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과 철원을 잇는 이름 모를 국도에서 버스에 내렸다. 광덕산을 오를 수 있는 비포장 길이 보였다. 그 옆으로 성지선원 푯말이 서있었다. 산길을 무작정 밟고 올라갔다. 상해계곡이 용트름 하듯 산길을 막기도 했다. 자갈을 밟기도 하고 때론 침목(枕木)도 밟으며 구불구불 이어진 가파른 산길을 한참 걸어서야 성지선원 경내에 당도했다.

성지선원은 강원도 철원군 광덕산 상해계곡에 자리 잡은 산사(山寺)다. 이곳을 중심으로 계곡과 준봉(峻峰)이 보이고 그 위로 하늘도 보였다. 하늘은 온통 구름 떼. ‘상해’라는 계곡 이름과 잘 어울렸다. 계곡을 가득 매운 돌덩이들은 범인(凡人)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산사를 안내하는 돌탑과도 같았다.
경내로 발을 옮기자마자 어디서 풍경소리가 울렸다. 종소리는 아니지만 사시 예불을 알리는 소리인 듯 했다. 풍경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 대웅전 처마에 걸린 풍경들이 산바람에 너울거렸다.
몇 번 울렸는지 세지 않았지만, 그 진동은 경내 구석구석 잔잔한 파동으로 전해졌다. 대웅전 앞에는 너른 마당이 있었다. 마치 ‘신심 깊은 불자’를 기다렸다는 듯 두물머리 풍경이 펼쳐졌다.
성지선원 주위로는 수령이 수십에서 수백 살을 먹음직한 참나무들이 울창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이웃한 가지끼리 부딪치며 살아가는, 빼곡히 들어선 참나무 탓일까?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하여 불자들에게 위압감을 준다거나 동떨어진 느낌을 주지 않고 친근하고 포근한 인상을 주었다.
넓게 펼쳐진 성지선원 경내도 마찬가지다. 대웅전과 산신각은 마치 처마를 부딪칠 만큼 살갑게 붙은 채 한 곳에 모여 있어, 오직 푸른 초목만이 산사와 산, 계곡의 경계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잔뜩 찌푸린 장마철 하늘만 빼고, 여느 절에서 보는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대웅전으로 다가갔다. 대웅전의 처마 끝에 달린 풍경소리는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빠금히 열려있는 법당 문 사이로 고풍스런 불단에 봉안되어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였다. 결코 화려하게 장엄되지 않은 공간에 어렴풋이 들어난 부처상에 더 정감이 가는 것을 왜일까? 낡은 불단과 꾸밈없는 기법이 좋아서 일게다.
대웅전 옆으로 앉아 있는 산신각으로 눈길을 돌렸다. 견고하게 쌓아올린 축대가 눈에 들어왔다. 산신각은 그 위에 세워졌다.
수각(水閣)도 보였다. 이곳의 물은 주로 헌다(獻茶) 의식에 이용됐겠지만, 때론 산사를 방문한 불자들의 갈등도 삭혔을 것이다. ‘비 내리는 오늘 같은 날에는 수각을 맛을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나마 먼저 온 불자들이 마셨을 물맛을 떠올리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수각의 물로 차를 우려내면 어떤 색·향·미(色香味)을 맛볼 수 있을까. 산사는 지친 마음을 내려놓는 곳이다. 그래서 산사를 찾을 때면 한 잔의 차, 한 잔의 물이 그립다. 성지선원의 수각은 함허 스님의 차가(茶歌)와 잘 어울리는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갔다.

한 잔의 차 한 조각 마음에서 나왔으니,
한 조각 마음 한 잔에 담겼네.
이 차 한 잔 맛보시게,
한번 맛보면 한량없는 즐거움이 생긴다네.

“성지선원은 작지만 많은 이야기를 안고 있다”고 전하는 주지 세인 스님은 “1974년부터 이곳에 살면서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불제자의 소명 하나만을 바로 세우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궂은 일이 모두 지난 지금, 마음은 평화롭고 또 온몸으로 부처님의 자비가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지선원 | 강원도 철원군 서면 자등리 1814번지 | (033)458-8995

 

오종욱 | 월간 선원 편집실장, gobaoou@han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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