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법어》1)에는 <혜월법자에게 주다〔與慧月法子〕>란 제목으로 경허가 제자 혜월(慧月, 1862~1937)에게 주었다는 전법게가 실려 있다.

일체의 법이 了知一切法
자성은 아무 것도 없음을 요달해 알지니 自性無所有
이와 같이 법성을 알면 如是解法性
곧 노사나불을 보는 것이리 卽見盧舍那

세제(世諦)를 의지하여 무문인을 거꾸로 제창하라. 청산 아래 한 선실(禪室)에서 이 호를 써 주노라.〔依世諦, 倒提唱無文印. 靑山脚一關, 以相塗糊.〕

임인년 음력 2월 하순에 경허가 혜월을 위하여〔水虎中春下瀚日, 鏡虛爲慧月.〕

이 게송은 1981년에 간행된 《경허법어》 앞부분에 영인판으로 경허의 친필이 실려 있는데, <與慧月法子>란 제목은 없고 말미에 “경허가 혜월을 위하여〔鏡虛爲慧月〕”라 쓰여 있다. 여기서 ‘水虎中春’을 《경허법어》에서는 “수호 중 늦은 봄날”로 번역하고 ‘수호’에 “경인년으로 서기 1890년.”이란 주석을 달았고, 명정(明正) 번역본 《경허집》2)에서도 “경인년 늦은 봄”이라 번역하였다. 그러나 ‘수호(水虎)’는 연대를 천간(天干)의 오행과 십이지(十二支)의 동물로 표기한 것으로 ‘수(水)’는 ‘임(壬)’ 또는 ‘계(癸)’을 뜻하고 ‘호(虎)’는 ‘인(寅)’을 뜻한다. 즉 임인년(1902), 경허 57세 때인 것이다. 그리고 ‘중춘(中春)’은 음력 2월이다.

이 게송을 해운정사(海雲精舍) 사이트에 경허의 친필이라며 사진판 원본으로 게제하고 있는데 첫머리에 ‘혜월 혜명에게 주다〔付慧月慧明〕’란 제목이 써져 있고, 말미의 “경허가 혜월을 위하여〔鏡虛爲慧月〕”도 “만화문인 경허가 설하다〔萬化門人鏡虛說〕”로 바뀌어 쓰여 있다. 《경허법어》에 게제된 사진판과 글씨도 흡사하다. 《경허법어》에 실려 있는 것이 지질로 보나 필적으로 보나 원본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해운정사가 제시한 것은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인가.

이 게송은 원래 《화엄경》 <승수미산정품(昇須彌山頂品)>에 있는 것이다. 또한 신라 때 자장 율사(慈藏 律師)가 중국 오대산에서 기도하니 문수보살이 꿈속에 나타나 일러주었다는 게송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게송을 전법게로 삼았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세제를 의지하여 무문인을 거꾸로 제창하라〔依世諦 倒提唱無文印〕.’에서 전법의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경허법어》와 명정 번역본 《경허집》에서 <與慧月法子>의 번역은 모두 오역이다. 게송 번역은 다소 차이는 있어도 대의는 전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依世諦, 倒提唱無文印. 靑山脚一關, 以相塗糊.”를 번역한 것은 전혀 원의와 거리가 멀다. 《경허법어》에는 “온 세상을 사무쳐 쉬고 무생인을 제창하노니, 청산 다리 한 빗장으로써 서로 발라 붙이노라〔休世諦, 倒提唱, 無文印, 靑山脚, 一關以, 相塗糊〕.” 하였다. ‘依’ 자를 ‘休’ 자로 잘못 보았고, 구두도 전혀 맞지 않으며, 문맥도 통하지 않는다. 명정 번역본에서는 “세간의 형식은 놔두고 글자 없는 도장을 거꾸로 제창하노니, 청산다리 한 관문으로 서로 싸바르노라.〔依世諦倒提唱無文印靑山脚一關以相塗糊.〕” 하였다. 구두도 안 맞고 우리말로도 이해되지 않는다. 아무리 선어(禪語)라 해도 그 낙처(落處)를 분명히 알기 어려운 것이지, 일상에 쓰던 말이라 그 당시의 속어(俗語)를 알 수 없는 경우는 있어도 그 자체가 애매모호한 말일 수는 없다.

