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호 선사 영정<사진=불교포커스 제공>

전 용주사 주지 덕운당 정호 선사 영결식이 경기도 동탄 용화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17일 오전 엄수됐다. 이날 영결식은 지역사회 인사 등 5백여 사부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조계종 어산장 동주스님의 청혼과 법구 이운으로 시작됐다.

송광사 선덕 영선 스님의 행장 소개, 조실스님 법어, 정호 스님의 생전 육성법문 청취, 헌화와 분향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해인사 선덕 중천 스님은 영결사에서 “정호 스님, 정말 가셨습니까. 이게 웬일입니까. 제행무상의 진리를 깨우치라는 가르침이라고 믿지만 너무 아쉽습니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하고 “잠깐 쉬었다가 빨리 오십시오”라고 청했다.

수행을 함께 한 대효 스님(제주도 원명선원장)은 추도사에서 “종단이나 용주사에서 보이신 스님의 모습은 정의의 사천왕이셨으니, 잘못된 것을 꾸짖는 데는 조금도 그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고 스님을 회고하고 “오고감이 없는 면목 상에서 보일 걸 다 보이시듯이 다시 또 뜻을 세상에 살려 보여주시기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덕운당 정호 선사 영단을 찾아 조문하고 있는 스님들. <사진=불교포커스 제공>

평상 스님은 조사에서 “여기 이렇게 제방에서 함께 했던 여러 인연들이 다 와있습니다”라고 영전에 고하고 “흐뭇하십니까. 매정도 하십니다. 이렇게나 아프게, 서둘러야 될 일이었단 말입니까. 대성골 산중 아직 볼만합니다. 동리산 양지녘 아직 걸을만합니다”라며 스님의 입적을 애도했다.

입산 시절부터 도반으로 지내 온 신룡 스님은 “사숙님 별명은 영원한 대자유인이셨다”고 기리고 “오늘 이 자리는 용주사의 꿈을 위하여 스스로 몸을 내어 대중들에게 나누어주는 자리”라며 영결식의 의미를 새겼다.

이어 ‘용주사 현주지 성월 산문출송 신도 비상대책위원회’(신도비대위)는 송재형 사무총장이 낭독한 조사를 통해 용주사 정화불사와 효문화 유적지 보존운동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 17일 오전 동탄 용화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엄수된 정호 스님 영결식에는 사부대중 5백 여명이 참석해 입적을 애도했다.<사진=불교포커스 제공>

신도비대위는 “큰스님이 계신 동안 저희 용주사 불자들은 효찰대본산 청정도량을 찾는 발걸음이 즐거웠으며, 큰스님을 먼 발치에서 뵙는 것만으로도 환희심이 일었고 가피로 여겼다”고 회고했다.

신도비대위는 “그러나 용주사는 신임주지를 둘러싼 각종 범계비리의혹이 규명되지 않은 채, 정조효문화유적지도 난개발에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고 밝히고 “저희들이 불퇴전의 신심과 수행정진의 힘으로 부처님의 정법을 수호하고 종단정화의 바람이 널리 펼쳐져 일체중생이 불국토 청정도량에서 불성 가득하기를 발원한다”면서 정화불사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1시간 20여분에 걸친 덕운당 정호 선사의 영결식은 만덕장 보살의 추모가로 끝을 맺었다. 정호 스님의 법구는 대중들의 나무아미타불 정근 속에 용화사를 떠나 수원 연화장으로 떠났다.

습골한 정호 스님의 유골은 평소 자주 찾았던 용화사 뒤 팔봉산 자락에 뿌려졌다.

정호 스님은 1945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경남고등학교와 고려대 법학대학을 졸업했다. 1973년 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조실 전강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75년 법주사에서 석암화상으로부터 비구계를 수지한 이후 김천 수도암, 해남 대흥사 등지에서 35안거를 성만했다.

전강문도회의 간곡한 요청으로 용주사 주지를 2006~2014년 두 차례 역임했다. 동탄 용화사에서 미질을 보이다 지난 15일 오전 6시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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