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7일 조계종 총무원장 직선제와 관련하여 불교계 언론을 접하고서 나는 적잖게 놀랐다. “중앙종회 총무원장 직선제 특별위원회(위원장 태관 스님)가 총무원장 직선제를 도입할 경우 선거인단을 ‘승랍 10년 이상, 법계 중덕ㆍ정덕’의 비구ㆍ비구니로 구성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보도 때문이다.



이는 조계종 전체 승려 1만2천여 명 중 8천여 명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수치이다. 만약 이대로만 된다면 조계종이 짧게는 자승 총무원장 체제 8년의 ‘창피함’에서 벗어나게 되고, 길게는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 창종부터 시작된, 종단 권력자 선출과 관련된 부정부패와 잡음을 한 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는 가장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특위의 발표는 기대 이상이다.

기존의 총무원장 선출은 전국 24개 교구에서 선출된 선거인단 각 10명씩 240명에 종회의원 81명을 더해 총 321명으로 구성된 간선제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선거제도에 의한 금품 제공과 이권 나눠먹기로 대표되는 갖가지 폐해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조계종의 구성원 개개인이 직접 경험한 체험사례부터 본인이 아니면 확인이 어려운 ‘카더라’ 통신에 이르기까지 수행자 집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보기엔 정말 남부끄럽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조계종에서 간선제의 폐해가 크고, 시대적 흐름이 직선제를 해야만 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우리 절집이 직선제를 수용할 능력이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나는 이미 지난 6월 말, ‘거짓의 시대, 만해를 생각한다’라는 글을 통해 “현재 종단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은 어떤 경우든 직선제를 수용하지 않는다. 여론에 밀려 선거인단을 확대하는 안을 내놔봤지만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마지못해 내민 카드가 직선제 특위라는 걸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물타기용이고 여론 호도용일 뿐이다.”라고 지적했었다.

그 글을 쓴 지 고작 달포가 지났을 뿐인데 상황이 얼마나 달라졌겠는가. 그간 “어려서 출가해 정화한다고 절 뺏으러 다니고, 은사스님 모시고 종단 정치하느라 중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고 고백했던 인물이 갑자기 배움이 구족(具足)해졌을 리도 없고, 처자식을 숨겨두고 해외로 돌아다니며 도박질하던 범계승, 범법승들이 개과천선(改過遷善) 할 리도 없고, 우리 절집의 수준이 갑자기 높아져 국민 평균 정도가 된 것도 아닐 것이므로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각 스님 파동에서 드러난 것처럼 불교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아주 식어버린 것도 아니므로 아직 절망을 말하기엔 이른 것 같다.

총무원장 직선제를 시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기득권자들이다. 기득권자는 종단 권력을 쥔 권승들을 말한다.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직선제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을 것이다. 돈과 이권으로 통제되지 않는 8천여 명의 유권자들에게 ‘종권(宗權)’을 넘겨줄 리가 없다는 말이다. 그들은 그럴듯한 말을 다 갖다 붙일 것이고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하여 방해할 것이다. 당장 직선제 특위가 해결해야 할 것으로는 이런 것들이 있다.

조계종의 <종헌> 제130조는 ‘종헌 개정안 제안은 총무원장 또는 중앙종회의원 재적 3분의 1 이상의 발의’와 ‘발의된 종헌 개정안은 중앙종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돼 있다. 종회의원 3분의 2 찬성은 제쳐두고 개정안을 발의하기 위해 필요한 재적 3분의 1인 27명의 서명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종회의원 3분의 2 이상이 ‘친자승’으로 분류되는 불교광장 소속이라는 점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너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사실도.

발의에 성공하고 종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되었다고 하더라도 ‘원로회의 재적 과반수의 찬성’이라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원로의원 스님 개개인의 정치적 판단 기준이나 결정 과정에 적잖이 의문을 가지고 있다. 아무튼 산 너머 산인데, 직선제 특위 스님들이 어떻게 잘 넘길지 걱정이다.

