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괴이, 문란, 그리고 말할 수 없음

공자님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논어》에 있는 말이다. ‘괴(怪)’는 괴이(怪異)한 것을 말한다. 요괴와 같은 요사스러운 것이다. 여름 극장가의 단골메뉴인 괴기영화의 등장인물들, 예컨대 구미호나 뱀파이어 등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력(力)’은 힘이 엄청나게 센 것이다. 슈퍼맨이나 엑스맨 같은 초능력자들의 이야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난(亂)’은 ‘어지럽다’는 뜻인데, 기본을 흔드는 것을 뜻한다. 혹자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거나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는 것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한다. 오륜(五倫)을 국가경영의 근본이념으로 삼고 있는 중국에서 이런 파렴치한 행위는 분명 기본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하지만 공자가 친히 지었다는 《춘추》에는 이런 이야기가 넘친다. 《주역》의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그 어버이를 죽이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란 말도 공자님 말씀이다. 그러니 아애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공자는 수시로 이 문제를 언급하였다. 그렇다면 이 ‘난’은 무엇을 가리킬까? 아들이 어머니와 정을 통하고, 아버지가 딸과 통정하여 아이를 낳는 경우와 같은 류일 것이다. 남매간에, 혹은 숙질간의 근친상간도 마찬가지이다. 차마 입에 담기 거북한 패덕(悖德)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문화적 거부감이 동양에는 《오이디푸스 왕》과 같은 패륜을 소재로 한 작품이 드문 이유는 아닐까.

‘신(神)’은 신비(神祕), 즉 상식이나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 ‘FX’처럼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이야기 등이다.

그러고 보니 이 네 가지는 모두 소설이나 영화의 중요한 소재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는 괴력난신의 집합체이다. 그러니 오늘날의 환상문학이나 판타지 영화는 옛날 같았으면 출판이나 상영은커녕 입에 담아서도 안 될 것들이다.

소설(小說)은 가장 사람의 심술(心術)을 무너뜨리는 것이므로 자제들에게 보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수호전》의 저자 시내암(施耐菴)은 훌륭한 재주를 갖고 태어나 한 덩어리의 분노가 가슴속에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처럼 없는 말을 조작하여, 한평생 세상을 저주하던 마음을 드러내었던 것 같다. 그 마음은 비장하고 괴로웠다 하겠지만 그 죄는 머리털을 뽑아 세어도 속죄할 길이 없을 것이다.
소설에는 세 가지 의혹된 바가 있다. 헛것을 내세우고 빈 것을 천착하며 귀신을 논하고 꿈을 말하였으니 지은 사람이 한 가지의 의혹이요, 허황된 것을 감싸고 비루한 것을 고취시켰으니 논평한 사람이 두 가지 의혹이요,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경전(經典)을 등한시했으니 탐독하는 사람이 세 가지 의혹이다.1)

한마디로 소설은 허황과 미혹의 세계로 사람들을 이끌어 그들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나쁜 것이란다. 그리하여 특히 젊은이가 소설과 접촉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완고하고 고리타분한 말을 남기신 분은 실학사상가로 널리 알려진 이덕무(李德懋)이다. 그러고 보면 이덕무와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은 참으로 많다. 그러니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어찌 동양뿐이겠는가. 서양사상의 원류라 할 수 있는 플라톤은 지난 14회 ‘플라톤 - 국가(國家)와 정의(正義), 그리고 교육(敎育)’에서 살펴본 것처럼 문학과 예술을 추방할 것을 주장하지 않았나.

