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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불교 부흥 이끈 정혜 화상 마지막 주석처”
호북성 선종사찰 순례 ② 노조사
2016년 07월 13일 (수) 21:07:15 이창윤 기자 budjn2009@gmail.com
   
▲ 호북성 황매현 노조사 전경.

자광선사 대중들이 정성껏 차린 음식으로 공양한 순례단은 자광선사 방장 정자(正慈) 스님의 환송을 받으며 황매현(黃梅縣)현으로 향했다.

흔히 호북성의 종교지형을 ‘동불서도(東佛西道)’라는 말로 표현한다. 호북성 동쪽은 불교가 번영했고, 서쪽은 도교가 흥했다는 뜻이다. 동쪽인 황석시(黃石市) 황매현에는 사조 도신 스님이 주석한 사조사와, 오조 홍인 스님이 주석하고 육조 혜능 대사가 의발을 전수 받은 오조사가 있고, 서쪽 십언시(十偃市)에는 도교 무당파의 본거지 무당산(武當山)이 있다.

쭉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린 버스는 두 시간여 만에 황매현에 들어섰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노조사까지 거리는 33km. 무한과 황석시에서 호북성 민종위 관계자들이 순례단을 맞이했던 것처럼 황매현에서도 이곳 민종위 관계자들이 노조사까지 길을 앞장섰다.

황매현 시가지를 벗어난 버스는 다시 콘크리트로 포장된 시골길을 내달렸다. 사조사로 향하는 도로는 험했다. 며칠 전 내린 비로 도로 곳곳은 유실되거나 패여 있었고, 고갯길은 구절양장(九折羊腸), 혹은 아흔아홉 구비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좁고 급했다. 험한 산길을 오르면서도 목적지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문득 구도자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려고 삭발염의의 길을 선택한 이는 없을 것이다. 수행의 길이 힘들고 고되어도, 나고 병들고 죽는 일대사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 사문의 길로 들어선 게 아니던가. 수행자들이 가야할 길은 평탄하기만 한 고속도로가 아니라 이처럼 험하고 외로운 길일 터이다. 때로는 절망에 좌절하고, 때로는 성취에 기뻐하며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수행자에게 구도의 길은 둘러갈 길이 아니라 힘듦을 마음의 채찍으로 삼고, 정진의 디딤돌로 삼아 나아가야 도반이 아닌가.

천 년 장수(長壽) 보장 화상 창건

   
▲ 노조사 선당(禪堂). 묵언 수행하라는 뜻의 ‘선당지어(禪堂止語)’가 곳곳에 붙어 있다.
40여 분 남짓 고갯길을 오르니 심산유곡이라는 사실이 믿기 않게 제법 큰 호수가 순례객을 맞이 했다. 나보원(挪步園) 관광지다. 이곳에서 다시 5분 남짓 달리니 인공호수를 품에 안은 노조사(老祖寺)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40대 젊은 방장 명기(明基) 스님이 ‘육조고찰(六朝古刹)’ 편액이 걸려있는 산문에서 대중들과 함께 순례단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자운산 연화봉 아래에 자리한 노조사는 중국 육조(六朝) 중 하나인 동진(東晋) 태화(太和) 연간(365~371)에 창건된 사찰이다. 옛 이름은 자운사(紫云寺)이다.

노조사를 창건한 이는 보장(寶掌) 스님이다. 스님은 중인도 사람이다. 사중에 전하는 전설에 따르면 스님은 동주 위열왕 12년(기원전 414) 중국에 들어와 당 고종 현경 12년(657)년에 입적했다 한다. 스님을 천세 보장(千歲 寶掌), 또는 보장 천세(寶掌 千歲) 화상으로 부르는 것은 1,072년 동안 장수했기 때문이다. 보장(寶掌)이라는 스님의 법명 또한 유래가 흥미롭다. 스님은 왼쪽 손을 꼭 쥔 채 태어났는데, 7살 때 출가하자 손이 비로소 펴졌다 한다.

스님은 음식을 먹지 않고 날마다 《반야경(般若經)》 등 천여 권을 읽었다고 한다. 문수보살 상주처인 오대산과 여산(廬山)을 참방하고 돌아온 스님은 중국에 온 달마 대사를 만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스님은 당 태종 정관 15년(641) 이후 보엄사(寶嚴寺)에 주석했는데, 낭(朗) 선사와 깊이 교류했다고 한다. 보장 선사는 영조사(永祚寺)를 창건하기도 했는데, 이때가 수 문제 개황 17년(597) 또는, 정관 15년(641)이라고 한다.

