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혹독했다. 압록강이 얼기가 무섭게 쳐들어온 청(淸)나라 군대는 말 그대로 파죽지세였다. 그들은 정묘년(1627, 인조5년)의 실수를 거울삼아 주도면밀하게 움직였다. 인조는 미처 강화도 뱃길에 오르지도 못하고 허둥지둥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정묘호란의 치욕은 아무런 교훈이 되지 못했다. 그들은 그냥 무능했다. 입으로는 못하는 게 없으면서 실제로는 하는 게 없었다. 그저 당파의 이익이나 좇고 이미 다 죽은 명(明)나라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죽어나가는 것은 민초들이었다. 길에는 굶어 죽고 얼어 죽은 시체들이
즐비하였다.
편양언기(鞭羊彦機, 1581~1645)는 답답한 심사를 애써 누르며 오늘도 나설 채비를 하였다. 어디든 발 닿는 곳엔 자비의 손길을 기다리는 백성이 반드시 있을 터였다. 문을 나서려는데 왕초가 가쁜 숨을 쉬며 올라왔다. 거지들의 신망이 높은 친구였다. 뭔가 새로운 소식을 갖고 왔음에 틀림없으렷다.

“대사님! 동주(東州)영감이 유배온답니다. 철성(鐵城)으로요.”

묘향산은 조선과 중국의 사신들이 오고가는 길목에 있었다. 언기가 스스로 원했던 바는 아니지만 굶주린 거지들을 돌보다보니 그들로부터 누구보다도 빠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산중 수도승이 무슨 정보가 필요하랴만, 이 또한 중생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방편이기도 했다.
동주옹은 이조참판을 지낸 이민구이다. 세 번의 장원급제에 최연소 관찰사를 지낸 분. 무엇보다 지봉(芝峰) 이수광(李睟光, 1563~1628) 선생의 아들 아니던가. 지봉 선생, 그 분이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도 조선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그분의 해박한 지식을 어찌하여 활용하지 못하고, 그분의 고결한 성품을 어찌 본받지 못하였는지......언기는 괜히 씁쓸해졌다. 동주선생은 부친보다 더 좋은 머리로 부친이 평소 모아둔 엄청난 책을 일찌감치 독파한 사람이 아니던가. 명석한 두뇌, 박학다식, 왕족......일순 스쳐가는 모습들 또한 망상이다 싶어서 언기는 고개를 저었다. 몇 순이 지나고 언기는 시자를 불렀다.

“너는 지금 철성에 가서 동주옹을 뵙고 오너라. 여기 약재와 산채 몇 가지를 쌓았으니 잘 갔다 드리고 오너라.”

철성은 영변(寧邊)의 철옹성(鐵甕城)이다. 험준한 약산(藥山)을 이용하여 지은 성벽이 가히 철옹성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군사적 효용성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고려말 원(元)나라가 쳐들어올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청나라 기마병은 휙 지나가고 말았다. 이제는 죄인 유배지로나 쓰이는 셈이다.
동주옹은 참담했다. 한 때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하던 군사전략가로, 그리고 명나라의 사신을 영접하던 외교전문가로, 이곳 서북지역 곳곳에 자취를 남겼는데......이제 죄인의 몸이 되어 이곳에 유배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따지고 보면 내 잘못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입이 있다 해서 할 말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을씨년스런 철옹성의 분위기가 그대로 동주옹의 마음 같았다. 들리는 소식으론 형님이 좌의정에 오르셨다고 한다. 그래서 조만간 해배될 것이라고 하는데......동주옹은 왠지 모를 불안이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던 참에 심부름하는 아이가 왠 사미승이 찾아왔음을 알린다.

“그래 그대 스승이 편양당 언기대사라고? 잘 알았네. 보내주신 성의는 고맙다고 전해주고 한 번 뵙기를 바란다고도 전해주게나.”

그리고 동주옹은 단숨에 시 한 수를 지었다. 일필휘지(一筆揮之). 한번 붓을 잡으면 삼협(三峽)의 물결이 휩쓸어 내려가듯, 거칠 게 없는 시재(詩才)였다. 하지만 동주옹은 적이 감상을 억누르며 가볍게 시 한 수를 지어 사미에게 주었다.

한 해 내내 바리때는 구름산에 머물고   經年缾鉢住雲山
긴 여름 선방엔 일마다 한가롭네            長夏禪扉事事閒
돌길은 다만 흐르는 물 따라 돌아가고  巖逕只隨流水轉
사미는 바로 저녁 해 두르며 돌아가네  沙彌正帶夕陽還
- 언기 대사가 안부를 물은 절구에 답하다[酬彥機師寄問絶句]

동주옹의 답시를 받은 언기의 입가에 얇은 미소가 떠올랐다. 과연 시재가 남달랐다. 소문이 과언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한 점.

아침에 강가에서 노닐고 저녁엔 청산                    朝遊江上暮靑山
나갔다 들어오며 발 닿는 곳마다 한가롭구나      舒卷從來着處閑
만약 가을바람 불어와 보내준다면                         若使秋風吹送去
또한 날아가는 기러기 따라 철성에 돌아가리라 又隨征雁鐵城還
- 이동주에 차운하다[次李東州]

병자호란이 끝난 그 해, 두 분은 이렇게 만났다. 여러모로 어렵고 힘든 시절, 두 분이 주고받은 시는 참으로 한가롭다. 그 한가함은 어디에서 오는 건지......우리 같은 범인은 헤아리기 쉽지 않다.
이후 두 분의 인연은 매우 깊어졌다. 《편양당집》 <서문>에서 동주 선생은 언기 대사와의 인연이 매우 크고, 불문에서 맺은 결의 또한 매우 깊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두 분은 심한 논쟁을 벌였던 일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기까지이다. 정말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더 고증하지 못하고 있다.
두 분이 죽고 500여년이 흘러, 신분적 굴레가 없는 시대에 태어난 한 운 좋은 사내가 또한 두 분과 인연이 되었다. 그래서 이러 저리 그 행적을 찾아보지만 여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 더운 여름날, 두 분 사이에 오고갔던 자취를 더듬어 가다 보니, 어느덧 풀벌레 소리가 들릴 듯하다. 
(연재 계속 이어집니다.)

-철학박사 ·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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