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학회(회장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와 연세대학교 언어정보연구원(원장 서상규), 세종대왕기념사업회(회장 최홍식)는 훈민정음 반포 570돌을 기념해 ‘불교와 한글, 한국어’를 주제로 8월 18일, 19일 이틀간 국립한글박물관과 연세대 위당관에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신규탁 교수는 주제발표 ‘《화엄경》과 한글 번역’에서 60권본 《화엄경》이 유통되던 신라·고려시대와 달리 조선시대에는 80권본 《화엄경》이 주로 읽혀졌음에 주목하고, 용성 스님과 운허 스님이 번역한 80권본 《화엄경》의 <이세간품>에 나타난 번역 상 특징을 ‘과목 분류’와 ‘번역 용어’를 중심으로 조명했다.

신 교수는 먼저 두 번역 모두 청량 징관(淸凉 澄觀)의 주석을 기준으로 문단 나누기를 했다고 밝혔다. 숙종 7년(1681) 6월 신안 임자도에 불경을 가득 실은 중국 배가 난파한 사건 이후 청량의 소초가 화엄 연구의 표준이 되었고, 두 스님이 이런 전통을 모두 이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신 교수는 이어 두 스님 모두 한문 실력이 출중해 구문 번역에 큰 오류를 발견하기 어려웠지만 부분적으로 용성 스님 번역본에 용어 오류가 더러 보인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또 운허 스님은 청량의 주석서를 적극 활용한 반면 용성 스님은 상대적으로 활용이 적다고 지적하고, “이것은 강사와 선사의 차이”라고 분석했다.

김슬옹 인하대 교수는 주제발표 ‘불교를 통한 훈민정음 보급의 의미’에서 불교가 훈민정음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고 밝히고 발간과 보급 맥락을 짚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각종 불경 언해서는 언해의 규범 역할을 해 유교 경전 언해서 발간·보급의 바탕이 됐다. 또 진언집류 불교 문헌은 훈민정음 교육의 핵심인 한글 음절표 보급을 통해 훈민정음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 교수는 불경언해서가 불교 전문가나 지식인 위주로 한글 보급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면 진언집류는 일반 민간의 신도들을 중심으로 한글 저변을 확대하는데 기여했다고 밝혔다.

차차석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역경의 화신’으로 불리는 운허 스님이 《법화경》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폈다.

차 교수에 따르면 운허 스님은 매우 전통적인 사고에 입각해 《법화경》을 이해했다. 《법화경》 전체를 이등분하고 그것을 체용(體用)의 논리에 입각해 이해하고자 한 것은 도생 이래 중국 《법화경》 연구가들에게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운허 스님이 ‘묘법’이나 ‘불성’을 해설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화엄이나 선사상의 영향도 발견된다. 그것은 화엄과 선의 융합이라는 한국불교 전통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차 교수의 지적이다.

차 교수는 또 “운허 스님은 일상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를 잘 살려 《법화경》을 번역했다”며, “대중과 유리된 불교, 대중들의 종교적 감성을 승화시켜주지 못하는 번역은 진정한 의미에서 번역이라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운허 스님의 작업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치온 진각대 교수는 주제발표 ‘《금강경》과 초기의 한글 번역’에서 용성·해안·운허 스님과 백봉 김기추가 번역한 《금강경》을 통해 《금강경》 한글 번역의 의의를 살폈다.

김 교수는 “용성·해안 스님과 백봉은 불교용어를 한자용어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운허 스님은 최대한 뜻에 맞추어 한글용어를 채택하고 전체적인 문맥을 고려해 적절하게 문장을 구성했다”고 지적하고, “이런 방식은 오늘날에도 선별해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구마라집이 nimitta, saṃjñā, lakṣaṇa 세 용어를 모두 ‘상(相)’으로 한역했고, 용성·해안 스님과 백봉 또한 그대로 상으로 옮겼지만 운허 스님은 문맥과 전체적인 뜻에 맞추어 모양, 모양다리, 고집, 몸매 등으로 구분하여 번역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특히 범어 원전의 뜻과 비교해 볼 때 운허 스님의 번역이 원뜻에 매우 근접한 번역이라고 강조했다.

김한샘 연세대 교수는 주제발표 ‘국어사전과 불교언어’에서 국어사전에 수록된 불교용어를 분석해 불교 관련 고유명사, 전문용어 등의 경우 백과사전적 지식을 일부 수록했다고 밝히고, 국어사전이 문화 콘텐츠라는 점에서 어휘의 기원을 충실히 밝혀 사전에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기존 국어사전에서는 백과사전적 지식을 뜻풀이 뒤에 서술하는데, 관련된 문화를 중심으로 한 백과사전적 지식을 별도의 미시 구조로 분리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 “불교 어휘에 대한 기존 국어사전의 기술 내용을 분석한 결과 △한 사전 안에서 언어 단위에 따라 전문 영역 표지가 달라지는 경우 △사전별로 불교 전문용어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다른 경우 △기존의 학술적인 연구 결과와 사전의 기술 내용이 상충되는 경우 등 섬세한 검증을 필요로 하는 사례가 도출되었다”며, “향후 불교 영역 전문가와 국어학자, 사전 전문가의 교류를 통해 객관적 기술 근거를 확보하고, 불교문화에 대한 지식을 개별 어휘에 대한 정보로 녹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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