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종교평화를 위한 학술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세미나는 인도와 중국·일본의 역사에서 나타난 종교와 정치권력과의 관계, 그리고 최근 100년간 한국에서 전개된 불교와 정치권력의 전개와 문제점을 진단하는 자리였다.
더불어 2008년 8월 27일 열린 ‘8·27 범불교도대회’ 1년을 기념하는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한편 9월 21일에는 ‘UN세계 평화의 날 기념식’에서 불교를 비롯해 원불교·개신교·민족종교 등 종교인들이 함께 모여 평화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종교화합의 자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종교 간의 화합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수시청의 한 간부 공무원이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세계박람회개최에 대해 ‘박람회는 하나님의 은혜’ ‘복음엑스포’를 운운했다고 한다. 그는 공직자의 종교 중립의무를 위반했음에도 오히려 당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증일아함경》에는 부처님이 아난에게 “아난아, 사람이 분한 마음을 일으켜 원한을 맺으면 그는 스승을 공경하지 않고 법을 보지 못하며 계를 지키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은 대중 가운데서 자기주장만을 고집하여 싸움을 일으킨다. 그러한 싸움은 대중에게 이익 되지 못하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 그러한 일은 도리가 아니요, 이익 되는 일도 아니며, 즐거운 일도 아니다. 그러한 싸움은 결국 천상과 인간에 지극히 심한 고통과 재앙을 일으키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개신교는 1882년 조선과 미국 간의 조약을 계기로 들어온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유입되었다. 이들은 선교활동에 중요한 발판을 만들기 위해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을 전개했다. 그러나 1세기 먼저 들어 온 천주교와의 지나친 선교경쟁이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되고 치열해지고 있다. 개신교의 한 단체는 성시화 운동을 전개하며 “성시화는 완전한 하나님의 도시를 지향하고 있기에 그곳에 사는 시민은 개신교 신자가 될 것인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할 것인지 양자택일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세우고 고집하고 있어, 끊임없이 싸움을 일으키는 사람과 같다.

종교의 생명은 자비·화합·상생에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의식하지 않은 맹목적인 경쟁은 상대적이고 대립적인 결과를 가져올 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자비와 화합을 이야기하고 실천할 때 진정한 상생(相生)의 기회가 마련되지 않겠는가.  

법진 스님/본지 발행인,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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