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결과에 희비 말고
 민심받들어 봉사해야


‘4월은 잔인한 달’이란 표현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상투적 어구 가운데 하나이다. 이 말은 원래 T.S. 엘리엇의 대표작 <황무지 The Waste Land>의 첫구절에서 유래한 것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시의 본뜻과는 전혀 다른 뜻으로 전유(專有)되어 통용된다.


시에서 “사월이 가장 잔인한 달”인 까닭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기 때문이며, “겨울이 따뜻했었”다고 말해지는 것은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球根)으로 먹여 살려 주었”기 때문으로 진술된다.

이처럼 겉과 속이 전혀 반대인 말을 ‘반어(反語, Irony)라 하는데, 언젠가부터 시의 원래 의미와 상관없이 ’4월은 잔인한 달‘이란 어구가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3일 저녁, 일부 정치인들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란 말의 무게를 그 어느 때보다 절감하면서 가슴을 쳤을 것이다. 특히 여당 국회의원 후보들에게 4월 13일은 가장 잔인한 날이었을 텐데, 그들 누구도 여당이 선거에서 참패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여당인사들은 참패는커녕, 과반수를 넘어 개헌을 할 수 있는 숫자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하며 속으로 콧노래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천 과정에서 보여준 여당 지도부의 오만과 불손에 많은 국민이 분노했고, 그 결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나타났다.

선거 다음 날 출근길, 아파트 앞에서 초등학생들의 대화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 아이들이 만나서 한 첫 인사가 선거 결과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나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던 각 당의 국회의원 당선자 숫자까지 밝히며 제법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 대화는 오래 듣지 못했지만, 초등학교 학생들이 등굣길에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게 너무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초등학생들조차 현실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정작 정치인들은 그런 국민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여당과 야당이 보여준 온갖 오만불손한 작태는 국민의 실망을 넘어 분노를 야기했고, 그 결과는 여당의 참담한 패배로 나타났다. 얼핏 보면, 야당이 승리한 것 같아도 그것은 차악(次惡)의 선택일 뿐 결코 야당을 신뢰해서가 아니란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국회의원 입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면, 대체로 명문학교를 졸업했고 외국유학까지 다녀온 이들이 많다. 그런 뛰어난 인재들이 왜 국회의원 뱃지를 달면 어처구니없는 언행으로 국민을 실망시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그들이 국민을 위한 봉사자가 아니라 국민의 지도자라는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보인다. 그들은 선거철에는 유권자들에게 더없이 공손하고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막상 당선된 이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거오(倨傲)한 태도로 국민을 내려다본다. 4년 임기 동안 지역을 돌보며 민생을 살피는 국회의원 숫자가 극히 적다는 것이 이러한 사실을 방증한다.

부처님은 중생들의 근기에 맞춰 설법을 했다. 그것을 ‘대기설법’이라 하며, 비슷한 표현으로 응병여약(應病與藥)이 있다. 지금 유권자들은 부처님 시대의 무지몽매한 중생과 다르다. 국회의원들이 명문학교를 나오고 외국유학을 다녀왔다 하더라도 그에 못지않거나 더 탁월한 능력과 인품을 지닌 국민도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국민을 무시하고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거나 권력에 맹종하는 태도를 보이면 국민들이 가차 없이 내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4월은 만물이 소생하고 화사한 꽃을 피우는 생명의 계절이다. T.S. 엘리엇이 노래한 것도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속에서 파릇한 새싹이 돋고 죽은 것으로 생각했던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꽃잎이 피어나는 기적에 대한 반어적 표현이다. 이번 선거에서 낙방한 이들이 민심을 제대로 알아 더욱 노력하면 회생하겠지만,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자성하지 않으면 동사(凍死)한 구근(球根)처럼 영원히 꽃을 피우지 못할 것이다.

-소설가 · 동국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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