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6년작 ‘백지묵서 금강반야바라밀경’. 그동안 한 번도 전시된 적이 없는 작품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사경대국’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사경원이라는 국가기권이 있었고, 원나라에 수백 명의 사경승을 파견해 대장경을 조성케 할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의 사경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숭유억불 정책을 편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사경은 맥이 끊어지고 만다.

잊혔던 전통사경의 맥을 되살린 이가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 명예회장이다.

우리나라 전통사경은 온전히 김경호 회장이 혼자 힘으로 복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료 하나 제대로 남아있지 않고, 선행 연구 또한 미미한 상황에서 김경호 회장은 사경 유물이 공개될 때마다 소장자들을 찾아가 매달렸다. 김경호 회장은 그렇게 어렵사리 얻은 열람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금줄의 빛깔과 광도, 아교의 농도까지 꼼꼼히 확인하고 기록하며 자신의 사경 작품과 비교했다. 전통사경 기법을 그렇게 되살아났다.

▲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 명예회장.
“전통의 계승이란 그냥 하려고 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피로써 피를 씻는 처절한 노력에 의해서만 쟁취되는 것”이라는 미술사학자 우현 고유섭 선생의 말은 김경호 회장에 꼭 들어맞는 말이다.

김경호 회장은 사경작품은 전통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궁서체 한글 작품이 유난히 많다. “사경이라고 베끼기에만 그쳐서는 곤란하다. 고려시대 보다 정교하고 새로워야 한다”는 게 김경호 회장의 생각이다.

전통 사경을 복원하려는 김경호 회장은 노력은 그를 지켜본 이들의 평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 원장은 “김 회장의 실력이 고려시대를 능가한다”고 했고, 불교미술사학자였던 고 장충식 교수는 “김 씨의 정진에 의해 전통 사경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됐다”고 평했다. 안휘준 전 서울대 교수도 “한글을 적극 반영하는 등 사경의 현대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상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평생 전통사경 복원과 창조적 계승을 위해 힘써온 김경호 회장이 55년 인생을 정리하는 대규모 회고전을 갖는다.

10월 5일부터 11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아라아트센터 5층에서 개최하는 ‘전통사경 회고전 잉불잡란격별성(仍不雜亂隔別成)’이 그것이다.

2008년 불교중앙박물관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열렸던 ‘일미리중함시방(一米里中含十方)’에 이은 최대 규모 작품전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1996년 완성했으면서도 그 크기 때문에 그간 한 번도 전시되지 않았던 ‘백지묵서금강경’에서부터 최근 조성한 전통사경 작품까지 지난 20년간 조성한 전통사경 중 김경호 회장이 직접 뽑은 최고 작품 15점이 선보인다.

김경호 회장은 “50대가 되면 한 번쯤은 삶을 정리해 두어야 한다는 게 소신”이라며, “20여 년간 제작해온 최고 작품들을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았다”고 말했다.

이번 회고전은 김경호 회장이 직접 가려뽑은 최고 작품을 한 곳에서 보는 마지막 기회다. 김경호 회장은 전시회가 끝난 후 14점을 세계적인 박물관에 기증할 계획이다. 회고전 개막식은 10월 5일 오후 5시이다.

문의. 02)335-2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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