보장 선사가 노조사를 창건한 분이라면 정혜(淨慧, 1933~2013) 스님은 수많은 전란으로 폐사되다시피 한 노조사를 새롭게 일으킨 분이다. 스님은 찾아오는 이 없던 노조사를 2005년 복원했다. 순례단을 맞이한 노조사 방장 명기 스님도 정혜 스님의 상좌다.

‘생활선’ 주창·인재 양성 헌신

   
▲ 개산당에 모셔진 정혜 스님의 등신상.
정혜 스님은 현대 중국불교를 있게 한 큰 기둥이다. 문화혁명으로 파괴될 대로 파괴된 중국불교가 부흥과 발전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던 데는 정혜 스님의 역할이 컸다. 중국불교협회 부회장을 역임한 스님은 조주 스님이 주석한 백림선사, 승찬 스님과 도신, 홍인 스님이 주석한 삼조사와 사조사, 오조사를 복원했다. 정혜 스님은 말년에 이곳 노조사에 주석했다고 한다.

정혜 스님은 중국 근대 고승인 허운(虛雲, 1840~1959) 스님의 제자이다. 허운 스님은 19살에 출가하여 56살에 깨달은 뒤 120살에 입적할 때까지 전쟁과 혁명으로 가득한 환란 속에서도 선(禪) 중흥과 불교전통 회복, 중생구제를 위해 노력했다. 특히 조동종, 임제종, 운문종, 법안종, 위앙종 등 중국 선종의 오가(五家) 법맥을 이은 선사이자 경전을 손에서 놓지 않은 강사로도 유명했다.

14살 때 무한 삼불사(三佛寺)에서 출가한 정혜 스님은 18살(1951년) 때 운문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정식 출가했다. 스님은 허운 화상의 법맥을 이었을 뿐만 아니라 태허 대사가 주창한 ‘인간불교’ 이념을 계승하기도 했다.

정혜 스님의 삶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1962년 문화혁명이 시작되면서 스님은 타의로 승단을 떠나야 했다. 북경, 광동성, 호북성 등지에서 혹독한 노동으로 사상개조를 당해야 했던 스님이 다시 승단으로 돌아온 때는 문화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 조치가 단행된 1979년의 일이다.

혹독한 시련을 겪은 탓일까. 중국불교의 몰락을 몸소 보고 겪은 스님은 이후 중국불교를 되살리는데 평생을 바쳤다. 스님은 1988년 조주 스님이 주석한 하북성 백림선사 주지로 부임해 절을 중창하고, 중국 선 수행의 중심사찰로 가꿨다.

   
▲ 산문에 세워진 ‘생활선’ 입석.
스님은 또 ‘생활선’ 이념을 확립해 ‘생활 속에서의 수행, 수행 속에서의 생활’을 주창하며 선 대중화에도 힘썼다. 특히 대학생을 대상으로 매년 개최한 ‘생활선 여름캠프’는 중국불교를 떠받칠 인재를 양성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현대 중국불교가 부흥할 기틀을 다진 정혜 스님은 2003년 황매현으로 거처를 옮겨사조사, 노조사, 옥천사 등을 중건하고, 2010년부터 매년 하북선문화논단과 황매선문화고봉논단이라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해 황매현과 하북성을 중국 불학 연구의 중심지로 가꿨다.

정혜 스님의 자취는 노조사 곳곳에 남아있다. 산문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참배자를 맞이하는 것이 ‘생활선’의 종지를 새긴 입석이다. 개산당(開山堂)에는 정혜 스님의 등신상이 모셔져 있다. 절을 창건한 이는 보장 스님이지만 도량을 30명 남짓한 납자들이 수행하는 실참도량으로 변모시키고 산문을 형성한 것은 정혜 스님이라는 뜻이 담긴 것은 아닌가 싶었다.

정혜 스님이 중건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도량은 옛 자취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절도 번듯하고 언뜻 화려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절 곳곳에 숨겨진 정혜 스님의 자취는 중국불교의 부흥을 보는 것 같아 환희롭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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