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영국, 2010)의 원제는 ‘또 다른 계절Another year’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제목인 ‘세상의 모든 계절’보다 훨씬 주제와 어울립니다. 사람 사이의 단절을 말하면서 ‘행복’이라는 헛된 환상을 현미경 속 풍경처럼 치밀하면서도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는 마이크 리 감독은 리얼리즘적 시선을 통해 사람 사이의 단절감을 주로 다뤄온 감독으로 영국의 하층민과 그들이 동경하는 중산층 사이의 거리감을 표현해왔습니다.

이번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도 이런 경향성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사회적 측면의 단절감 보다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하층민은 진짜 하층민일 수도 있지만 자신을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총칭하고, 중산층은 사람들이 꿈꾸는 행복에 대한 환상을 의미합니다.

대부분 사람이 추구하는 ‘행복’ 이라는 개념이 영화에서는 중산층의 삶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달콤한 꿀처럼 현혹하지만 결코 현실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제 ‘또 다른 해’는 새로운 봄이 와도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현실의 냉혹함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 프롤로그에서 불면증으로 고통 받고 있는 중년 여자는 상담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삶을 살고 싶어요.”
“그렇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요.”

그녀는 고개를 살짝 흔들면서 자조적으로 이 말을 내뱉었습니다. 우울하고 불안해 보이는 여자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실망감을 경험했고, 그리고 마침내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여전히 신기루와 같은 행복을 쫒아 다니면서 자신의 삶을 망가뜨립니다.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계절>에는 두 부류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톰과 제리 부부와 이 가족을 중심으로 한 주변 인물들입니다. 주변 인물에는, 메리(레슬리 맨빌)라는 젊지도 늙지도 않은 여성이 있습니다. 톰과 제리 가족이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다 소유한 사람들이라면 메리를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은 매우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프롤로그에서 병원을 찾아왔던 불면증을 가진 여자가 메리와 같은 부류에 속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메리는 불면증 여자와 달리 행복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고, 그래서 행복한 톰과 제리 가족에게 집착했습니다. 그들과 함께라면 언젠가 그들이 소유한 행복이 자기 것이 될 줄 알았던 것입니다.

톰과 제리 가족은 영국인이 꿈꾸는 행복한 중산층의 표본 같은 사람들입니다. 남편 톰(짐 브로드 벤트)은 지질학자라는 전문직을 갖고 있으며 집에 오면 언제나 앞치마를 두른 채 요리를 하고, 또 아내의 충고라면 무조건 수용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가장입니다. 그리고 아내 제리(러스 쉰) 역시 상담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현명하고 책임감 있는 여성입니다. 아들 조이 또한 변호사로 성공했으며, 주말이면 부모님을 찾아와 텃밭 일을 도와주는, 이름처럼 부모에게 기쁨이 되는 자식입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가족 간에 화목하고, 직접 기른 채소로 몸에 좋은 요리를 만들어 먹으면서 건강도 지키고, 불행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운 좋은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통해서 보면 톰과 제리 가족을 빼면 다들 불행했습니다. 다들 다른 삶을 꿈꿨습니다. 다른 도시로 가서 시작하면, 동생네 집으로 오면, 여자 친구를 사귀면, 하고 조건을 달지만 그 조건이 충족돼도 결코 톰과 제리 가족처럼 행복해지지는 않았습니다.

톰과 제리 가족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꿈꾸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 일종의 환상이라는 것이지요. 이 환상이 사람들에게서 현실과의 괴리감을 키우고, 불행한 느낌을 강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결론을 뒷받침하는 장면이 엔딩 장면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 마지막 장면은, 영화를 압도해버릴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톰과 제리네 집 커다란 식탁에서는 아들 조이를 비롯해 여자 친구 케이트, 그리고 메리와 톰의 형 로니가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항상 그런 것처럼 톰과 제리 가족은 완벽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톰과 제리가 결혼하기 전 7개월간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했던 얘기를 하고 있고, 예비 며느리 케이트는 특유의 유쾌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더욱 밝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메리에게로 카메라가 다가왔을 때, 마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처럼 섬뜩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카메라는 메리의 불안한 눈빛과 깊은 외로움, 절망감 등을 보여주었는데, 행복한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그녀의 상태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습니다. 한 식탁에 앉아있는데 누구는 너무 행복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들의 행복으로 오히려 불행해지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영화에서 메리가 이렇게 의기소침해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메리는 언제나 떠들썩한 수다로 분위기를 주도했었습니다. 그녀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녀는 자신을 행복한 제리 가족과 같은 부류라고 여겼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은 행복하지 않지만 언젠가 톰과 제리처럼 행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메리는 마침내 깨달은 것입니다. 그녀는 제리네 가족과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는 것을. 이 말은 결국 그녀가 그렇게 갈구했던 행복이 결코 자신의 현실이 될 수 없다는 걸 자각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상처받은 눈빛을 했던 것입니다. 불면증 여자가 진작 깨달았던, 삶은 결코 달라지지 않으며, 행복은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메리는 이제야 깨달은 것입니다.

메리는 지금까지 제리 가족을 친구로 여기면서 살아왔고, 또 이들 가족을 동경한 나머지 자기 나이도 잊고 이 집 아들 조이에게 추파를 보내면서 이들 가족의 일원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녀가 욕망했던 중상층의 행복한 삶에 대한 환상이 결국 그녀를 더 초라하고 외롭게 만든다는 것을. 결국 제리와 톰 가족으로 대변되는 중산층의 삶이라는 것은, 일종의 욕망의 중계자로서 하층민에게는 또 다른 덫인 것입니다. 또 다른 계절이 와도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은 이들 하층민에게 욕망의 중계자가 끼어있기 때문입니다.

감독은 ‘빨간 자동차’ 라는 소재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구체화했습니다. 메리는 차를 가지면 행복해질 줄 알았습니다. 차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메리는 그저 차를 갖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중고차를 구입했습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행복해했습니다. 차를 소유하면서 자유로워진 것 같고, 뭔가 완성된 느낌을 갖게 됐다며 들떴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차 유리를 깨고 장 본 걸 도둑질 해 갔고, 중고차는 자주 고장이 났고, 또 덜렁거리는 성격에 벌금을 수시로 물어야 했고, 이래저래 정신적 경제적 스트레스를 주었습니다.

차가 없었다면 이런 고통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결국 심각한 고장을 일으켜 폐차해야 했습니다. 샛집에 사는 처지에 거금을 들여 차를 구입했는데 차는 문제만 일으켰지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았습니다. 차를 소유하면 제리처럼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건 환상이었습니다. 환상은 결코 현실이 될 수 없었습니다. 마이크 리 감독은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에서 이 사실을 잔인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김은주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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