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모방본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편리 시설도 인간이 자연을 모방하여 그것을 인간의 삶에 적합하게 변용시킨 결과이다.


인간은 인간을 대신해 줄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개발하여 온갖 기술에 접목시키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이를테면 자동차 무인운전 기술이라든가 가전기기 스마트 시스템 같은 것들이 그 예이다.

그런데 최근 굴지의 인터넷 검색 서비스 기업인 구글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세계 최고의 한국 바둑 프로기사 사이의 대결이 성사되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바둑 전문가들은 ‘알파고’라고 하는 인공지능의 도전을 가소롭게 여겼으나, 대국이 진행되면서 모두 경악과 충격에 휩싸였고 찬탄을 쏟아냈다. 제1국에서 속수무책으로 패한 뒤 이세돌은 알파고를 너무 얕본 자신을 책하며 전력을 다할 것이라 다짐했으나 3연패로 우승을 상대에게 넘겨주었다.

애초부터 알파고의 일방적 승리를 점친 사람은 지극히 소수였고, 그들은 모두 컴퓨터 전문가였다. 그러니까 컴퓨터 전문가들은 현재 컴퓨터, 혹은 인공지능 기술이 어느 수준까지 성장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알파고의 완승을 점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둑의 수가 무한정한 데다 기계가 인간의 직관을 따를 수 없다고 자만했던 바둑인들은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들이 얼마나 큰 착각과 편견에 빠져 있었던가를 통감했다. 프로기사들의 예측은 번번이 빗나갔고, 알파고가 둔 수는 그들의 바둑 상식이나 경험에 없던 것이어서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일은 이세돌이 승부에서 패배한 뒤 시작됐다. 이세돌은 떨리는 목소리이긴 하지만 침착한 태도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한 판이라도 이겨보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그리고 그는 3월 13일 전 세계 바둑애호가와 인간-인공지능의 세기적 대결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사람들 앞에서 그 약속을 성실하게 지킴으로써 커다란 감동과 교훈을 주었다.

그는 패배한 뒤 자책하거나 대결을 회피하려 하지 않고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고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밤을 새웠고 마침내 희미하게나마 알파고의 약점을 간파한 것이다. 알파고가 패배를 시인하자 초조하게 대국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인간과 기계의 대결에서 최종적으로 인간이 승리하기라도 한 듯 환호작약했다. 하지만 이세돌은 세 판을 내리 지다가 네 판째 혼신의 집중력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알파고의 연산장치에 혼란을 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 대국에서 이세돌은 스스로 어려운 길을 택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가 결국 돌을 던졌다. 하지만 알파고를 초읽기까지 몰아간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대국을 보면서 느낀 것은 기계가 인간의 오만과 편견을 깨뜨렸고, 인간은 겸허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좀더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대국 초기 이세돌의 완승을 자신했던 프로기사들은 알파고가 반면을 이끌어가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기보(棋譜)에 없는 수”라거나 “사람으로선 생각하기 어려운 수”란 말만 반복하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새로운 수에 우왕좌왕한 것은 알파고도 마찬가지여서 이세돌이 ‘신의 한 수’로 반면을 흔들자 ‘버그’를 일으켜 패배를 자초했다.

이번 대국을 인간과 기계(인공지능)의 대결로 몰아가는 것은 지나치다. 하지만 이 대국을 통해 우리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인간의 상상력과 직관을 넘어서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자기반성과 노력을 계속하지 않으면 기계에게 추월당할 수 있다는 엄정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알파고는 인간을 모방했을 뿐이지만 이세돌은 패배의 충격을 이겨내고 새로운 상상력을 펼쳤다. 때로 인간이 기계에 뒤질지 몰라도 끝내 기계가 인간을 이길 수 없는 것은 인간은 창조력을 가지고 있으나 기계는 모방할 줄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동국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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