‘依世諦, 倒提唱無文印’은 불법인 진제(眞諦)는 언어와 형상을 떠난 것이므로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없다. 따라서 법을 펴려면 세속의 도리인 세제(世諦)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거꾸로 무문인을 제창하는 것이다. ‘청산각(靑山脚)’은 청산 발치, 즉 청산 아래이니, 예컨대 한산시(寒山詩)에도 “예로부터 많은 현인들이 모두 청산 아래 묻혀 있다〔自古多少賢 盡在靑山脚〕.” 하였다. ‘일관(一關)’의 관(關)은 선실(禪室)이다. 여기서는 경허가 머물던 천장암의 선실을 가리킨다. ‘상도호(相塗糊)’는 《대혜서장(大慧書狀)》 <답양교수(答梁敎授)>에 나오는 구절로 양교수가 법호를 지어달라고 청하기에 쾌연거사(快然居士)란 법호를 주면서 한 말이다.3) 여기서 도호(塗糊)는 호도(糊塗)와 같은 말로 상대방을 오염시킨다는 뜻이다. 즉 상대방의 청정법신(淸淨法身)에 무슨 법호를 덧붙이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본래 청정한 상대방의 법신을 오염시키고 때를 묻히는 셈이 된다는 뜻이다. 즉 혜월이란 법호를 써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학원본 《경허집》4)에는 <만공이 “화상께서 돌아가신 뒤에 중생을 어떻게 교화합니까”라고 물은 데 답하다.〔答滿空問曰和尙歸去後衆生敎化何〕>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시가 실려 있다.

구름과 달, 시내와 산이 도처에 같음이 雲月溪山處處同
수산선자의 큰 가풍일세 叟山禪者大家風
은근히 무문인을 주노니 慇懃分付無文印
일단의 기봉과 권도를 활안 중에 있게 하라 一段機權活眼中
- (필자 譯)

<答滿空問曰和尙歸去後衆生敎化何>은 ‘化何’ 사이에 ‘如’ 자가 빠진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지 않으면 문리가 되지 않는다. 이 제목은 경허가 이 시를 써줄 때의 상황을 만공이 구술한 것을 한문으로 다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경허법어》 앞부분 사진판에 이 시가 경허의 친필 원본으로 실려 있는데, 그 제목이 <수산 만공에게 답하여 주다〔答贈叟山滿空〕>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경허법어》 앞부분 사진판에 실려 있는 이 시의 친필 원본에는 ‘갑진년 2월 11일 천장선굴 중에서 경허〔甲辰二月十一日天藏禪窟中鏡虛〕’라 쓰여 있다. 갑진년은 1904년이니, 경허가 북방으로 떠나던 해이다. 그러니까 이 시는 경허가 북방으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공을 만났을 때 만공이 ‘스님이 떠나신 뒤에 어떻게 법을 펴야 합니까?’라고 물은 데 답한 것이다. 그런데 선학원본의 이 제목이 《경허법어》에 이르러서는 <弟子滿空與傳法頌>으로 제목이 바뀌어 실린 것이다.

<弟子滿空與傳法頌>은 제목부터 문법에 맞지 않다. 이대로 번역하면 “제자 만공이 전법송을 주다.”로 되고 만다. 문법에 맞으려면 <與弟子滿空傳法頌>이 되어야 한다. “雲月溪山處處同 叟山禪者大家風”을 《경허법어》에서는 “구름과 달이 곳곳마다 동일한데 수산 선자의 대가풍이여.”로 번역하였고, 명정 번역본에서는 “구름과 산 냇물과 산이 어디든지 같은데 수산선자의 대가풍이로다”로 번역하였다. 이 구절은 송(宋)나라 원오 극근(圓悟克勤)의 게송, “달팽이 뿔 위에 삼천대천세계이니 구름과 달, 시내와 산이 다 한 집안일세〔蝸牛角上三千界 雲月溪山共一家〕.”와 같은 뜻으로 보아야 한다. 즉 “구름과 달, 시내와 산이 도처에 같음이 수산선자의 큰 가풍일세〔雲月溪山處處同이 叟山禪者大家風〕”로 번역해야 옳을 것이다. 즉 차별상으로 전개되는 온 세상이 그대로 진여자성이요 무문인(無文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래 구절에서 ‘무문인을 만공 자네에게 주니, 진여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기봉(機鋒)과 권도(權道)를 살려 중생을 제접하라〔慇懃分付無文印 一段機權活眼中〕.’ 한 것이다.

