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직업적으로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철학 연구의 재료거리를 주로 중국 지역에서 유행했던 인간들의 지성에서 채취한다. 중국의 지성에는 유교적 전통도 있고, 도교적 전통도 있고, 불교적 전통도 있지만,
나는 주로 불교 지성의 전통에서 내 철학의 재료거리를 채취한다. 기본적으로는 실증주의적 전통에 서 있으면서 방법은 언어분석과 논리비평이다. 그리하여 일체가 무자성임을 주장하는 공종(空宗)의 교학을 비판하기도 하고, 때로는 만법이 유식임을 주장하는 법상종(法相宗)의 이론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법계(法界)의 중중무진연기를 철학적으로 변증한다.

이런 나 자신의 철학 활동을 나는 ‘법성교학(法性敎學)’이라 이름 붙여, 사색도 하고, 독서도 하고, 글도 쓰고, 강의도 한다. 마침내 그것은 나의 실천이 되었다. 세상 비평도 이런 연장선에서 하고, 종교 비평도 역시 그렇다.

2.
사람들은 ‘세속을 벗어났다’ 또는 ‘속세를 벗어났다’라는 표현들을 하지만, 나는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제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면서 세상을 떠날 수는 없다. 부모 밑에서 태어나, 밥 먹고 옷 입고, 배우고 일하며, 배우자 만나 가정 꾸려 애 낳고 살면서 늙은 부모 모시다, 그러다 인연 따라 죽는다. 이것이 ‘일상’이다. 이 ‘일상’ 위에 ‘특별’도 있다. 방식에 차이는 있지만 생명체들은 모두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를 ‘일상’이라 했다. 다만 이런 인생살이를 ‘가족’ 공동체 속에서 하느냐, 아니면 ‘승가’ 공동체에서 하느냐의 차이는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출가(出家)’는 ‘가족’ 공동체를 벗어나 ‘승가’ 공동체로 들어간다는 말인데, 알고 보면 어느 공동체에 사나 사는 철학은 똑 같다. 다만 ‘승가’ 공동체의 경우는 ‘배우자 만나 가정 꾸려 애 낳고 살면서 늙은 부모 모시는 일’에 있어 그 방식이 다를 뿐이다. 배우자 대신 도반을 만나고, 부모 대신 은사나 법사 스님을 모시고, 애 낳아 기르는 대신 제자를 들여 기른다.

위에서 나는 ‘일상’이니 ‘특별’이니 운운했는데, 이것은 ‘가족’ 공동체나 ‘승가’ 공동체나 어디에도 있다. 요즈음 ‘1인 가족’도 있다. 스님들도 마찬가지로 ‘독살이’가 있으니, 이야말로 ‘1인 공동체’인 셈이다. 자녀 안 낳듯이 제자 안 두는 스님도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특별’이지만, 그렇다고 ‘특별’을 부도덕하다거나 비난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본인들의 가치관에 따라 또 형편에 따라 알아서 할 일이다. 그렇다고 ‘특별’이 ‘일상’이 될 수는 없다. ‘특별’과 ‘일상’이 공존하되, ‘일상’이 근본이다.

3.
‘가족’도 그렇고 ‘승가’도 그렇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다.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이 의식주(衣食住)이다. 그것을 위해 소위 ‘일’을 한다. 농경사회에 비유해서 말해보면, ‘밭[田]’을 일구어 ‘식량’을 마련한다. 승가의 일원들은 ‘복전(福田)’을 일구어 ‘복’을 거둔다. 그리하여 ‘가족’에 사는 사람과 ‘승가’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식량’과 ‘복’을 교환한다. ‘복전’에서의 ‘복’은 세상살이에 등불이 되는 부처님의 지혜이다.

공동체에 놀고먹는 사람이 많으면 그 공동체는 빈약해진다. ‘승가’의 구성원들이 복 짓는 일을 못하거나 ‘가족’의 구성원이 돈을 못 벌면 가난해진다. 어느 쪽이나 젊은 시절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살아가면서도 계속 배워야 한다. 적정한 구성원의 숫자를 유지해야 한다. 화합하고 사랑해야 한다. 물자를 아끼고 저축해야 한다. 역사의 안목이 있어야 한다. 가풍과 예의 범절을 익혀야 한다. 품위 있고 교양이 있어야 한다. 평화롭고 행복해야 한다. 어린 사람 보살피고 어른 공경해야 한다. 가치관이 분명하고 미래의 비전이 있어야 한다. 세상의 이치는 예나 제나, 마을에 사나 절에 사나 똑 같다.

작은 공동체가 모여서 큰 공동체를 이루는데, 그곳에 정치가 있게 마련이다. 《논어》에 정치의 핵심으로 ‘식량’, ‘공동체를 지키는 군대’, ‘지도부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를 논하는 자공과 공자의 대화가 있다. 셋 중에 하나를 놓아야 한다면 군대를 놓고, 또 놓아야 한다면 식량을 놓는다고 한다. 그러나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구성원의 신뢰라고 한다. ‘민무신(民無信)이면 불립(不立)’이다. 구성원의 신뢰를 저버리면 공동체는 존립하지 못한다. 조계종총무원 집행부는 ‘비구와 비구니에 의한 총무원장 직선 열망’을 저버렸다. 직선제의 옳고 그름, 불교적이냐 아니냐는 다음이다. 중요한 것은 신뢰이다.

-연세대 철학과 교수 ·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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