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존재하는 온갖 물상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말(言)을 한다. 물론 동물도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신호가 있고, 침팬지나 돌고래 같은 동물은 수십 개의 단어로 의사소통한다는 학설도 있지만, 사람처럼 다양하고 자유롭게 생각을 주고받는 동물은 없다. 인간이 지금과 같은 뛰어난 문명과 문화를 이룬 것도 말(言)과
글(文) 때문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말은 뜻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 같은 말이라도 화자와 청자,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되어 깊은 감동을 받기도 하고 심각한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구시화문(口是禍門), 즉 입이 모든 재앙의 근원이란 말도 그래서 생겨난 것이다. “말 한 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는 우리 속담을 뒤집으면, “말 한 마디 잘못하면 평생 원수가 된다”로 바꿀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말과 글 때문에 이만한 문명과 문화를 이뤄왔지만, 말을 잘못하면 엄청난 갈등과 환난을 유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고위공직자의 ‘막말’이 언론에 공개되어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교육부의 고위간부가 언론사 기자와의 술자리에서 “민중은 개, 돼지”라 하여 온국민의 원성을 사더니, 어느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도의원을 “쓰레기”로 비유하여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이 ‘친일파’라며 “천황폐화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이른바 사회지도층에 속한 이들의 망언을 들자면 끝이 없거니와, 이들의 공통점은 일류대학을 나와 고시에 패스한 최고엘리트란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오직 점수와 성적으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정량주의의 혜택으로 자기 분야에서 승승장구했기 때문에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우습게 여기고 깔보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품성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사람을 평가할 때 정량평가보다 정성평가를 더 중요하게 여겼지만, 요즘은 어떤 조건이나 기준도 정량평가의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게 바뀌었다. 정성평가의 요건이나 기준이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고, 일부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것을 악용한 사례도 있었기 때문에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정량평가 기준을 상대적으로 높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집 태우는 격”이 된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했다. 모든 인사평가에서 정량적 기준만 우대하다보니, 우리는 어떻게든 “좋은 점수, 높은 점수”만 받으면 그만이란 그릇된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검사장이란 신분을 이용하여 엄청난 부당이익을 얻은 이나, 전관예우란 관행을 악용하여 역시 옳지 못한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한 이들은 한결같이 최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통과한 ‘점수와 성적의 고수’들이다.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오직 고시공부에만 매달린 그들에게 자기보다 못한 이를 가엾게 여기거나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을 갖기를 바라는 것은 애초부터 무망한 일인지 모른다.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주고받은 농담은 현명한 화법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무학은 자신을 “돼지같다”고 놀린 태조에게 “전하는 부처님 같다”고 대꾸한 뒤, “돼지 눈에는 모두가 돼지처럼 보이고, 부처 눈에는 모든 사물이 부처처럼 보이는 법”이라 했다는 것이다. 민중을 개, 돼지로 비하하고, 도의원을 쓰레기라 비유한 이들은 무학의 논리대로라면 그들 자신이 개, 돼지,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불가에서는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를 구업(口業)이라 하는데, 함부로 혀를 놀리다 이제까지 쌓아온 명성과 재위, 재산을 잃고 패가망신하는 이들을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동국대 교수 · 문학평론가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