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초자아Super-Ich는 규율·규범·규칙을 주장하는 주체이다. 초자아가 학습에 의한 것, 혹은 훈육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둥지를 트는 곳은 무의식이다. 의식의 영역에 둥지를 틀고 있는 자아가 에스[Es=원초적 본능]에 업혀 규칙·규범·규율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무의식이라는 주체, 곧 초자아-주체가 ‘주의보’를 발령한다. 프로이트의 초자아-주체는 도덕적 주체이나, 이점에서 칸트의 도덕적 주체와 유비이나, 칸트의
요청된 도덕적 주체에서 느낄 수 있는 구원과 거리가 멀다. 칸트는 주지하다시피 《순수이성비판》 말미의 <초월적 방법론>에서, 앞의 <초월적 변증론>에서 증명불가능성에 의한 것으로 ‘내버린’ 신이념-영혼이념-세계이념 중, 특히 신이념-영혼이념, 특히 신이념을 다시 불러들였다. 도덕을 보증하기 위한 것으로서 신이념을 부활시켰다.

도덕적 주체에 의한 자기 구원은 이미 붓다-소크라테스-예수에서 완전한 죽음으로 표상됐었다. 인류에 대한 자비심으로 죽음을 넘어선 붓다, ‘정화된 삶’에 의해 죽음을 넘어선 소크라테스, 인류에 대한 연민으로 죽음을 넘어선 예수; 도덕적 주체 역시 ‘완전한 죽음’을 담지한다. 칸트의 경우 ‘가슴에 도덕이 반짝 반짝, 하늘에 별들이 총총 총총’이 말하는 바다. 프로이트의 초자아-주체가 도덕적 주체이긴 하나 구원을 담지하지 않는 것은 자아를 규칙·규율·규범에 얽어 인생을 그저 살 만한 것으로, ‘그저’ 견딜 만한 것으로 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프로이트의 초아자-주체가 ‘근본주의fundamentalism’가 될 때이다. 또 이슬람 근본주의처럼 율법화될 때이다. 자아가 구원은커녕 정반대로 자아상실에까지 이른다. 자아는 [심적]억압Verdrängung에 의해 스스로를 부인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른바 [병리학적] 멜랑콜리-멜랑콜리커Melancholiker의 탄생이다.

멜랑콜리의 일반적 수순이 ‘리비도[純에너지]에 의한 애도집중[리비도애도집중]’→‘리비도애도집중 실패’→‘애도대상과 자아Ich=ego의 합체’→‘자아상실’이다. 합체Inkorporation란 리비도애도집중 실패 이후 애도대상의 유골함이 자아를 덮어쓰는 것을 말한다. 애도집중에 사용된 리비도는 애도 실패 이후 자아를 상실시키는데 쓰인다. 자아상실은 물론 애도에 의한 것만이 아니다. 타자에 의한 무시, 혹은 자기에 대한 실망[자기실망]에 의해서도 ‘심적 억압’(혹은 자기부인)이 발생한다. 프로이트의 초자아=도덕적 주체=심적 억압에 구원이 없는 것은 도착지가 자아상실에 의한 멜랑콜리이기 때문이다. 멜랑콜리에 구원이 없다. 자아상실에 구원이 있을 리 없다.

리비도애도집중 실패, 타인에 의한 무시, 그리고 ‘자기실망’ 등에 촉발되는 것이 자아상실이고 자아상실의 증상이 멜랑콜리라고 할 때 ‘인생의 거의 반’은 정말 멜랑콜리로 보내는 것이 아닐까? 불교-기독교로 표상되는 종교일반이 멜랑콜리의, 멜랑콜리에 의한, 멜랑콜리를 위한 종교 아닐까? 붓다-바울은 가장 빼어난 애도자, 애도의 명수들 아니었던가? ‘이제부터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혼으로 산다’고 고백한 바울. 제행무상을 진리로 말한 붓다(진리는 진리로서 반박불가능하다─진리에는 슬픔이 없다), 붓다는 자비심으로 해서 따라서 하나님과 유비로서, 그 자체 가장 큰 유골함, 즉 거기에 인류가 담긴 유골함 아니었을까.

프로이트의 ‘초자아’에 의한 것으로서 애도자가 자기억압-자기부인을 거쳐 자아상실까지 가는 과정은 이른바 업적사회에서의 업적[지향적]주체Leistungssubjekt가 ‘자기긍정’을 거쳐 자아상실까지 가는 과정과 비동질적 유비이다. 업적사회의 자기긍정 과잉이 도달하는 곳이 결국 자기소진burnout이다. 자기소진과 자아상실이 같은 곳을 지시한다. 한병철에 의할 때 ‘업적사회’에서 프로이트적 의미의 무의식은 사라졌다. 즉 자기부정의 명수인 초자아의 거처, ‘무의식’이 사라졌다. “후기근대적 업적주체에게는 더 이상 무의식이 없다.”(한병철, 󰡔피로사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2-2014, 84); 일반화의 오류(혹은 동일성 사유의 오류)가 없는 것이 아닌 것이 프로이트적 의미에서의 ‘멜랑콜리 수순’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자기부인을 거쳐 자아상실로 가는 멜랑콜리와 자기긍정을 거쳐 자아상실로 가는 멜랑콜리의 차이이다.

업적사회, 무엇보다 ‘업적사회와 멜랑콜리’를 말할 때 우리나라를 맨 먼저 말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2위로 많고, [10만 명당] 자살률이 1위이다. 국민행복지수가 34개 국가 중 꼴찌에서 두 번째다.

-시인 · 추계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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