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설산 가운데 한 마리 악한 짐승이 있는데, 소를 보면 소의 모습이 되어 소를 죽이고, 말을 보면 말의 모습이 되어 말을 죽인다. 외도가 아리야식(阿梨耶識)1)에서 일으키는 아견도 이와 같아서, 집착하는 사람에 따라 각각 차별을 일으킨다. 외도는 유식(惟識)의 도리를 알지 못하여, 아견(我見)을 일으켜 강하게 유(有)와 무(無), 일(一)과 다(多)를 심히 분별한다. -밀엄경(密嚴經)

139. 선남자여, 일체중생이 무시(無始)이래로 갖가지로 전도(顚倒)함은 미혹한 이가 동서남북을 바꾸는 것과 같아서, 사대2)를 망령되이 집착3)하여 자신의 모습으로 삼고, 육경4)에 의한 그림자를 자기 마음의 모습으로 삼는다. 비유하건대 병든 눈에는 허공의 꽃과 달이 두 개로 보이는 것과 같으니라.5) 선남자여, 허공에는 원래 꽃이 없거늘 눈병 든 이가 헛되이 집착하는 것이니, 망령된 집착(妄執)으로 이 허공의 자성만 미혹할 뿐 아니라, 저 실제의 꽃이 핀 곳까지도 미혹함과 같으니라. -원각경(圓覺經)

140. 모든 존재는 모두 망견(妄見)에 의한 것이므로 꿈과 같고 불꽃과도 같으며 물속의 달과 같고 거울 속의 형상과도 같아 모두 망상(妄想)에서 생기는 것이다. -유마경(維摩經)

141. 물속에 본래 달의 그림자가 없으나 깨끗한 물을 말미암아(緣) 원래의 달을 보게 된다. 모든 존재는 말미암아(緣)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모두 거짓 모습[虛假]이건만 범부의 어리석은 헛된 분별심6)으로써 나를 삼는다. -심지관경(心地觀經)

142.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문수사리여, 지옥은 자신의 분별심에서 생기는 것인가? 자연히 있는 것인가?”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지옥은 범부의 허망분별(虛妄分別)에 의한 것이고 축생과 아귀 또한 그렇습니다. 저의 눈에는 지옥도 없고 고통 역시 없습니다.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꿈에 지옥으로 떨어져, 물 끓는 큰가마솥[大沸钁]7)에 빠진 자신의 몸을 보고 문득 크게 슬퍼하면서 고통스럽다고 울부짖는다 하여도 가족들은 절규하는 사람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 대법거다라니경(大法炬陀羅尼經)

143. 주관(能緣)과 객관(所緣)의 작용8)으로 갖가지 존재들이 생겨나지만 빨리 변하여 잠시도 머무르지 않으니, 매 순간 모두 이러하니라. -화엄경(華嚴經)

144. 법은 유무(有無)를 떠난 것이니 인연(因緣)으로 모든 존재가 생기는 것이니라. -유마경(維摩經)

145. 보살이 정념(正念)으로 세상(世間)을 관찰함에, 일체가 모두 업의 인연[業緣]으로 스스로 얻는 것이며, 모든 존재를 관찰함에 모두 인연에 의해 생긴 것이다. -화엄경(華嚴經)

각주
1) 아리야식(阿梨耶識, ālaya-vijñāna): 유식설에서 주장하는 가장 근원적인 식(識)으로 장식(藏識), 근본식(根本識)이라고도 한다.
2) 사대(四大, catvāri-mahābhūtāni) : 물질계를 이루는 요소를 불교에서는 색법(色法)이라 일반적으로 지칭하는데, 다양한 요소를 지(地)·수(水)·화(火)·풍(風) 네 가지 범주로 환원하여 원질(原質)을 설명하고 있다. 사대 외에 공(空)을 더하여 오대라 칭한다.
3) 사물과 진리의 진실상을 그대로 보지 못한 미망(迷妄)의 집념(執念)이다. 혹은 진실을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 그릇된 견해를 가리킨다.
4) 원문은 ‘六塵’이다. 여기서는 ‘六境’으로 번역한다. 육식(六識)으로 알아채는 주변 환경인 대경(對境: 色境, 聲境, 香境, 味境, 觸境, 法境)을 의미한다. 범부의 경우, 눈·코·입 등의 6근(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意根)을 통해 정심(淨心)이 오염되어 진성(眞性)이 흐리게 되므로 이를 가리켜 ‘진(塵)’이라 지칭한다.
5) 공중화(空中華)와 제이월(第二月)은 주로 《구사론(俱舍論)》《능엄경(楞嚴經)》《원각경(圓覺經)》《성유식론(成唯識論)》《인왕경(仁王經)》 등의 경론에서 언급되는 비유다. 헛된 망상에 대한 집착을 상징한다. 눈에 병이 들었을 때, 허공에 핀 꽃이 보인다거나 달이 두 개로 겹쳐 보이나 이는 허상일 뿐이다. 참고로 ‘제이월(第二月)’은 달을 헛보아 두 개로 보인다는 의미이다.
6) 원문은 ‘妄計’다. 여기서는 ‘헛된 분별심’으로 번역한다.
7) ‘곽(钁)’은 ‘확(鑊)’을 빌려 쓴 단어로 여기서는 ‘확(鑊)’으로 교열하여 번역한다.
8) ‘능연(能緣)’은 여기서 ‘주관’으로 번역한다. 대상(혹은 對境)을 의지하여 작용하는 마음인 까닭에 구체적으로 ‘주관 작용’이라 할 수 있다. ‘소연(所緣)’은 ‘객관’으로 번역한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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