2. 괴상한 그림책, 《산해경》

《산해경(山海經)》이란 책이 있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신화집이며 지리서(地理書)인데, 사마천(司馬遷)이 “감히 말할 수 없다”고 평가한 것처럼 온갖 기이하고 황당한 이야기들을 모아 놓았다. 《산해경》은 모두 18권으로 되어 있다. 먼저 산경(山經)과 해경(海經)으로 나누고, 산경은 다시 동서남북으로, 해경은 해외(海外)·해내(海內)로 나누어 각각 동서남북으로, 그리고 동서남북의 대황경(大荒經)으로 나누었다. 대충 제목만으로도 엿볼 수 있듯이 중국을 중심으로 밖으로 나갈수록 황량한 곳에 온갖 기괴한 사람들과 동물들이 나오는 이야기이다. 예컨대 중국의 남쪽 바다 건너에 관흉국(貫匈國)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곳 사람들은 가슴에 구멍이 나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신분이 높은 사람은 천민들로 하여금 대나무로 가슴을 꿰어 들고 다니게 한다고 한다.〔〈해외남경(海外南經)〕 또 저인국(氐人國)이란 나라 사람들은 사람의 얼굴에 물고기의 몸을 하고 있다고 한다.〔〈해내남경(海內南經)〉〕 바로 인어(人魚)이야기이다. 예쁜 여자 인어가 아니라, 매우 못생긴 남자 인어인 게 아쉽긴 하지만……. 이 인어들이 흘리는 눈물이 곧장 진주로 변한다는 이야기로 발전해서는 꼭 보고 싶은 인어가 되었다. 또 너무나도 큰 귀를 두 손으로 붙들고 살아가는 섭이국(聶耳國) 사람들, 머리가 하나에 몸이 셋인 삼신국(三身國) 사람들, 입에서 불을 토해내는 염화국(厭火國) 사람들 등등……. 사람이 이럴진대 동·식물은 어떨까. 훨씬 더 기기묘묘(奇奇妙妙), 괴상망측(怪常罔測)한 세계가 《산해경》 속에서 펼쳐진다.

애초 이 책의 편집 목적은 다분히 실용적이었다. 흩어진 죽편(竹片)들을 모아 다시 유기적으로 편집하여 오늘날의 정리된 《산해경》을 만든 책임자는 한나라 황족인 유흠(劉歆)이었다. 유흠은 편집을 마치고 황제에게 이렇게 보고한다.

우(禹)는 구주(九州)를 나누어 토지에 따라 공물(貢物)을 정하고 익(益) 등은 사물의 좋고 나쁨을 유별하여 《산해경》을 지었습니다. …… 일찍이 무제(武帝) 때에 기이한 새가 헌상된 적이 있었는데 온갖 먹이를 주어도 먹으려 들지 않았습니다. 동방삭(東方朔)이 그것을 보고 그 새의 이름과 먹여야 할 먹이를 아뢰었는데 그의 말과 꼭 같았습니다. 동방삭에게 어떻게 알았는가를 물었더니 바로 《산해경》에서 나왔다는 것이었습니다. 2)

《산해경》은 변방의 특산물을 받고, 그 용도나 유지 보존을 위해 필요한 지식을 얻는다는 실용적인 이유가 처음의 편집 목적이었던 것이다. 아울러 변방을 다스리기 위한 유효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또한 중요한 목적이었으리라. 더하여 이 책은 뜻밖의 효과도 가져다주었다. 중국의 인민들에게 중국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고, 중국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느끼게 해주었음직하다. 감히 중국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말라고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깨달으니 얼마나 편리한 도구인가. 《산해경》이 본래 그림책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 교육효과는 훨씬 더 컸으리라 여겨진다. 이런 이유들이 이 책이 ‘경(經)’의 대우를 받으며, 관에 의해 편집되고 출간되는 주요한 이유는 아니었을까.

이런 점은 현대에 와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열강의 제국주의 팽창정책이 고조될 때, 식민지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가 이루어진다. 동시에 파리나 런던 같은 주요 도시에는 만국박람회가 잇따라 열리며, 그 자리에 세계 오지의 원주민들이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전시되었다. 이 기묘함과 괴기스러움(?)은 밖으로는 낯선 세계에 대한 공포와 백인으로서의 우월적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런 공포와 우월감은 제국주의 팽창정책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식민지 백성이었던 우리 민족도 마치 아프리카의 피그미족이나 호주의 원주민들처럼 우리 속에 갇혀 전시되고 있었다.

3. 비일상, 비정상

《산해경》의 기이함은 때로 일상에서 벗어나는 비상구였다. 마치 영화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처럼,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엘리스의 우물처럼 별천지행 티켓이었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저 먼 곳엔 기괴하고 이상한 것들이 산다. 그 비정상과 변태성은 공포와 동시에 강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하여 동양의 시인 묵객치고 《산해경》 속의 인물이나 장소를 언급하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정도이다.

