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에서는 디팍 초프라 박사가 소개하는 명상이 붐을 타고 있다. 그는 인도계 미국인 의사다. 미국에 오기 전 고향 인도에서 전통 지혜에 훈습이 된 사람이었다. 미국에 와 의학 공부를 하며 물리학이나 자연과학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내과 의사가 되면서 그는 미국 주류 의학의 많은 문제점을 피부로 느꼈다. 영적
호기심과 열망이 강했던 그는 개업을 하고선 인도 전통의 아유르베다 의학을 현대 의학에 접목시키려 노력했다. 초기 저작들을 보면 그런 면모가 잘 드러난다.

인도의 전통의학은 동양의 전래 의학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질병을 전일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치유하려 한다. 동양 의학에는 질병을 바라보는 우주관도 내재돼 있다. 동양의 지혜와 서양 의학의 접목에 그는 양자물리학, 후성유전학(경험과 의지가 유전형질을 바꿀 수 있다는 첨단 유전학), 그리고 신 다윈이즘에서 나온 지식을 융합시켜, 알기 쉬운 새로운 영성 개념을 도출시키고 있다. 이런 관점은 뉴튼적 패러다임이나 기계적 생물학과 한참 다르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경험을 중시한 의학이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에 걸쳐 질병을 (의학적)치료에서, (전인적)치유에로 바꾸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가 말하는 영성이란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자기 각성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뜻했다. 인간에게는 누구든 자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올바른 자각을 하게 되면 창의성도 자연 무르익게 된다. 영감도 샘솟듯 솟아오르게 된다. 더 많은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도 된다. 자각에는 굳이 불교에서 말하는 큰 깨달음을 전제할 필요도 없다. 같은 길이다. 자각으로 인해 과학적 지식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논지지 싶다.

인도의 옛 전통에서 ‘완전한 삶’에 이르는 길에는 즈냐냐(지식, 앎)를 통하는 방법이 있고, 박티(헌신적 믿음)를 통한 길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박티의 길은 요즘 시대에는 크게 오염이 돼있어 쉽지가 않다. 즉 기득권 종교는 도그마와 권력지향 내지 물신주의적 숭배에 깊이 젖어 있어, 많은 신자들의 불신을 사고 있다. 헌신적 믿음에는 훌륭한 스승의 안내가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닌가.

그는 영성의 회복은 종교와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꼭 교회를 가야 되고 신에게 의지해야만 영성적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건적 헌금’이나 맹신을 강요하는 종교체제라면 외려 안 믿는 것 보다 못한 일이다.

그는 이성에 기반을 둔 비판적인 사유를 강조한다. 하나 이성을 맹신하지는 않는다. 이성을 초월한, 영성에 대한 자각으로 우리의 삶의 질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에게 있어 영적 웰빙이란 신체적 웰빙은 물론 감성적 웰빙, 사회적 웰빙까지 다 아우른다. 공동체의 웰빙까지 염두에 둔 웰빙인 것이다. 올바른 자각을 하게 되면 사랑, 기쁨, 평정심, 행복은 저절로 따라 나온다는 것이다.

영성이란 결코 신비한 그 어떤 것이 아니다. 변성의식에서 비롯된 신비적 경험도 아닌 것이다. 영성에 대한 앎/깨달음은 우리의 실제 삶에서 사랑으로 구현될 수밖에 없다. 영성의 활동은 우리의 뇌와 경험 그리고 이것의 중매자로서 역할인 유전 형질의 발현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데도 개입될 것이다.

영성이란 다른 말로 참된 공성空性이나 불성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의 참 된 주인공은 세세생생 우리를 전일한 삶으로 살도록 도왔을 것이다. 그것은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다. 몸과 마음을 다 아우르며, 우리를 이 몸과 마음으로부터도 자유롭게 하는 그 무엇이었던 것이리라.

초프라 박사로부터 각자 지닌 잠재의 영성을 고양시키는 일에 노력을 하는 일. 그리고 서로에게 영성을 고무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힐링의 본뜻일 것이다. 불교도 ‘새로운 옷’을 입힌, 불성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 · 블레스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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