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믿고 행할 때 이루어지는 것"

 

산문 안팎에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절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죽 흘러내리는 한여름이지만, 전국곳곳에서 스님들은 하안거 결제를 하고, 불자들은 기도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초발심을 더욱 다잡아야 할 때입니다.
절에 들어와 부처님을 모시고 산지도 60여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깨달음의 문지방을 넘어서지 못한 내 자신을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나는 14살 때 마곡사에서 출가해 행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내게는 부처님이 부모요 절이 집이었지만, 행자 생활은 엄격하기만 했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어렸을 때 엄하게 받은 교육 덕분에 지금까지 새벽에 참선을 하고 예불 모시는 일 만큼은 하늘이 두 쪽 나도 했습니다.
서해 큰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대기(大機)’라는 법명을 받은 것은 행자 생활이 모두 끝났을 때입니다. 은사 스님은 당시 충남종무원장으로 계셔서 시봉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대신 춘성 스님을 6년간 모실 수 있었습니다. 행자 생활을 마친 나는, 망월사에 선방이 생긴다는 말을 듣고서 그 곳에서 참선을 공부하고 싶어 이내 바랑을 챙겼습니다.
춘성 스님은 첫 인상이 달마 스님과 같은 분이셨습니다. 스님을 뵙고는 단번에 ‘그래, 내 인생의 행로를 정할 수 있는 스승이 바로 이 분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길로 나는 춘성 스님의 가르침으로 선(禪)과의 인연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스님께 받은 ‘이뭣꼬’ 화두에 매진했는데,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은 화두의 참뜻은 결코 잡히지 않았습니다. 삼경(三更, 밤 11시~새벽1시)이 지나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앉아 있으면 어느새 망월사의 하루는 적막을 깨는 도량석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망월사에서 6년간 정진하는 동안 ‘마음자리’를 생각하게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춘성 스님은 평소 “중은 책을 봐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알지 못 했죠. 당시 책 읽기를 좋아했던 터라 글씨가 큼직한 경책은 달빛에서도 읽을 수가 있었기에 달이 밝으면 법당 뒤에서 경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이를 본 금오 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글 읽기 좋아하는 놈은 중노릇이 어렵다.”
또 춘성 스님은 ‘수행에 방해가 된다’며 전국 각지에서 시주로 들어온 크고 두툼해 보이는  좌복을 불태우는 ‘괴행(怪行)’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손수 만드신 작고 얇은 좌복을 건네셨습니다. 수행자는 스스로 자신의 고삐를 단단히 잡아야만 한다는 가르침을 괴팍하지만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춘성 스님의 가르침을 놓지 않고 초발심으로 볼품없는 자복을 깔고 참선하고 있습니다.
참선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화두를 드는 것입니다. 화두란 비유컨대 소(마음)를 길들이는 말뚝과 같은 것입니다. 1천7백가지 공안(화두)이 말은 달라도 역할은 같습니다. 법당 벽에 흔히 그려진 심우도를 예로 들어보지요.
산속의 소는 길들여지지 않은 마음입니다. 용서를 모르고 욕심과 투쟁심이 가득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소를 찾아 말뚝에 묶고 길들이면 코뚜레를 꿸 수도 있습니다. 말뚝은 풀이나 돌, 참나무 등 어떤 것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소를 길들이는 것이 목적이지 말뚝은 의미가 없지요. 화두를 안 들어도 공부가 잘된다면 굳이 화두를 들 필요가 없습니다.
끈을 당기지 않아도 잘 따라온다면 끈도 필요 없지요. 나중엔 소와 사람이 일체가 됐다가 사람도 소도 사라지는 때가옵니다. 바로 이 상태가 번뇌 망상이 제거된 때지요. 또 검정소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희어지는 것은 업장소멸을 나타냅니다.
참선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수마와의 싸움입니다. 잠이 몰려 올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잠에 쏠려 들어가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잠이 오기 시작하면 벌써 눈꺼풀이 무겁고 뻣뻣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얼른 다시 정신을 챙겨서 몸을 단정히 앉고 입속말로 조용하게 화두를 한두 번 들먹거리면 잠이 달아나고 온전한 마음으로 참선이 잘 되는 걸 느낄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마음이다(一切唯心)’라고 말합니다. 마음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또한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고도 합니다. 내 마음이 바로 부처님이라는 말입니다. 종합해 말하면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이 팔만대장경에 담겨 있는 만큼 불교를 알려면 팔만대장경을 다 봐야 할 텐데 누가 그 많은 팔만대장경을 다 보겠습니까. 팔만대장경이 그토록 많지만 사실 알고 보면 마음 ‘심(心)’자 한자에 있습니다.
인간사의 자초지종(自初至終)이 마음에서 시작해서 마음으로 끝납니다. 그래서 내가 항상 마음의 눈을 뜨자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면 자기의 본성,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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