그리고 선학원본 <법어>편 중에 <법자 만공에게 주다〔與法子滿空〕>란 제목의 다음과 같은 짧은 법문이 실려 있다.

수산 월면(叟山月面)에게 무문인(無文印)을 준 다음 주장자를 잡고 한 번 내리치고 이르기를 “이 말소리가 이것이니, 일러보라 무슨 도리인가?” 하고, 또 한 번 내리치고 이르기를 “한 번 웃으매 알지 못하겠네, 어느 곳으로 갔는가? 안면도의 봄물이 쪽빛같이 푸르네.” 하고는 주장자를 던지고 “훔” 하였다.〔付了無文印爲叟山月面, 拈拄杖卓一下云: “秪這(語)聲是. 且道甚麽道理?” 又卓一下云: “一笑不知何處去, 安眠春水碧如藍.” 擲却了, 吽.〕

“이 말소리가 이것〔秪這語聲是〕”이란 것은 부대사(傅大士)의 게송에 나오는 말이다. 이는 말하는 소리 그 자체가 바로 무문인, 즉 마음을 드러낸 소식이란 말이다.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낱낱이 마음, 진여자성을 드러내는 소식이 아님이 없으니, 말하는 소리도 바로 이 소식이요, 안면도의 푸른 물도 이 소식이다.

경허가 혜월을 인가하면서 “잡아 제시함이 분명하니 법등(法燈)-법등으로 서로 이으라〔拈得分明, 燈燈相續〕.” 했다고 하는데, ‘잡아 제시함이 분명하다〔拈得分明〕’는 것이 바로 이 법어의 말과 같은 뜻이다. 이 구절은 본래 《벽암록》에서 온 말이다. 설봉(雪峯) 문하의 보복(保福)과 장경(長慶) 두 사람이 산을 걷다가 보복이 한 곳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곳이 바로 묘봉정이다〔只這裏便是妙峯頂〕.” 하자 장경이 “옳긴 옳으나 애석하다〔是則是, 可惜許.〕.” 한 데 대해 설두(雪竇)가 붙인 게송에 “우뚝한 묘봉정에 풀이 우거졌거늘 제시함이 분명한들 누구에게 보여주랴〔妙峯孤頂草離離 拈得分明付與誰〕.” 한 데서 온 말이다. 잡아들면 낱낱이 이 본분 도리, 이것 아님이 없지만 이것을 남에게 보여주려 하면 이미 이것이 아니라 저것, 즉 대상 경계가 되고 만다. 그래서 장경이 가석하다고 한 것이다.

‘수산 월면에게 무문인을 준 다음’이라 한 것으로 보아, 위 시를 써주고 경허가 해 준 법문을 만공이 구술하고, 다시 한문으로 옮긴 것일 터이다.

경허가 혜월과 만공에게 주었다는 두 게송에서 《화엄경》의 게송을 써준 것과 만공의 물음에 답하였다는 제목만으로는 전법의 의미를 확인하기 어렵고, ‘무문인을 제창하라,’ ‘무문인을 준다’는 말에서 전법의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는 법을 펴라는 뜻이니, 분명 후사를 부촉하는 뜻이 들어 있다. 명리(名利)와 구차한 형식을 싫어하는 경허인지라 굳이 공식적인 전법게의 형식을 취하지 않았으리라 짐작해 본다.

주) ----------
1) 1981년에 경허성우선사법어집간행회(鏡虛惺牛禪師法語集刊行會)가 간행한 번역본이다.
2) 1990년에 통도사 극락선원이 간행한 번역본이다.
3) 대혜 종고(大慧宗杲), 《대혜서장(大慧書狀)》(法輪社, 1976) 208쪽, “又承需道號, 政欲相塗糊, 可稱快然居士.”
4) 1943년, 선학원(禪學院) 중앙선원(中央禪院)에서 만해 한용운이 편집하여 활자로 간행한 것이다.

이상하 |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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