초여름 초목은 마음껏 자라
집은 온통 수목으로 둘러쳐졌다
새들은 의탁하여 집을 짓고
나 또한 내 오두막이 좋다
밭도 다 갈았고 씨도 다 뿌렸으니
이제는 돌아와 책 읽기에 좋은 시간
궁벽한 시골은 수레바퀴 패인 번화한 거리와 많이 떨어져
번번이 벗들의 수레를 돌아가게 만든다
기쁜 마음으로 따르는 봄 술엔
내 텃밭의 푸성귀가 제격이다
가랑비 동쪽에서 오는데
좋은 바람이 함께 부네
《목천자전》은 대강 읽고
《산해경》 그림도 훑어본다
올려 보고 내려 보며 우주를 다 돌아보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 도연명, 〈독산해경〉

영화 《와호장룡》에 보면 수레 바퀴자국을 따라 홈이 파여 오직 그 홈으로만 수레가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이 시리즈 7회 ‘만 리 먼 장성, 잉어가 전해 준 편지’에 나오는 것처럼 차동궤(車同軌), 즉 수레바퀴 차축의 길이를 통일한 결과 그런 홈이 생기는 것이다. 깊이 파인 수레바퀴 자국이야말로 번화한 도회지의 상징이다. 도연명이 살던 시골길은 수레가 들어갈 만한 길도 나있지 않아서 찾아오는 친구도 드문 산골이었던 것. 그런 산골에서 세상 풍파 다 잊고 마음껏 환상 속에 젖어보는 거다.

《목천자전(穆天子傳)》은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서쪽으로 여행하여 서왕모(西王母)를 만나 사랑하고, 돌아오는 길에 성희(盛姬)라는 미인과 결혼했다가 그녀가 죽자 장례를 치러주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일종의 기행문이다. 그러고 보면 아마도 《목천자전》이 시인의 마음엔 더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산해경》에 나오는 서왕모는 호랑이 이빨에 표범 꼬리를 한 여자이니……. 하지만 도연명이 그리는 서왕모는 매우 아리따운 묘령의 여인이다.

옥당은 운무를 뚫고 높이 솟아 있고
서왕모는 묘령의 얼굴로 기쁘게 맞이하네
……
이 세상에서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오로지 술과 불로장생뿐이라네
- 도연명, 〈독산해경〉

아름다운 여인. 거기에 더하여 장생불사의 비법을 갖고 있는 여인. 이런 여인과 나누는 운우(雲雨)의 정이야말로 모든 남자들의 로망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꿈속에, 환상 속에, 머물며 즐기다가 가면 되는 인생 아닌가. 그렇게 책장을 넘기다가 또 도연명의 시선이 머문다.

▲ 형천, 황제에게 도전하였다가 목이 잘렸으나 젖꼭지를 눈으로 배꼽을 입으로 삼고 계속 싸웠다.
정위(精衛)는 작은 나뭇가지 물어다가
푸른 바다를 메우려들고
형천(刑天)은 방패와 도끼 휘두르니
맹렬한 의지는 참으로 그대로이다
죽어 만물과 하나가 되면 근심은 사라지고
죽어 사라지면 다시 후회할 일 없으리라
다만 옛날의 그 마음 품고 있을 뿐
좋은 시절을 어찌 기다리겠는가
- 도연명, 〈독산해경〉

정위는 본래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의 딸이었다. 동해를 여행하다가 파도에 휩쓸려 죽었는데, 새로 환생하여 자신을 죽게 한 동해를 메워 없애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서산(西山)으로 날아가 작은 나뭇가지와 돌멩이를 물고 다시 동해로 날아와서 떨어뜨리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형천은 염제의 신하였다. 황제(黃帝)가 염제를 몰아내고 중원을 장악하자, 황제에게 도전하였다가 머리가 잘렸다. 하지만 형천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젖꼭지를 눈으로 배꼽을 입으로 삼아 방패와 도끼를 들고 계속 싸웠다.

