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민사회는 안녕한가? 어김없이 다가오는 선거철 즈음, 우리를 대표해보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맨 얼굴을 마주하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그들의 눈망울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이 쉽지 않다. 그 망설임과 어색함
은 아마도 선거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안면을 몰수하는 일이 잦아지는 그들의 행태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고, 유권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벌이는 공천다툼으로 인한 실망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시민사회의 주인은 시민이고, 그 시민은 주로 선거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다. 이 당연한 민주주의의 명제가 새삼스럽게 마음으로 다가오는 것은 정말 내가 주인인 것이 맞는가 하는 회의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나마 이럴 때라도 주인 대접을 받으니 다행이기도 하지만, 그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사실을 오히려 확인하는 기회가 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 시민사회는 4.19 학생운동과 5.18 광주민주화 항쟁, 6월 항쟁 등의 고통스런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얻게 된 한국현대사의 소중한 역사적 유산이다. 이 시민사회는 각 시민의 인간다움을 지켜가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포함하고 있고, 동시에 각자의 삶 속에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울타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특히 국가로 상징되는 권력 주체와 협력과 견제라는 상호적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권력에 의한 부당한 억압과 간섭으로부터 시민을 지켜내는 일을 하는 정치공동체이자 도덕공동체이다. 

 종교 권력 독주에 무력한
 시민사회 자화상 직시해
 견제 · 균형 맞추는 공동체로


21세기 초반 한국사회의 국가와 시민사회는 이러한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을까? 불행히도 이 물음에 긍정적으로 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민사회 자체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고, 권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사이비 시민단체들이 극단적인 언행을 통해 시민윤리의 기본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야만 가능한 시민사회의 기반이 거의 무너져버린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이다.

이런 우려스런 상황은 종교계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조계종 집행부로 상징되는 종교권력에 대항해 견제와 균형을 맞춰갈 수 있는 승가 또는 재가공동체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결제철이 되면 어김없이 선방에 드는 선승들의 모임인 수좌회도 그 존재감이 미미하고, 재가단체들도 재가신도들의 냉소와 무관심 속에서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일방적인 종교 권력의 독주를 그저 고통스럽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동국대 사태와 교계 언론탄압은 이미 상식 수준을 넘어선 비정상적인 상황을 유발하고 있는 데도 쉽게 해결될 것 같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민사회는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과 집단의 체계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공간이자 또 하나의 독자적인 체계이기도 하다. 우리 시민사회가 이렇게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개인들과 집단 자체가 정상적인 투입과 산출과정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불교와 그리스도교로 대표되는 우리 종교계는 자본주의적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그 존재의 정당화 근거를 의심받을 정도로 흔들리고 있다.

도대체 ‘우리에게 종교는 무엇이고, 왜 존재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그것과 맞닿아 있는 우리 시민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직시할 수 있어야 비로소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선거 휴일에 즈음하여, 시민으로서의 자의식을 바탕으로 잠시 물러서 삶의 의미와 자존감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는 시간과 여유 공간을 확보하고 싶어진다.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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