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이기주의’란 다른 지역의 이익은 차치하고 오직 내가 사는 지역의 이익이나 행복만을 추구하려는 태도나 입장을 말한다. 지역 이기주의는 대상의 성질이나 수용자의 태도에 따라 몇 가지 이름으로 세분화되기도 한다. 내 지역에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님비(NIMBY ; Not In My Back Yard), 수익성 있는 사업을 내 지역에 유치해달라는 핌피(PIMFY ; Please In My Front Yard), 어디에든 아무 것도 지어서는 안 된다는 바나나(BANANA ; Build Absolutely Nothing Anywhere Near Anybody) 현상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정부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즉 사드(THAAD ;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배치 발표가 임박하자,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된 양산 천성산 주위 사찰들이 소란해졌다. 영축총림 통도사는 즉각 “불교성지 내의 사드배치는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인근의 내원사, 원효암 등의 절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사드 배치 반대 목소리를 냈다. 양산 불교계가 ‘사드 천성산 배치 반대 산신제’를 봉행한 13일, 한미 군 당국이 사드 배치 지역을 발표했다. 경북 성주였다.

이번 결정이 사회적 합의가 아닌 지목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사드 배치는 러시안룰렛과 다를 바 없다. 방아쇠를 당기는 건 정부고, 후보지들은 눈을 질끈 감으면서 ‘나만은 아니길’ 기도하는 것이다. 전쟁 억제, 혹은 도발, 누군가는 괴담이라 칭하는 전자파 문제의 사실관계보다 더욱 명징한 것은 정부의 일방적인 통보와, 그 가려진 단계들 속에서 완전히 배제됐다는 무력감이다.

내 뒷마당에는 절대 안 된다던 성주 지역민들은 이제, 사드 배치 자체를 철회해야 하며 대한민국 어느 지역에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가 들어서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사드라는 이름의 고통이 내 지역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어느 국민에게도 강제로 쥐어져서는 안 된다는 인식의 전환이 일견 놀라울 정도다.

반면 수구 언론과 세력들은 성주의 새로운 수식어로 ‘님비’를 내세우며 고립시키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몽골에 간 대통령 대신 성주를 찾은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달걀을 던진 것도, 평화를 상징하는 녹색 끈으로 참외 박스를 포장하는 것도, 학생들이 촛불행진을 하는 것도 지역 이기주의의 발로이고 자기본위적 편향이라고 말이다.

시민사회단체와 천주교, 개신교 등의 종교계가 전쟁의 위기를 고조시킨다며 사드 배치 반대하고 나섰지만, 이 모습들 역시 그들의 프레임 안에서는 지역 이기주의의 하나인 바나나 현상, 또는 불순한 외부세력의 선동으로 비춰질지 모르겠다.

‘헬조선’과 ‘지옥불반도’가 더 이상 우스개 농담이 아니게 됐다는 공포감이 엄습한다. 온 나라가 사드 배치 찬성과 반대로, 내 지역과 네 지역의 공방으로, 성주와 성주 아닌 곳의 차이로 들썩이고 있는데, 러시안룰렛에서 살아남은 어느 곳들은 썩 여여(如如)해 뵌다.

불법(佛法)이라는 것이 동체대비(同體大悲)를, 요익중생(饒益衆生)을, 자리이타(自利利他)를 말하지만 않았어도, 그 곳들의 의뭉스러운 행보를 게슴츠레 흘겨보는 일은 없었을 텐데. 사소한 세속의 시시비비에 휘둘리지 않고 불철주야 용맹정진하는 수행자들이 있다는 것을 위안 삼아야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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