직선제 특위가 <종헌> 개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고 해서 다 끝난 건 아니다. <선거법>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법> 개정이 어떤 측면에서는 <종헌> 개정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조계종의 <선거법> 제13조는 피선거권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즉 총무원장 후보자 자격으로 ‘승랍 30년, 연령 50세, 법계 종사급 이상의 비구로서 △중앙종회의장, 호계원장, 교육원장, 포교원장 역임 △교구본사주지 4년 이상 재직 △중앙종무기관 부·실장급 이상 종무원 2년 이상 재직 △중앙종회의원 6년 이상 재직 △각급 종정기관 위원장 역임’을 꼽고 있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이 대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선거법>은 총무원장 선거가 ‘그들만의 리그’라는 사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지난 제34대 총무원장 선거 당시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이 총무원장에 뜻이 있었던 것 같다. 그걸 알아차린 권승들은 재빠르게 “불교신문 사장은 중앙종무기관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함으로써 출마의 길을 막아버렸다. 이 일에 총대를 맨 사람은 당시 조계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었다. 아무리 수행을 잘하는 스님도, 다양한 경험과 풍부한 학식을 갖추고 있는 스님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도 이 <선거법> 아래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 판도 바꿔야 한다.

이렇듯 <종헌> 개정과 원로회의 인준, <선거법> 개정, 어느 하나도 만만한 게 없을 것이다.

직선제 특위 스님들에게 바란다. 중앙종회에서 직선제 특위 위원장 선정 과정에서 아무도 맡으려는 사람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특위가 구색 맞추기 아니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에 앞서 100인 대중공사가 총무원장 선출제도와 관련하여 지난 4월 일곱 번의 지역대중공사를 개최하여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총무원장 직선제’가 60.7%의 지지를 얻었는데도 중앙종회 총무원장선출제도혁신특별위원회에 제대로 된 요구조차 하지 않았고, 이에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어쩔 수 없이 만든 것이 직선제 특위라고 사부대중은 믿는다. 특위가 탄생부터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 사실 아닌가. 앞서 인용한 내 글도 그런 시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렇게 탄생한 특위가 외부 위원 2명 중 한 명을, 그가 보낸 문자를 문제 삼아 해촉시켜 버렸다. 그 문자라고 하는 게 별것도 아니었다. 문자를 보면 “저는 스님께서 총무원장 직선제 특위에 참여하신 것이 뜻밖이라고 생각됩니다. 스님께서도 자의로 참여하신 것인지요?”라고 묻고 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관심사를 확인하려 했을 뿐이다. 그가, 절집 표현으로 다소 머트러운 점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쫓아내버렸으니 특위가 진짜로 직선제를 이루어내려는 의지가 있는 스님들이 모인 것인가라는 의혹은 더욱더 짙어져만 가는 것이다. 이러한 의혹을 없애기 위해 위원장 이하 구성원들은 뭔가를 보여주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자승 스님의 ‘재집권 쇼’에 들러리선 게 아니라는 걸 입증해야 한다.

어떤 스님은 내게 “종회에서 직선제를 논의하는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진 것만으로도 역사에 기록될 것이고, 그 만큼 발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건 너무 기대치를 낮춘 것이다. 나는 한국불교의 미래가 직선제에 달려 있다고 단언한다. 특위가 그 시작이야 어떻든 어렵게 만들어졌으니 반드시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직선제 특위는 안팎으로 이런저런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안으로는 특위 내의 직선제에 대한 순수성과 관철의지를 지켜야 하고, 밖으로는 권승들의 집요한 방해를 이겨내야 한다. 종도 대다수가 참여하는 직선제를 기필코 관철시켜 상위 1%만의 잔치를 끝내고 깨끗하고 여법한 총무원장을 뽑아야 한다. 그런 총무원장이라야만 철옹성과 같은 부패의 카르텔을 깰 수 있고, 사부대중은 비로소 한국불교의 미래를 말할 수 있다.

“물타기용이고 여론 호도용일 뿐”이라고 비판했던 내 말이 틀려도 좋으니 직선제 특위가 조계종 종도들을 절망의 늪에서 건져내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바란다.

-본지 편집인 · 재단법인 선학원 교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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