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절마다 사람마다 행복한 미소가 넘쳐난다. 웃음은 ‘행복 에너지’며 ‘행복 바이러스’다. 웃을 수 있다면 행복한 것이다. 또 웃는 사람 주위에는 사람이 모이게 되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 잔치가 벌어진다.

부처님이 48년간 전법하시면서 베풀어 놓으신 가르침을 불교에선 일대시교(一代時敎)라 표현한다. 이 일대시교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중국 당나라 말기의 대선사 운문화상은 때와 장소에 따라 대기설법(對機說法)을 한 것이므로 “다 좋다”고 답한다. ‘날마다 좋은날’[日日是好日]은 이런 인식에 바탕한다. 대기설법은 설법을 듣는 사람의 형편과 수준, 그리고 상황에 맞게 설파하는 가르침이다.

이와 비슷한 말로는 응병여약(應炳輿藥)이 있다. 어느 병에 걸렸느냐에 맞춰 약을 처방한다는 뜻이다. 즉 부처님은 마치 의사가 환자의 병에 따라 약을 처방하듯 중생이 무엇을 고민하고 아파하는지 거기에 맞게 적합한 비유와 예를 들어 설법하셨다. 경전을 보면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중생들은 한결같이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마음의 평화란 웃음을 되찾는 일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러므로 웃음을 찾아주는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다.

웃음은 의학적으로도 긍정적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18년 동안 웃음을 연구한 리버트 박사는 “웃는 사람은 바이러스나 암세포를 공격하는 NK세포(면역 세포)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일본 오사카 대학원 신경기능학팀의 연구에 의하면 “웃으면 병균을 막는 항체인 감마 인터페론의 분비가 증가해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이 향상되며 세포 조직의 증식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 1분 동안 크게 웃으면 10분 간 에어로빅을 한 것과 같은 운동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마음의 평화란 웃음 되찾는 일
 참된 불자는 부처의 미소 전해야

이렇듯 웃음은 사람들에게 행복 바이러스 역할을 한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에선 웃음에 인색하다. 미국 스탠포드 의과대학교 윌리엄 프라이 박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6세 정도의 유치원생들은 하루 평균 300번 정도 웃는다고 한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그 20분의 1인 15번 정도로 웃음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성인이 되면 이런 저런 걱정과 스트레스로 웃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줄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삶의 문제라기보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더 큰 이유가 아닐까? 그릇을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가르침처럼 마음을 비워야 진정한 희로애락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법이다.

웃음은 행복의 징표다. 웃음은 화합의 기호다. 나아가 웃음은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상징이다. 웃음을 잃게 되면 내가 먼저 고통스럽다. 웃음이 제약받는 사회는 억압과 굴레의 취약구조를 가지고 있다.

부처님은 중생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사바세계에 오셨다. 따라서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생활을 유지해야 참된 불자라 할 수 있다. 특히 불자라면 누구를 대하든 웃음으로 맞이할 일이다. 동사섭(同事攝)의 하나인 화안애어(和顔愛語)가 그것이다. 부처님의 미소를 전하는 보살은 어느 때 어느 상황에서라도 화안애어를 유지해야 한다. 옛 조사들은 열반의 순간에도 편안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 한 가닥의 웃음은 평생의 수행이력이 만들어낸 표징(表徵)이다.

부처님오신날 아침, 웃음을 통해 ‘행복 바이러스’를 전한다면 우리 이웃과 사회가 부처님 말씀에 더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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