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그 때 문수보살(文殊菩薩)이 각수보살(覺首菩薩)1)에게 물으셨다. “불자야! 심성(心性)이 하나이거늘 어찌하여 여러 가지 차별이 있어, 좋은 곳[善趣]에 태어나기도 하고2) 나쁜 곳[惡趣]3)에 태어나기도 하며, 몸[諸根]이 온전하기도 하고, 온전하지 못하기도 하며, 태어날 때 동일하지 않아 혹은 단정하고 혹은 추하며, 고락이 같지 않아 업(業)이 마음을 알지 못하고, 마음이 업(業)을 알지 못하며, 수(受)4)가 보(報)를 알지 못하고, 보(報)가 수(受)를 알지 못하여, 인(因)이 연(緣)을 알지 못하고, 연(緣)이 인(因)을 알지 못하며, 지(智)5)가 경(境)6)을 알지 못하고, 경(境)이 지(智)를 알지 못하는가?”
각수보살(覺首菩薩)이 대답하시기를
“(문수)보살께서 지금 이 뜻을 물으시는 것은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시기 위함이시니, 저 또한 그 마음과 같아 답하겠으니 보살께서는 잘 들어주십시오. 모든 법(諸法)은 작용이 없고, 또한 체성(體性)이 없는 까닭에 모든 것이 각각 서로 알지 못합니다. 비유하자면 강물의 물이 소용돌이치며 급히 흘러가면서도 각각 서로 알지 못합니다. 제법(諸法)도 이와 같습니다. -화엄경(華嚴經)

79. 진리(法)에는 중생이 없으니, 중생의 더러움을 떠났기 때문이다. 진리[法]에는 내[我]가 없으니, 나의 더러움을 떠났기 때문이다. 진리는 수명(壽命)이 없으니, 생사를 떠났기 때문이다. 진리는 사람이 없으니, 전후의 끝[際]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진리는 늘 고요하니, 모든 상(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진리는 상(相)을 떠났으니, 대상[所緣]7)이 없기 때문이다. 진리는 이름이 없으니, 언어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진리는 말할 수 없으니, 분별[覺觀]8)을 떠났기 때문이다. 진리는 형상(形相)이 없으니, 허공과 같기 때문이다. 진리는 논쟁[戱論]9)이 없으니, 필경 공하기 때문이다. 진리는 아소(我所)가 없으니, 나와 대상[我所]10)을 떠났기 때문이다. 진리는 분별(分別)이 없으니 모든 식(識)을 떠났기 때문이다. 진리는 견줄 수 없으니, 상대(相對)가 없기 때문이다. 진리는 법성(法性)이 같아서 모든 법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진리는 좋고 싫어함[好醜]을 떠나며, 진리는 증가하고 감소하는 것이 없으며, 진리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떠나며, 진리는 높고 낮음이 없으며, 진리는 항상 머물러, 움직임이 없으며, 진리는 모든 관행(觀行)11)을 떠나 있다. -유마경(維摩經)

80. 세상의 모든 이치를 완전히 이해하면 거짓 이름[假名]이요, 실체가 없음[無實]을 알게 된다. 중생과 세계가 꿈과 같으며,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화엄경(華嚴經)

81. 일체법이 모두 진여(眞如)이니, 모든 부처님들의 경계도 또한 그러하며, 한 법(法)이라도 진여 가운데 생멸이 없다. 다만 중생이 망령되이 분별하여 부처도 계시고, 세계도 있으나 법성(法性)12)을 완전히 이해하면 부처도 없고, 세계도 없다. -화엄경(華嚴經)

82. 모든 존재의 성품[法性]은 항상 공적(空寂)하여 어느 하나라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없다. -화엄경(華嚴經)

-각주

1)각수보살(覺首菩薩): 보살 이름
2)선취(善趣, svarga-gati): 선한 업을 쌓은 결과로 가는 좋은 윤회의 길. 천계(天界), 인계(人界) 등을 말한다. 선처(善處), 선도(善道)등과 같은 말.
3)악취(惡趣, apāya): 악업(惡業)을 지은 과보로 가는 곳. 악도(惡道), 악취도(惡趣道), 악처(惡處)라고도 한다. 육취(六趣) 중 지옥, 아귀, 축생 등을 삼악취(三惡趣), 삼도(三途), 삼악도(三惡道) 등으로 부른다.
4)수(受): 업(業)의 과보를 받는 것.
5)지(智: 분별하는 능력, 주관(主觀)
6)경(境): 객관(客觀)의 대상, 현상.
7)소연(所緣, ālambana): 심식(心識)의 인식 대상. 능연(能緣)인 마음과 그 작용이 집착하는 대상,
8)각관(覺觀): 각(覺)이란 거친 분별, 관(觀)이란 미세한 분별.
9)희론(戱論): 무의미한 논쟁.
10)아소(我所): 아지소유(我之所有)의 준말, 나의 것 또는 그러한 관념. 자신 외의 모든 존재를 가리키며, 자신에게 속한다고 집착하는 생각이 근본이 된다. 자신의 것이므로 취하려는 탐욕이 일어나고, 취하지 못하면 화가 일어나는 등 삼독과 밀접하다.
11)관행(觀行): 주객의 모든 것을 법에 따라 관찰하여 실상에 이르는 수행법 .대표적인 것으로는 신수심법(身受心法)의 네 가지를 관찰하는 사념처관(四念處觀)을 비롯하여 모든 대상을 무상으로 관하는 무상관(無常觀) 등 다양한 관행이 있다.
12)법성(法性, dharma-dhātu): 제법의 진실한 체성(體性). 우주 일체의 현상이 갖추고 있는 진실하고 불변하는 본성. 진여(眞如)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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