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상은 유식사상과 함께 통일신라의 불교학을 대표하는 사상이다. 화엄은 모든 존재의 상호연관성[法界緣起]과 더불어 부처와 중생의 동일성[本來成佛]을 주장하는데, 당(唐)나라 때 지엄(智儼, 602~668)이 이론적 기초를 다지고, 법장(法藏, 643~712)에 이르러 완성된다고 회자(膾炙)된다. 그러나 해동(신라) 화엄은 지엄 문하의 의상(義湘, 625∼702)에 의해서 대성된다.

주지하다시피 의상은 원효(元曉, 617~686)와 더불어 신라 삼국통일(676년)의 한 가운데 있다. 이러한 시대를 맞이하여 분열과 배타의 정신은 자신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었고, 성장기의 의상은 신라·고구려·백제 사이의 통일 전야의 그 극렬하고 빈번한 전쟁의 참상을 통해서, 그 드러냄을 자주 목격하게 되었을 것이다. 의상은 부정과 배제, 분리와 정복의 시대를 당하여, 포용과 공존, 화해와 상호 존중의 정신으로 포섭하고 뛰어넘으라는 시대정신을 포착하였다. 그리고 그 해법을 불교 화엄의 사상 속에서 확보하고 ‘통합(統合)’과 ‘화쟁(和諍)’으로 압축하여 온 몸으로 실천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원효와 더불어 의상은 고대 한국불교 사상사의 양 거봉(巨峰)이다.

화엄종 2조 지엄(智儼)의 문하에서 법장(法藏)과 함께 화엄 사상을 동문수학하고 계승한 의상은, 귀국 후 ‘해동화엄종’의 첫 장을 연다. 주지하듯이 스승 지엄은 의상에게는 의지(義持), 법장에게는 문지(文持)라는 호를 수여한다. 이것은 의상이 수행자적인 실천행에서, 법장이 학자적인 이론의 탐구에서 뛰어났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동의 의상과 중국의 법장은 화엄사상의 소화방식에서 각각 ‘실천적 성향’과 ‘이론적 성향’이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수학 당시부터 부각된 의상의 ‘실천적 자질과 성향’은 화엄가로서의 그의 전 생애를 일관하고 있다. 화엄사상을 치밀하고 정교한 이론으로 집대성하여 이론적으로 화엄을 완성시키는데 주력한 법장과는 달리, 의상은 화엄사상을 몸으로 실천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인다. 의상의 화엄사상은 그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서 그 요체(要諦)를 볼 수 있는데, 화엄의 도리를 7언 30구 210자의 짤막한 게송으로 압축시킨 후 간략하게 그 뜻을 풀어주고 있는 서술방식은 방대한 체계적 서술을 지향하는 법장과는 대조적이다.1)

제목에서 보듯이 의상은 《화엄일승법계도》에서 일승(一乘)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때 일승은 삼승(三乘)과의 관계에서 비로소 그 의미가 부각된다. 따라서 《화엄일승법계도》는 화엄사상을 일승의 맥락에서 밝히는 것, 다시 말해 화엄사상을 일승과 삼승의 관계에서 드러내는 것이다.2)

붓다는 ‘현실은 고(苦)다’라는 탐구에서 출발하여, 그 해결을 찾아서 수행하고, 그 결과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을 얻고,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불교를 창시하였다. 고(苦)란 세계가 자기가 뜻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수행이란 그 원인을 깊이 탐구해 가면서, 자기 밖의 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기보다는, 자기 안에 있는 것이 자기를 배반함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교정해 나가는 것을 함의한다. 즉 ‘잘못된 것을 바란다’는 것에 고(苦)의 본질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붓다의 가르침은 ‘고의 해탈’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다르게 말해서 고를 해체하는 수행과정이 중시된다는 것이고, ‘열반’ 혹은 ‘해탈’의 정체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중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3) 다시 말해서 열반의 모습이나 그것을 얻은 자가 누리는 것에 대해서는 그 존재와 내용을 대략적으로 확인해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사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뚜렷한 변화가 감지된다. 해탈의 경지를 적극적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해탈의 지평에 선 자의 눈에는 세계가 어떻게 비치는가를 이론적으로 기술해 보려고도 하는 경향이 점증했다. 수·당시대에 이르면 불교 연구가 꽃을 피우고 각 종파가 독립 대성한다. 또 우발적으로 전래된 여러 경전을 본래의 역사적 발전의 순서로 정리하고 체계를 세우기 위한 교판(敎判)도 성행하게 되어 교학연구는 더욱 진전하였다.4) 수·당시대에는 전대의 교학연구를 기초로 소의(所依)의 경론(經論)에 의한 종파가 확립되어 국민의 올바른 이해와 실천에 입각한 불교의 성립을 보았으며, 그 결과 이 시대는 ‘중국불교의 황금시대’가 되었다.

