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경》에서는 대열반을 얻는 열 가지 공덕을 밝히고 있다.

보살이 대열반에 들어가는 열 번째 공덕은 이 경을 믿고 공경하여 삼십칠조도법을 닦으면 상(常)·락(樂)·아(我)·정(淨)에 들어가고, 중생을 위해 분별하여 설할 때 이 경을 믿고 공경하는 자는 불성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경의 열 번째 공덕은 《대열반경》 법문에 대해 믿고 공경하는 덕을 강조하고 있다.

《열반경》이 나오기 전까지 부처님 가르침에서는 일체법은 무상하고 괴롭고 무아이고 부정하다고 하였다. 또한 부처님은 이러한 무상하고 무아이고 괴로운 세상인 생·로·병·사의 윤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성문승·연각승·보살승의 삼승법을 설하였다. 그런데 이 경에 오니 부처님은 영원하고 즐겁고 참된 내가 있고 청정하다 하고, 일불승의 불성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대열반경》의 법문에 대하여 미혹에 빠진 사람들은 부처님께서도 결국 열반에 드셨는데 이 경에서는 부처님께서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여 열반에 들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 경은 십이부경 중에 들지 않으며, 이는 혹시 마군의 말이거나 부처님의 말이 아닌 외도의 교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대열반경》 열 번째 공덕은 중생들을 위하여 대열반을 분별하여 설할 때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과 벽지불과 보살들이 이 법을 믿어 공경하는 이는 모두 대열반에 들어갈 수 있거니와 만약 믿지 않는 이는 생사에서 바퀴 돌듯이 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믿고 공경하지 않는 자인가.

“선남자여, 내가 열반한 뒤에 어떤 성문 제자가 어리석어서 계율을 파하고 다투기를 좋아하며, 십이부경을 버리고 여러 가지 외도의 경전을 읽고 외우며 글을 짓고 글씨 쓰며 모든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받아 두면서 부처님이 허락하였다고 할 것이다. 이런 사람은 전단을 가지고 보통 나무로 바꾸고, 금을 놋쇠로 바꾸며, 은을 납으로 바꾸고, 비단을 삼베로 바꾸며, 감로를 독약으로 바꾸는 것이니라.”

경에서는 이와 같이 《대열반경》을 믿지 않고 공경하지 않는 자는 방종하게 행하여 계율을 지키지 않고, 항상 승단의 화합을 깨뜨리는 분쟁을 일삼고, 대승경전을 두고도 읽지 않으면서 외도의 경전에 빠져서 읽고 쓰면서 이런 일을 부처님이 허락하였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자를 경에서는 다섯 부류로 나누고 있다.

첫째, 전단목을 가지고 보통나무로 바꾸는 자이다. 이런 자는 전단목 같이 귀중한 향목에 대해서 그 가치를 모르고 보통나무들처럼 한낱 땔감으로 쓰는 사람이다. 곧 계를 철저히 지키면 가난하고 배가 고프며, 파계하여 음식을 구하면 배불리 먹는 것을 얼핏 보고는 계를 훼손하여 맛난 음식을 탐하는 자들이다. 계가 무너지면 정·혜가 생기지 않듯이 불법의 귀중한 가르침을 바로 알아보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취하여 정작 큰 대열반법을 망실함을 가리킨다.

둘째, 금을 놋쇠로 바꾸는 자이다. 놋쇠는 빛·소리·향기·맛·감촉에 비유하고, 금은 계율에 비유한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육근에서 보이는 것, 들리는 것, 향기, 맛, 감촉 등에 집착하여 오욕락을 취하여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은 생각을 내어 몸으로 행하고 입으로 행하고 뜻으로 행하고 선업과 악업을 지으니 생사의 과보를 받게 된다. 그러나 훌륭한 보살은 이러한 대상에 대하여 항상 스스로 삼가고 부처님의 계율을 잘 지키니 결코 금을 놋쇠로 바꾸는 일이 없다.

셋째, 은을 납으로 바꾸는 자이다. 은(銀)은 열 가지 선한 일[十善]에 비유하고 납은 열 가지 나쁜 일[十惡]에 비유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탐내고 집착하여 몸으로 세 가지 악업을 지으니 탐욕으로 인하여 살생하고, 도둑질하고, 삿된 음행을 한다. 또 입으로 네 가지 악업을 지으니 허망한 말을 하고, 꾸미는 말을 하고, 두 말하고[兩舌], 욕을 하여 악업을 늘린다. 또한 뜻으로 세 가지 업을 지으니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은 생각을 내어 온갖 좋지 못한 일을 행하게 한다. 이러한 악업은 선업이 자라지 못하게 되니 악한 결과로 인하여 그 괴로움의 보(報) 받음이 있게 된다. 결국 십선업을 십악업으로 바꾸는 것이 된다. 부처님의 계율은 이와 같이 악이 생기지 않게 하고 선이 생기게 하며, 이미 생긴 악이 증장하지 못하게 하고 이미 생긴 선이 더욱 증장하게 하는데, 앞에서 금을 놋쇠로 바꾸었으니 여기에서는 은을 납으로 바꾸는 자가 있게 된 것이다.

넷째, 비단을 삼베로 바꾸는 자이다. 비단은 잘못에 대하여 스스로 부끄러워하고[懺] 남에게 부끄러워함[愧]을 말하고, 삼베는 스스로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남에게 부끄러워하지도 않음을 비유한다. 곧 비단을 삼베로 알고 바꾸는 어리석은 자는 자신이 잘못하고도 참괴할 줄 모르는 자인 셈이다. 경에서도 어리석은 중생을 구해주는 두 가지 착한 법이 있으니 첫째가 스스로 부끄러워함(참)이고, 둘째가 남에게 부끄러워함(괴)이라고 하였다. 보통 참이란 자기가 지은 죄업에 대해서 내심으로 부끄러워하는 것이요, 괴란 남에게 대하여 부끄러워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참을 닦아야 스스로 죄를 짓지 않고, 괴를 닦아야 남에게 죄를 짓지 않게 된다. 이러한 참괴를 모르는 자는 대열반을 모르거니와 경에서는 이런 자는 사람이기보다 축생(畜生)이라고 하셨다. 곧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자기가 지은 죄업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고 남에게 그 죄를 털어놓고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감로를 독약으로 바꾸는 자이다. 감로는 무루법을 말하고 독약은 세상의 이권이나 이익에 밝은 것을 비유한다. 곧 세상의 이양에 어두워 감로법을 잊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의 탐욕에 물들어서 이익을 쫓다가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악업을 짓거니와 진정한 불자라면 청정행을 닦아서 무루지혜로 감로법을 얻는다.

《열반경》의 다섯 가지 행은 곧 청정한 마음으로 계율을 잘 지켜서 청정행을 닦고, 고요한 마음으로 선정을 닦아서 밝은 지혜를 내어 대열반의 상·락·아·정에 들어가야 함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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