황제는 중국 문명의 창시자이며 수호신이다. 중원의 지배자이며 절대권력자이다. 그런 황제에게 도전한다는 것은 마치 작은 새 정위가 아주 작은 나뭇가지를 물어다가 동해바다를 메우려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말이 좋아 불굴의 의지이지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그럼에도 도연명은 이 작은 새 정위와 어리석은 형천에게 눈길이 머문다. 무엇이 그의 눈을 사로잡은 걸까.

4. 자유와 저항

공자는 노(魯)나라의 대사구(大司寇)에 오른 지 7일 만에 당시 노나라 대부로서 강력한 유력자이면서 진보적 사상가였던 소정묘(少正卯)를 주살하였다. 대사구는 오늘날의 검찰총장쯤에 해당하는 벼슬이다. 그런대 이 사건은 《논어》에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순자(荀子)》에는 소정묘를 사형시킨 이유를 제자들에게 설명하는 공자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

사람에게는 나쁜 것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 우선 도둑질은 그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첫째, 마음은 통달했으나 음험한 것이고〔心達而險〕, 둘째, 행위는 편벽되어 강고한 것이고〔行辟而堅〕, 셋째, 말은 그럴 듯한 거짓말을 하며 분변하길 좋아하는 것이고〔言僞而辨〕, 넷째, 생각은 추악하면서 박학하고, 다섯째, 추종하는 일이 잘못된 것임에도 좋게 포장하는 것〔順非以澤〕이다. 사람이 이 다섯 가지 중에 한 가지만 있어도 군자의 주살을 면키 어려운 것이거늘 소정묘는 다섯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자는 추종자들을 모아 무리를 짓고, 교활한 언변으로 사악함을 감춘 채 대중들을 현혹시키고, 억지로 옳은 것을 뒤집어 독립하려 할 여지가 충분한 자이다. 이런 자야말로 소인배들의 호걸이다. 이런 자는 죽이지 않을 수 없다.3)

번지르르한 언변으로 대중을 선동하여 독립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죽일 수밖에는 없다는 것인데, 결론은 체제를 따르지 않고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주살당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이다. 설마하니 공자님께서 이런 논리로 정말로 소정묘를 죽였을까?

그 주살여부는 실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소정묘 주살의 이유가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유포되어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다만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목이 잘릴 수도 있다고 한다면, 누가 허튼 생각인들 감히 꿀 수 있겠는가. 한무제(漢武帝)가 “일체의 사상을 모두 쫓아내고, 오직 유학만을 받든다[罷黜百家, 獨存儒術].”는 기치를 높이 내건 이래, 통치이념으로 유학에 도전장을 내민 사상은 없었다. 유학은 이후 동아시아인의 머리와 가슴을 온전히 지배하였다. 그리하여 형천처럼 감히 도전하는 자들은 사문난적(斯門亂賊)으로 몰려 주살되었다.

그런 체제에서 공자께서 괴·력·난·신을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후대에는 반드시 괴·력·난·신을 말하는 자는 주살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오직 공자님 말씀만 듣고, 공자님이 보라는 곳만 본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니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그럴수록 형천처럼 비록 머리가 잘려도 도끼와 방패를 들고 춤을 추는 자도 나온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은 정위가 작은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동해 바다 어딘가를 향해 날아가듯 환상의 세계로 날아간다. 그들은 공포를 안고, 애써 두려움을 물리치며 일탈의 자유를 맛보려 한다. 영화 《와호장룡》에서 옥대인의 딸 옥교룡(玉嬌龍)이 화려한 결혼을 뒤로 하고 마적단 두목 나소호(羅小虎)를 쫓아 황량한 사막으로 들어가듯, 그들은 금지의 땅에서 자유롭게 노닐고자 한다.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며, 보지 말라는 것을 굳이 엿보려 한다. 환상의 세계, 그곳은 자유와 저항이 숨어 있는 공간이었다.

주) ------
1) 이덕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5 〈세정석담(歲精惜譚)〉
2) 《산해경》, 정재서 역주, 민음사
3) 《순자(荀子)》 〈유좌(宥坐)〉

철학박사,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meastree@naver.com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