지엄이 이론적으로 체계화시키고 있는 중국 화엄의 일승사상은 이러한 대승적 변화의 정점에 있는 것이다. 초기불교의 언어들이 다분히 무아(無我)의 자각(自覺)이나 체득(體得)으로 유도하는 실천적 과정에 비중을 두고 있다면, 후기불교의 전개에서는 얼마나 철저하게 무아[空·眞如·一心·眞心]의 관점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경험하고 있는가를 수행의 맥락에서 문제 삼고자 하는 경향이 뿌리내리게 된다. 그리고 그 정점에 화엄이 있다.5)

이런 의미에서 《화엄경》은 사변적 유희에서 온 것이 아니라 붓다의 깨달음인 고도의 ‘자각적 체험’이 풍부하게 묘사된 것이다. 화엄은 사람과 관계없이 본래의 세계 그 자체를 묘사하고 있는 궁극적 가르침이다. 모든 세계가 주어진 그대로 이미 완전하다는 화엄의 세계관에서는 고통 받고 살아가는 현실의 인간도 그 순간 그 지점에서는 완전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번뇌와 보리의 대립이나 선과 악의 대립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부처의 시각이다. 다시 말해서 깨달은 자의 눈으로 이해되고 경험되는 연기적 세상을 정교한 이론체계로 수립하여 수행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이 화엄의 일승사상인 것이다.6)

의상과 나란히 지엄을 이은 법장은 유식을 자신의 화엄사상 체계 속에 융회시키고자 노력하며, 독자적인 삼성설(三性說)을 바탕으로 성상융회(性相融會)의 ‘사사무애(事事無碍)’ 세계를 전개시킴으로써 오교(五敎)와 십종(十宗)의 교판체계를 확립하여 화엄종을 완성시켰다.7) 법장이 화엄교학을 완성하기 전에 먼저 화엄의 정수를 《일승법계도》로 정리한 의상의 화엄사상은, 진제(眞諦) 계열의 유식설을 이어 지엄에 의해 새롭게 체계화된 사유구조를 계승하면서도 지론(地論) 교학도 일정하게 수용한 것이었다. 이러한 바탕 위에 의상은 자신의 독창적 관점에서 상징적인 반시(盤詩) 형식의 도인(圖印)에 화엄사상의 핵심적인 내용을 담아 일승법계의 연기 구조를 중도적 바탕에서 치밀한 구성으로 특색 있게 전개시켰다. 스승인 지엄보다 진전된 화엄사상의 전개를 드러내 보인 의상의 화엄사상은 그와 동문수학한 법장의 교학에 다대한 영향을 끼친다.8)

주) -----
1) 박태원, 《의상의 화엄사상》(울산대학교 출판부, 2005), pp.8~9.
2) 위의 책, p.11.
3) 이러한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전후의 맥락에 초점을 두고 읽기 바란다.
4) 교상판석(敎相判釋). 불교의 다양한 교설들을 여러 범주로 분류하고 종합하여 하나의 유기적인 체계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불교의 교판은 원시경전이 한역(漢譯)되어 전파되는 과정에서, 그 다양하고 때로는 모순되어 보이는 교설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불교의 참뜻을 파악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5) 박태원, 앞의 책, pp.48~49.
6) 전반적으로 볼 때, 화엄종이 본래적 완전성에 초점을 두고 전체를 통해 개체를 완성시키려 했다면, 천태종은 상호 의존적인 선악 대립의 동질성에 초점을 두고 국소적 국면을 돌파하여 완전성에 이르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화엄종의 입장에서 보면 천태종이 악의 현실성을 끌어들여 개체의 완전 자족성을 실현하려는 것이 자칫 방종과 독선으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고 보고, 애써 인간 마음의 순수성을 강조하여 그 위험을 피하고자 하였다. 화엄종이 천태종보다 더 널리 펴졌던 것은 화엄이 유학적 성선(性善)의 경향에 더 근접하기 때문이다. 자세한 것은 다음 책을 참고. <이효결 외, 《중국철학개론》(한국방송대 출판부, 1998), p.138.>
7) 법장은 소위 4법계를 세웠다. 이것은 법계를 현상과 본체의 양면으로 관찰하여 네 가지로 파악하는 화엄학의 관점이다. ⓐ 사법계(事法界)는 오로지 현상 자체에 대하여 본 것이다. 이것은 차별을 특색으로 한다. ⓑ 이법계(理法界)는 현상이 의지하는 본체에 대하여 본 것이다. 이것은 둘도 없고 차별도 없는 것을 특색으로 한다. ⓒ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는 이와 사 즉 현상과 본체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걸림돌도 없는 상호 관계 속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즉 현상이 비록 본체는 아니지만 본체로부터 생겨나고, 실상이 비록 현상의 하나는 아니지만 현상 위에 있는 그대로 나타난다. ⓓ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 즉 다시 한걸음 더 나아가 말하면 현상과 실상이 떨어지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하나하나의 현상 피차 간에도 동일한 진여에서 생겨난 것이므로 비록 차별을 드러내지만, 역시 피차가 융화 포섭한다.
8) 정병삼, 《의상 화엄사상 연구》(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p.248.

이덕진 | 창원문성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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