샤캬, 까규, 닝마의 4대 종파가 있고, 다음에 뵌이 있었는데 우린 ‘뵌교’가 티베트불교 안에 있다는 사실을 접하기도 어려웠다. 뵌교과 싸워 밀교를 정립한 빠드마삼바바(연화생, 구르린포체)의 부친이 뵌교의 사제였다는 전승도 들었다. 뵌교를 포함한 티베트 불교 입장에서 보면 뵌교는 전불시대의 불교와 같은데 역시 근·현대와 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는 이긴 자들의 기록일 따름일까? 그래서 금시조에 대한 전승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금시조 신앙에 대해서 사전을 살펴보면, 금시조(金翅鳥)는 가루라(迦樓羅)라고 하며, 대붕 즉 ‘커다란 붕새’라고도 한다. 인도신화에 등장하는 큰 새로 용(龍)을 잡아먹는 존재라고 한다. 사리불(舍利弗)이 가루라를 만들어 (악)용들을 잡아먹게 했다는 기사가 《석보상절》 제6권에 등장한다.

금시조의 모습은 독수리와 비슷하고 날개는 봉황의 날개와 같다. 한번 날개를 펴면 360리나 펼쳐진다고 한다. 머리와 날개가 황금빛인 탓에 황금빛 날개라는 뜻의 새 수파르나(suparna)와 동일시하여 금시조(金翅鳥)라 부르며, 묘한 날개를 지녔다 해서 묘시조(妙翅鳥)라고도 한다. 사는 곳은 수미산 사해(四海)로 전한다. 신화에 따르면 매일 뱀을 한 마리씩 먹는데, 자신의 어머니를 속여 노예로 만든 뱀족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불교에 수용된 이후에는 수명을 늘리는 능력이 더해졌고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신중의 하나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신중탱화에도 이러한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얼굴 형태는 독수리와 같고 용을 게걸스럽게 씹어 먹고 있거나 손에 쥔 모습이 자주 나온다. 대개 사찰 벽화에 많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석굴암 전실에 있는 가루라상을 들 수 있다. 이 상은 왼손에 삼지창을 들고 있고 날개가 달려 있는 투구를 쓰고 있다.

팔부중(八部衆)은 천룡팔부(天龍八部)라고도 하며, 천룡팔부는 천(天)·용(龍)·야차(夜叉)·건달바(乾達婆)·아수라(阿修羅)·가루라(迦樓羅)·긴나라(緊那羅)·마후라가(摩睺羅伽)이다. 사천왕·팔부신중·12지신을 보면 토착신앙의 모든 신들이 나열되고 있다. 얼마나 불교가 토착신앙을 부지런히 그리고 부단히 수용하려고 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모습이다.

설화에 의하면, 현자 카샤파의 부인들이었던 비나타(Vinatā)와 카드루(Kadrū)의 두 자매 가운데 비나타는 두 개의 알을 낳는다. 그 가운데 오랜 시간 끝에 마지막 알이 부화하고 거기서 태양과 같이 찬란한 황금 깃털을 가진 새가 태어난다. ‘연오랑세오녀’ 조에 나오는 까마귀와 이 ‘사금갑’ 조에 나오는 까마귀는 삼족오라고 할 수 있다. 삼족오는 단순한 까마귀가 아니라 ‘태양’을 상징하는 상징 동물이다. 이런 의미에서 피닉스도 이와 동일한 모습으로 보여진다.

혹자가 말하기를 신덕왕(神德王)이 흥륜사(興輪寺)에 행향(行香)하고자 하여 (가는데) 길에 꼬리를 (서로) 물고 가는 한 무리의 쥐들을 보고 그것을 괴이하게 여겨 돌아와 그것을 점치게 하니 ‘내일 먼저 우는 까마귀를 찾아가라’ 운운하는 것은 잘못된 이야기이다.

신덕왕(재위 912~916년)은 신라 제53대 왕으로 성은 박 씨이며 이름은 ‘경휘’로 아달라왕의 원손이다. 김 씨들이 왕을 하다가 김씨 효공왕이 자식 없이 죽자 국인이 추대하여 즉위하였다. 헌강왕의 사위로서 후대에 박 씨가 왕이 된 희유한 예이다. 아들 중 승영은 경명왕이 되었고 위응은 경애왕이 되었다. 신덕왕대의 신라는 실제로 경주 지역을 다스리는 데 그쳤고, 국토의 대부분은 궁예(弓裔)와 견훤(甄萱)의 세력권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이 후대의 왕이 갑자기 소지왕대 기사에 왜 등장한 걸까? 단지 쥐와 까마귀가 나왔기 때문인가?

신덕왕대의 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는 것은 신라의 흉조를 예언한 것이며, “내일 먼저 우는 까마귀를 찾아가라”는 말은 ‘신탁’을 받아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내용이 ‘사금갑’ 조에 적힌 것은 까마귀와 쥐에 대한 주제어(Keyword)가 동일하기에 저자나 독자가 참고 삼아서 메모 형식으로 간지로 넣어져 있던 것이 후대에 인쇄 시에 특별한 교정과정 없이 검토되다가 각주로 정착된 것이 아닐까?

* 이 글은 일연 스님이 그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는 필자의 견해에 따라 원문을 재해석하고 현대적 관점을 부여했다. 《삼국유사》자체가 일연 스님의 제자들을 포함한 후대인들에 의해서 재편되었을 것으로 보이므로 원문(밑줄) 내용 일부를 조목 안에서 순서 등을 재배치하는 등 바꾸었음을 알린다.

하도겸 | 칼럼니스트 dogyeom.ha@gmail.com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